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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2월 22일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18주년을 맞았습니다. 2월 20일 기준 8만6738명이 시민기자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민기자로 살아보니'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최근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 4명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2018년 더 많은 시민기자를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내 인생에 솔직했던 적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싶어도 엄마가 흰색 원피스를 입으라고 하면 군말 없이 그걸 골랐다. 착한 어린이가 되려면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했다. 누가 씌워놨는지 모르는 '착한 어린이' 프레임에 갇혀 살며 옷 색깔 하나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던 나는 사회에 나와서도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싫어요', '안돼요'라고 말하면 조직에서 배척당할 것 같았다.

임산부배지  항공사에서 받은 작은 배지에서 보건소에서 주는 큰 배지로 바꿨다.(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던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2017년 2월부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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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던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부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찾아온 산후 우울증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드는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2017년 2월, '핑크의자'로 첫 기사를 썼다. 대중교통 임산부 배려석인 핑크의자에 앉기도 힘들고, 앉아도 눈치를 봐야 했던 나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았다. 사실 기사가 채택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채택이 돼도 많은 이들이 읽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무척 편하게 글을 작성했던 기억이다.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놔서였을까. 많은 여성이 댓글 등을 통해 공감해주었다.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누구도 나를 비난하거나 내 생각이 잘못됐다고 배척하지 않았다.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거나 내 견해와 다른 주장을 펼치며 자연스럽게 토론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반응에 힘입어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의사에게 수중분만 하겠다고 말했다가 혼난 일, 워킹맘에게 중요한 것은 근로시간 단축이 아니라 엄마가 마음 편하게 일하고 정시 퇴근할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 등을 기사로 썼다. 출산·육아뿐만 아니라 평소 글을 써보고 싶었던 문화재 이슈와 지역 정치 문제까지 영역을 확장해갔다.

뜻밖에 시작된 악플러와의 싸움

 예전 같으면 기사를 안 썼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내 목소리를 계속 내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기사를 안 썼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내 목소리를 계속 내기로 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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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나게 기사를 작성하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내가 쓴 기사를 찾아보던 엄마가 우연히 악성 댓글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써도 가족에게 알린 적이 없다. 내가 쓴 글을 가족들이 읽는 것이 어찌나 낯간지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엄마가 어떻게 내 기사를 찾아냈고, 하필이면 본문의 내용과 상관없이 '부모가 잘 계신지 궁금하다'며 가족을 깎아내리는 댓글을 발견했다. 악플을 본 엄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기사 안 쓰면 안 돼? 이 사람이 지금은 부모 욕을 하지만 나중에 애들 욕도 하면 어떡해."
"그 사람은 지금 그런 댓글을 썼다는 것도 기억 못 할 거야. 내버려 둬."
"계속 욕 들으면 안 좋단 말이야. 기사 쓰지 마."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반대는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쓴 지 4개월가량밖에 안 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에겐 죄가 없었다. 잘못은 나를 모욕한 악성 댓글 게시자에게 있는데 왜 내가 입을 다물어야 하나. 예전 같으면 "알았어, 엄마" 하고 기사를 안 썼겠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내 목소리를 계속 내기로 했다.

"그럼 내가 저 악플러 잡아서 처벌 받게 할 테니까 기사 쓰지 말라는 소리 하지 마."
"아휴, 저 사람이 처벌받고 해코지하러 집 근처에 오면 어떡해. 잡지 말고 기사도 쓰지 마!"

한 번 마음을 먹으니 엄마 말이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인 지인에게 악플러를 고소할 거라 하니 고소장을 써주셨다. 검찰에 고소장이 접수된 뒤, 경찰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조사는 30분 내로 간단히 끝났다. 조사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을 때 즈음 전국의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만난 피의자는 총 3명. 그중 반성문을 제출하는 것으로 합의해 준 악플러가 기억에 남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는 표현을 함부로 해서 타인을 상처 입히지 않겠다고 약속드립니다"라는 그의 반성문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것을 받아내겠다고 몇 개월의 시간을 기다렸나 싶었다.

악플러를 잡았다고 해서 엄마의 마음이 안정된 것은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기사를 쓰고 있고, 악성 댓글은 계속해서 새롭게 달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직접 고소장을 쓸 정도까지 발전했다. 심지어 악플러를 고소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고소장을 대신 써드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말도 들었다.

"요즘 기사보다 고소장을 더 많이 쓰시네요. 하하하."

맞다. 요즘 기사보다 고소장을 더 쓰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 내 감정에 솔직한 인생을 꾸려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행복해졌다.

