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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원은 잠시 쉴 곳을 찾아 대학 입학 후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계절을 보낸다.
 혜원은 잠시 쉴 곳을 찾아 대학 입학 후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계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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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울컥. 눈물이 차오름과 동시에 영화관 불이 켜졌다. 눈물이 수습될 겨를도 없이, 한꺼번에 우르르 일어나는 사람들에 밀려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럴 땐 엔딩크레디트도 영화의 일부라 주장하며 전등 스위치를 내리고 싶지만 별수 없다. 민망함은 나의 몫이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삼시 세끼의 대부분을 만들어 먹고 사는 데다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낸 나로선, 요리라는 관심사와 자연이라는 정서가 이렇게 잘 들어맞는 영화를 찾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혜원(김태리 역)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공부하는 고시생이다. 시험에는 애인만 붙었고 옥탑방 냉장고엔 썩은 양파만 뒹군다. '진상 고객'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활도, 인스턴트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는 삶에도, 모두 지쳤다. 혜원은 잠시 쉴 곳을 찾아 대학 입학 후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계절을 보낸다.

먹부림 영화라기에 배고플까 봐 미리 밥까지 챙겨 먹고 왔건만 웬걸. 음식이 나오는 장면마다 식욕 대신 눈물이 솟구쳤다. 시골집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혜원(김태리)이 문밖에서 나는 바람 소리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부터 눈물의 조짐이 보였다. 무서운 밤 혼자 잠을 청하는 혜원에게, 어린 시절 고라니 소리 흉내를 내며 혜원을 놀리던 엄마(문소리 역)의 목소리가 불쑥 찾아온다.

"고라니 우는 소리가 웬 미친 여자 우는 소리 같아. 꺄오~ 꺄오~"

혜원은 귓가에 맴도는 그 소리를 떨쳐내려 이불을 뒤집어쓰지만 결국 잠을 설친다. 이뿐만이 아니다. 혜원이 음식을 만들라치면 어김없이 엄마의 목소리가 툭툭 튀어나와 혜원을 불편하게 만든다. 혜원은 "제발 내 마음속에서 비켜주라, 엄마"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이 말을 듣지 못한다. 엄마는 혜원이 수능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났다. 편지 한 통만 달랑 남겨 놓은 채로.

혜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엄마는 혜원을 야단치거나, 잘못을 지적하거나, 신세 한탄을 하지도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모녀라기보다 자매나 친구 같다. 혜원이 엄마의 목소리를 불편해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내겐 이런 혜원의 모습이 왠지 익숙하다. 그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혜원이 엄마에겐 있고 우리 엄마에겐 없던 것

 혜원의 엄마에겐 있고 우리 엄마에겐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무심한 듯, 장난인 듯,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혜원의 엄마에겐 있고 우리 엄마에겐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무심한 듯, 장난인 듯,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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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예순아홉 살의 엄마가 있다. 올해로 11년째 혼자 사신다. 엄마와 나는 하루가 멀다고 한 시간씩 통화를 하고, 자주 밥을 같이 먹고, 종종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간다. 사이좋은 모녀지간 같아 보이겠지만 솔직히 엄마와 난 애증 관계다. 엄마가 무심코 건넨 이야기에 까칠하게 반응을 할 때가 많고, 때론 식사를 잘 챙겨 먹지 않는다거나 환기를 잘 시키지 않는다는 걸 문제 삼아 엄마에게 폭풍 잔소리를 해 엄마를 질리게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엄마가 내 삶에 조금이라도 간섭을 할라치면 나는 철저하게 방어막을 친다. 내가 생각해도 어떨 땐 참 정 없이 구는 딸내미이다. 뒤돌아서면 '그 말은 하지 말걸' '좀 더 잘 할 걸'하는 후회를 하면서도 막상 엄마를 마주하면 잘 안 된다. 나는 그 이유를 영화를 보며 짐작했다.

혜원의 엄마에겐 있고 우리 엄마에겐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무심한 듯, 장난인 듯,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현실 속 나의 엄마는 너무나 바빴고 자식들에게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온종일 집 안팎의 일에 정신없이 쫓겨 '엄마'와 '주부' 이외에 자신의 삶이란 전혀 없어 보였다. 반면 혜원의 엄마가 딸에게 보여준 모습은 모성애라기보다 깊은 우정에 가깝고 희생이라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삶을 즐기는 모습이다. 나는 그런 엄마를 가진 혜원이 부러웠고, 혜원 엄마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사이 나의 어느 한 부분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혜원과 나 사이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의 엄마는 집을 떠났으나 나의 엄마는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혜원의 엄마는 그가 어린 혜원과 관계를 맺어온 방식, 즉 깊이 개입하지 않으면서 넌지시 길을 제시하는 바로 그 방식으로 혜원의 곁을 떠났다. 편지조차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지 않았다.

갑자기 떠난 엄마에게 화가 난 채로, 엄마가 그리워질 때마다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내려 한 혜원의 모습에서, 내게 정성을 쏟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따뜻하게 대하지 않았던 엄마에게 여전히 화를 내며 미련을 품고 있는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래서 울컥했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딸'이라는 역할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내게 주어진 과제는 '딸'이라는 역할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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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은 엄마로부터 끝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혹시 어느 민족의 신화에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혜원과 그의 엄마는, 애증의 쳇바퀴를 반복해 돌리고 있는 나와 달리, 각각 홀로서기를 한 끝에 딸과 엄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관계로 다시 만났을지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이다.

이 영화는 내게 딸과 엄마였던 이들이 얼마나 나란히 성장할 수 있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일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선 어떤 시간을 통과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좋은 모델을 보여주었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딸'이라는 역할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딸은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얼굴을 따라간다. 온전히 닮고 싶었던 시기와 완전히 달라지고 싶은 시기를 지나면 서로를 닮은, 각자가 될 수 있을까. 이미 영화를 두 번 봤지만 한 번 더 봐야겠다. 엄마는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아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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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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