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요즘 10대들은 유튜브로 세상을 봅니다. 활자보다 영상이 익숙한 '유튜브 세대'는 궁금한 게 생기면 포털이 아닌 유튜브를 먼저 검색합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연예인을 제치고 새로운 초등학생 장래희망 1순위로 떠올랐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는 학부모와 초등학교 교사의 눈을 통해 '신인류' 유튜브 세대를 들여다 봅니다. [편집자말]
유튜브 알림이 떴다. 내가 구독 중인 우리 반 H의 'TV제로' 채널 업로드 소식이었다. 말없고 내성적인 H를 이해하려면 교실 관찰보다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담임만 몰랐을 뿐 H는 학교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제로님'이었다. H를 유튜버로 대할 때는 절대로 '님'자를 빼먹지 말아야 했다. 제로님을 알게 된 건 같은 반 친구들의 팬질 때문이었다.

"제로님 좀비 중에 무슨 캐릭터가 좋아? 님아 추천 좀!"
"좀비보다는 사람 쪽이 나은데. 흠 일단 볼까?"

아이들 세계에서 H는 권위자였다. 제로님은 '좀비고'라는 모바일 게임을 주제로 영상을 제작한다. 구독자가 500명이 넘고, 팬이 현금 10만 원에 달하는 유료 아이템을 선물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일푼으로 노가다 플레이(과금 결제를 하지 않고 노력으로 높은 등급을 지향하는 게임 방식)를 하는 11살 친구들에게 H는 대단한 존재였다. 유튜브를 보기만 하는 사람과 창작 활동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대우가 확연히 달랐다. 유튜브에서 인정받는 건 명예스러운 일이었다.

새로운 진로 '유튜버'... 부모도 적극 지원





심지어 H는 부모님의 지원까지 받았다. 돌이켜보면 교사 생활을 하면서 프로게이머 같은 꿈을 가지고 나름 진지하게 진로 계획을 세운 친구들을 보았다.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취미용 겜돌이와는 차별적인 생활양식이 필요했다.

예비 프로게이머들은 여가 시간과 용돈을 쪼개 유명 선수의 전략을 연구하고, PC방 정액 요금을 결제하는 등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한사코 반대했다. 정 하고 싶으면 머리 식힐 겸 해라 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아직까지 프로 게이머로 전국 무대에 이름을 비춘 제자는 없다. 

반면 H는 키즈폰 대신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썼으며, 요금제도 무한이었다. 집에 있는 작업용 PC에는 전문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애프터 이펙트와 프리미어 프로가 깔려있었다. 부모님이 아이를 유튜버로 키우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니 밀어준 경우였다. 흥미로운 건 H처럼 유튜버가 되고 싶은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을 설득하여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유튜브는 게임과 달리 진로 또는 취미 차원에서 학부모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영역이었다. 분명 유튜브에는 가짜 뉴스, 저질 콘텐츠, 미디어 중독 현상처럼 우려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활용 여하에 따라 고급 콘텐츠를 선별적으로 즐기거나, 제작자로 활동하며 경력과 수입을 쌓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최근 1인 미디어로 성공한 유튜버들이 주목받으며 유튜브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공간, 진로와 연결시킬 수 있는 시장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가정의 지지와 관심은 학생들의 행동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스마트폰 없는 애는 있어도 유튜브 안 보는 애는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 반 22명 중 스마트폰 없는 애는 3명 있어도, 유튜브 안 보는 애는 없었다. 10대는 엄청난 영상 소비자였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학습 내용과 관련된 영상을 틀어주려 유튜브에 접속했는데, 여학생들이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쌤, 집에서 딸이랑 핑크퐁만 봐요?"






맞춤 동영상 코너에 온통 영유아 콘텐츠만 가득한 걸 보고 육아 아빠의 생활 패턴을 분석한 것이었다. 그럼 너희는 어떤 화면이 뜨냐고 묻자 몇몇 애들이 자기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자랑하듯 보여줬다.

예상한 대로 게임, 먹방, 일상 리뷰가 최근 본 영상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그렇지만 유튜브로 검색하는 범위가 매우 넓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어른들이 구글이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에 쳐볼만한 내용도 일단 유튜브에 입력하고 봤다.

요즘 수학 1단원에서 억, 조 같은 큰 단위의 수를 배우는데 동기유발 활동으로 세계 부자들 순위와 재산 액수를 보여주었다. 그 내용이 재미있었는지 수업이 끝나고 더 상세히 알고 싶다는 학생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세계 부자 순위'라고 검색하면 관련 뉴스가 나올 거라고 알려주었다. 당연히 포털 사이트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로 된 기사를 검색할 줄 알았건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튜브에서 영상 처리된 뉴스를 시청했다. 

놀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작년에 이어 여학생의 최고 인기 놀이는 액괴(액체 괴물) 만들기이다. 대충 보면 물컹물컹하고 흐느적거리는 덩어리를 아무렇게나 쪼물딱 거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번 재료와 제작 방법이 달랐다.

물론 신 액괴 제작기술의 출처는 유튜브였다. 학생들은 팬케이크 굽기, 베이블레이드 최강 조합법, 나무젓가락 로봇 만들기 따위의 뭔가 과정이 자세히 드러나야 하는 정보 대부분을 유튜브에서 찾았다. 

혹시나 외국 아이들도 유튜브를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나 싶어 영어로 10세 전후의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검색해 봤다. 역시나 "How to make-"로 시작하는 어린이 제작 영상물이 넘쳐났다. 댓글에는 또래들이 남긴 질문과 대답이 줄줄이 이어졌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유튜브는 세계 그 자체였다. 

유튜브족 사고 방식 이해하려면





어릴 적 레고 블록 상자를 뜯으면 단계별로 제시된 조립 설명서가 들어있었다. 아주 정교한 사진과 안내글이 인쇄되어 있었지만, 중간에 약간이라도 생략된 부분이 있으면 한참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했다. 나는 여전히 새 물건을 사면 매뉴얼을 통독하는 버릇이 있다. 활자가 익숙하고 편한 선생님의 눈에 제자들은 굉장히 다른 정보 처리 패턴을 가진 외계인 같다. 

그런 점에서 유튜브의 인기를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하기 힘들다. 학생들은 영상을 보고, 반응하고, 제작하고, 수정한다. 15초짜리 광고에 짜증을 내면서도, 핫한 유튜버들이 광고 수익으로 부모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세태를 인지하고 있다. 교실에서 수업하는 나 역시 수업 자료의 영상물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유튜브가 주요 자료원이다. 

다음 주 과학 시간에는 지층을 관찰하는 수업이 예정되어 있다. 수평인 지층, 끊어진 지층, 휘어진 지층을 직접 관찰하면 최선이겠지만 그럴 여유가 되지 않아 유튜브에서 기가 막힌 자료를 찾았다.

각 지층 유형의 대표 장소인 경남 고성군 상족암, 전북 군산시 말도, 전남 여수시 사도를 360도 VR 영상으로 제공하는 콘텐츠였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 레벨업' 채널에서 제공하는 자료라 품질도 우수했다. 

아이들은 신기술에 민감하고, 어른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유튜브 다음에는 어떤 플랫폼과 매체를 사용하게 될까? 아마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하고 당분간은 유튜브를 좀 더 연구해 볼 생각이다. 유튜브족의 사고방식과 정서를 납득하려면 스스로 유튜브족이 되는 게 가장 빨라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로또교실33] 연재글입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