내 목소리가 바꾼 우리집 차례상

 올 설부터 바뀐 우리집 차례상
 올 설부터 바뀐 우리집 차례상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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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러를 잡는 일보다 더 용기를 내 나를 솔직하게 드러낸 계기는 지난 추석 때 쓴 '며느라기' 기획 기사였다. 당시 명절만 되면 왜 며느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주제로 시댁과의 갈등을 풀어썼다(관련 기사 : "올케 엄청 교활한 애니까 조심해" 시누이의 문자).

너무 솔직히 적은 게 문제였을까. 시누이에게 고소할 거란 문자 메시지가 와서 무척 당황했다. 누군가 읽으라며 저격하고 쓴 글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사는 동시대의 며느리들과 소통하고 싶어 썼던 글이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추석날, 시누이가 나를 고소했단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사를 계기로 시누이와의 갈등이 폭발한 게 차라리 나았던 것 같다. 고소할 거란 메시지를 받고 처음으로 시누이에게 장문의 글을 써서 보냈는데, 그동안 참았던 생각들을 털어놓으니 속이 후련했다.

"고소 건은 잘 진행되고 있어요?"

그 기사를 쓴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그렇지 않아도 우편물을 계속 기다렸으나 아직 고소장은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소식을 받았다. 친척들이 남편에게 '차례상과 시어머니 제사상을 차리느라 고생한다'는 전화나 문자를 보내왔던 것이다. 친척들 사이에 기사 이야기가 퍼진 모양이다. 시댁으로부터 '고생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나는 크게 만족했다.

사실 그 기사를 계기로 우리 집에 더 큰 변화가 있었다. 이미 간단했던 차례상에 또 한 번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삼색 나물과 동태전 한 접시도 생략하고 올 설날부터는 '조율이시(棗栗梨柿: 대추, 밤, 배, 감)'만 놓기로 한 것이다. 설날이라서 떡국을 올리긴 했다. 결국 내가 직접 요리한 것은 떡국밖에 없다. 이 모든 게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면서 달라진 점이다.

나에게 '시민기자'란...

 이왕이면 제대로 내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로 엄마들의 현실을 드러내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민기자로, '문화재' 하면 떠오르는 시민기자로…
 이왕이면 제대로 내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로 엄마들의 현실을 드러내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민기자로, '문화재' 하면 떠오르는 시민기자로…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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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인 문화재 반환운동(일제 강점기 또는 6.25전쟁 당시 강제로 빼앗긴 문화재를 찾는 일)과 관련해서도 기사를 쓰면서 바뀐 일이 많다. 우선 청와대 안에 있는 불상이 보물로 지정돼 경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불상은 데라우치 총독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강제로 경주를 벗어나 지금의 청와대에 자리 잡게 됐다.

청소년들이 일본에 찾아가 폐기하라고 외친 명성황후 살해 칼 '히젠도'에 관한 문제는 현재 국회에서 결의안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엔 청소년들만 모여서 촉구했는데, 이번엔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인 이용수 할머니와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최봉태 변호사,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가 결의안 통과를 위해 한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나의 일을 알리기 위해 문화재 관련 기사를 더 많이 쓰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문화재 기사에 대한 반응보다 '인간 구진영'으로 쓰는 글들이 더 많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최승호 사장이 임명됐을 때, MBC 뉴스의 오래된 팬으로서 글 한 편을 썼다. <MBC 뉴스데스크>가 다시 돌아왔음을 알리기 위해 예전의 오프닝 음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기사였다(관련 기사 : 최승호 사장, <뉴스데스크> 오프닝 음악부터 바꿔라).

그러고 나서 몇 주 전에 우연히 <MBC 뉴스데스크>를 틀었는데, 오프닝 음악이 예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기사 때문에 음악을 바꾼 것인지 사내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돌아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돌아온 오프닝 음악을 듣고 있으니 매우 반가웠다.

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계산대 앞에 놓인 담배 광고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슥 지나쳤겠지만, '정조대왕이 예찬한 서초 종자로 재배한 담뱃잎이 함유돼 있다'는 광고 글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담배 광고에 '정조'가 언급되는 것이 바람직한 지 골똘히 생각느라 그랬다. 어느덧 나는 생활 속 찰나에서도 내 생각이나 궁금증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지난 1년 간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좀 더 내 목소리에 자신감을 얻게 된 듯하다.

이왕이면 제대로 내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나의 이야기로 엄마들의 현실을 드러내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시민기자로, '문화재' 하면 떠오르는 시민기자로... 그런 욕심으로 연말에 글쓰기 강좌를 3개나 들었고, 올해 또 신청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하는 시민기자로 독자에게 인사하고 싶다.


태그:#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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