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4일, 포항 양덕에 여진이 찾아 오기 전, 어머니는 간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에게 밥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식탁은 풍요로웠고, 반찬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애정이 가득했습니다.

"올해는 취직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 년만에 내려온 아들의 작은 약속과 함께, 어머니 식탁은 간만에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말에 "괜찮다"고 답을 하시려던 시점에, 갑자기 아파트가 구르르릉 굉음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주영아, 주영아, 어떡하노?"

어머니 목소리가 흔들리는 데 정작 더 놀라고 있던 건 아들이었습니다. 따뜻했던 식탁은 순식간에 영화속 한 장면처럼 아수라장이 되었고, 음식들은 식탁에서 떨어져 엉망이 되었습니다. 공포 영화를 열 편이나 본 듯, 온 몸이 떨릴 때, 뉴스에는 기사 한 줄이 별 거 아닌듯 떴습니다.

"포항에서 또 여진 발생, 규모 2.3" 방금까지 총 81차례의 여진, 그런데 이것은 겨우 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보내오신 지인 집의 사진.
 어머니가 보내오신 지인 집의 사진.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서울 작은 오피스텔이 온 가족 피난처가 되기까지

이 시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공직자는 없다라는 하소연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 시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공직자는 없다라는 하소연을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영화 '터널'에서 평범하게 달리던 주인공 위로 갑자기 터널이 무너집니다. 분명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별 생각없이 '주인공 어떡해' 하며 봤었는데, 그게 내 가족이 마주해야할 두려움이 될 줄 몰랐습니다.

하필 진원지에서도 가장 가까운 포항 양덕. 포항 시장에게 "괜찮으십니까?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는 문자가 옵니다. 언제 흔들린지 모른다는 공포 앞에서 시장과 정치인의 문자는 아무런 공감도 주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괜찮겠지, 이젠 여진이 더 없겠지. 모두가 안심하고 조용히 잠든 지난 11일 새벽에 4.6 지진이 찾아왔습니다. 서울에 있던 지인들이 새벽에 안부를 물어 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서울에 있고, 어머니는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오후쯤에야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고, 침대에서 도망치다가 허리가 완전히 나가셨다고 합니다.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 5시에 지진은 포항을 뒤흔들었다.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 5시에 지진은 포항을 뒤흔들었다.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그 와중에 '포항 지진으로 36명 부상'이라는 기사가 나옵니다. 어머니의 부상은 36명 피해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카톡창에 모인 친구분들의 부상만 해도 36명이 넘어가고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평소에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던 어머니가 폭탄 선언을 합니다.

"이번 명절엔 올라가면 안될까 아들?"

어머니는 포항을 떠날 계획으로 올라오셨습니다.  계획을 들어보자니 이랬습니다. '아들과 딸이 모두 서울 작은 오피스텔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으니, 독립하기 전까지만 합쳐서 지내자' 였습니다.

어머니 표정은 '지진이 무섭다'였지만, 2.3에도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던 아들이 경제적으로도 못난 모습을 보여 죄송할 뿐입니다. 서울 강북 부동산을 찾아 보러 다녔지만, 포항 집값과 가장 비슷한 곳은 서울도 경기도도 아닌,  경의선이 그나마 연결되어 있던 강원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집값이 비슷하다고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모든 생계는 포항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어머니의 많은 셈법은 결국 의미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사실대로 이야기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강남 한복판이 흔들렸으면 이렇게 무관심하진 않을텐데...

포항 지진으로 인해 가족들이 서울의 작은 오피스텔에 다 같이 몰려 자게 되었다.
 포항 지진으로 인해 가족들이 서울의 작은 오피스텔에 다 같이 몰려 자게 되었다.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얼마전 포항 KTX에서 택시를 타면서 택시기사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강남 한복판이 흔들렸으면 이렇게 무관심하진 않을텐데..."

기사님은 택시에 탄 저를 서울 사람으로 생각하고 아쉬운 듯 이야기 하셨지만, 포항 사람들은 아직도 왜 지진이 일어났는지를 모릅니다. 포항 사람들은 '지열 발전소'가 문제라고 저마다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말입니다.

"포항에서 또 여진 발생, 규모 2.3"

제가 겪은 지진의 공포를 가볍게 한 줄 다루듯이 소개하듯, 지열 발전소 관련 몇 달 째 진상규명 촉구를 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만 애타게 들립니다.

택시 운전한지 20년이 되었다던 기사님은 자기가 운전대를 잡고 이렇게 무서웠던 적이 처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운전하다 보면 갑자기 언제 흔들릴지 몰라 핸들을 꽉 잡게 되요. 미리 알기라도 하면 이렇게 두렵지 않을텐데..."

지진 경보가 7분 늦었던 그날의 기억이 기사에겐 가장 공포스러웠던 경험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눈에 들어온 포항의 새 아파트들 분양법 또한 눈에 띄었습니다.

"국가에서도 제대로 경보 못하는 데 어떻게 아파트가 경보해요?"

한 아주머니가 장을 보다가 분양 상담원에게 틱틱 거리며 물어봅니다. 손님을 잡으려고 급하게 상담원이 설명해 보지만,  아주머니는 이내 카트를 끌고 가버립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언제 일어날지를 모르는 공포와 불신이 포항 주민들 사이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괜찮겠지' 안심하면 새벽5시에 덮치니까요.

"아들아 이제 내려가야 되는구나"

명절이 끝나고, 어머니는 포항행 KTX에 몸을 실었습니다. 작은 방바닥 위에서 긴 명절의 5일을 보내셨지만, 아들의 침대를 양보하려 해도 "허리가 방바닥에 누워서 자는 게 더 좋다"며 방바닥을 고집하셨던 어머니를 보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포항 지진'을 검색하니 어머니가 올라오시고 나서 여진도 뚝! 하고 사라진 모양새입니다. 이제 괜찮을까요? 작은 방바닥에 누워 주무셨으면서도  명절에 역귀성 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짐 될까 미안한 표정입니다.

"아들아 이제 내려가야 되는구나"
"네.. 조심히 내려가세요"

저는 또 쉽게 신문으로 기록된 "포항 또 여진"이란 기사를 보고 걱정하면 될까요? 조심히 내려가시라는 말에 정말 조심히 내려가시길 바라는 마음을 덧붙였습니다.



태그:#지진, #포항, #역귀성, #명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