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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측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 가수 서현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함께 부른 서현과 북측예술단 지난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측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에서 가수 서현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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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이뤄진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의 마지막에 소녀시대 서현이 등장해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서현은 곱고 청아한 소리를 만드는 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북한 가수들은 노랫말을 강조하듯 힘있게 열창했다. 그런데 이 방송을 같이 보던 초등학생 아이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북한 노래인 줄 알았단다.

이 곡은 서울 출신으로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한 안석주 선생이 1947년 KBS 방송국 3.1절 특집방송용 노래제작을 의뢰 받아 작사했고, 그의 아들 안병원씨가 작곡했다. 원래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지만, 이듬해 교과서에 실리면서 온 국민의 노래가 됐다.

하지만, 이제 이 노래는 북한 태생의 노래처럼 들린다. 더 이상 '통일'은 국가적 사명이거나 민족의 숙원이라는 언급이 되질 않고, 통일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을 딱 부러지게 설명해주는 경로도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당시 통일기금펀드를 조성하자고는 했지만 그 돈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설명을 한 적이 없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뜬금없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더니, 어느날 불쑥 개성공단을 폐쇄해 버리지 않았던가?

'통일'이 눈총 받는 시대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방남 이틀째였던 1월 22일 오후 공연장 후보 시설인 서울 중구 국립극장을 방문해 해오름극장을 확인하고 돌아가고 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방남 이틀째였던 1월 22일 오후 공연장 후보 시설인 서울 중구 국립극장을 방문해 해오름극장을 확인하고 돌아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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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레 '통일'을 언급하는 사람은 왠지 눈총 받는 듯하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에게는 그 어떤 설득을 해도 빨갱이로 낙인 찍히는 걸 예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통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을 넘어 북한이라는 단어 자체가 싫은 혐북 정서까지 생겼다.

탈북자들이 TV에서 경쟁하듯 쏟아내는 북한 사회의 부조리도 이젠 지겹고, 평창 올림픽에 온 응원단은 무섭고 예술단 공연은 촌스럽다고 조롱한다. 측은지심이란 게 없다. 그게 사실 북한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는 올림픽 축제에 나간 국가대표 동료끼리도 따돌림 의혹이 생기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통일이란 말만 들어도 우리도 살기 힘든데 북한 거지들까지 왜 거둘 궁리나 하냐는 식으로 외면한다. 그 와중에 현송월 단장이 모피를 입고 유명브랜드 빽을 든 모습을 지적한 기사에는 증오심 가득한 댓글이 이어진다.

삼지연공연단의 부르는 가요리스트에 'J에게'는 김정은의 J냐 문재인의 J냐며 따지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김정은 어머니의 애창곡이었다는 추측으로 분노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묻고 싶다. '만약 우리나라 대통령 어머니가 북한 유행가를 애창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북한 최고의 공연단이 우리나라의 노래를 연구하고 편곡해서 연주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문화적 우월감을 확인시켜주는 일 아닌가? J에게의 J는 누군가에는 첫 사랑 진숙이의 이니셜이 될 수도 있는거고 은사님의 이름이 될 수도 있다. 그건 부르는 사람의 의도가 아니라 듣는 사람의 성정으로 정해지는 것이고 그게 노래와 시가 존재하는 이유인데, 북한의 수준 높은 공연도 모두 대남침략전술이니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는 더더욱 커져간다.

1983년 KBS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은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거의 반 년 동안 진행됐다. TV 채널이 몇 개 되지도 않았지만 울음바다가 되는 프로그램이 종일 방영됐어도, 이산가족과 전혀 상관없는 국민들까지 같이 울며 위로했다. IMF 외환위기 때 전 세계를 탄복시켰던 금모으기 운동도 이런 국민 정서가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북한 사람에게 들었던 '통일의 의미'

스키경기장을 찾은 북한응원단. 미국선수들도 신기한듯 사진을 찍고 있다.
 스키경기장을 찾은 북한응원단. 미국선수들도 신기한듯 사진을 찍고 있다.
ⓒ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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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잘 살게 됐지만, 남북 분단으로 인한 국내의 갈등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자는 리본을 달아도 빨갱이가 되고, 전 세계인을 초청한 평화의 축제도 평양올림픽으로 폄하되고 증오를 부추기는 이념의 전쟁터로 전락했다.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전쟁터 후보지가 되고 있다는 것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살 것인가? 왜 통일이 필요한가를 묻는다면, 이런 분열과 증오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국민 개개인과 나라의 장래에 결정적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사람에게 통일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2001년 중국 회사 방문시 중국회사에서 데려온 통역이 당연히 조선족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북한 사람이었다. 며칠간의 일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불쑥 이렇게 물었다.

"남한 사람들은 통일이 고저 언제쯤이 될꺼라 믿습네까?"

사실 이 질문은 독일 바이어도 가끔 묻는 질문이고, 스페인에서도 기차 여행 길에 옆 자리에 앉았던 모르는 사람도 한국이란 말에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언제쯤일까' 적잖이 당황스럽기까지 한 몇 초가 흐르는 동안, 이 북한 사람은 이 조차도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평창올림픽 스키경기장
 평창올림픽 스키경기장
ⓒ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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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되어야 하긴 해도 내가 살고 있는 동안에는 안 됐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많습디다." "통일 그거이 관심없다고... 우리도 먹기 살기 바쁜데 북한 사람들 먹여 살릴 일 있냐고 하던데, 통일하자 그랬지 누가 언제 먹여 살려달라고 구걸했습니까?"

당시는 북한의 식량난으로 사람도 잡아먹는 다는 끔찍한 소문마저 돌 때였다.

"물론 통일이 되면 독일처럼 혼란스럽고 비용이 많이 들갔디요. 주사를 맞을 때처럼 물론 아프갓디만, 더 아프기 전에 맞아야 병을 고치디요. 한 민족끼리 통일을 이루자는 건 마땅한 일 아닙네까?"

이게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다. 전쟁을 멈추고 열렸던 고대 올림픽 정신을 계승하고자 부활한 올림픽이 두 번이나 치러진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 실마리는 바로 통일이며 이에 대해 적어도 통일을 논하는 것이 무관심이나 혐오로 매장돼서는 안 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태그:#통일, #평창동계올림픽, #북한응원단, #용평리조트, #우리의소원은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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