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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어디에서 살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일 년간 밥벌이에 얽매이지 말고 살아보자 결심한 참이었다. 회사도 그만뒀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이만큼 자유로운 시간이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싶었다.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건 의외로 굉장한 사치였다. 학교 다닐 때는 학교 근처에, 회사 다닐 때는 회사 근처에 집을 얻어야 했다. 실은 머무는 공간조차 어딘가에 매여있던 셈이었다. 처음으로 그런 제약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가 원하는 곳이 어딘지 생각하게 되었다. 책상에 앉아 빈 노트를 펼치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 살고 싶을까?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의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바다가 보일 것. 두 번째, 집값이 비싸지 않을 것. 세 번째, 도서관이 가까울 것.

그런 건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부동산 전문가도 전국을 대상으로 그런 매물이 있냐고 물었다면 헛웃음을 쳤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내심 해외까지 그 범위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 달간 머물렀던 태국 빠이의 기억을 곱씹으며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했다.

인공지능도 해결할 수 없는 그 문제를 위해 결국 발품을 팔기로 결심했다. 이름하여 집 구하기 전국투어. 일단 첫 번째 조건인 '바다가 보일 것'을 힌트 삼아 지도를 펼쳤다. 쓸쓸한 서해보다는 왠지 희망찬 해돋이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동해가 좋았다.

그럼 이곳 중 집값이 비싸지 않으며 도서관이 가까운 동네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일단 떠나보자!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성격이 한몫했다.

연고도 없는 금촌에서 일년을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시골집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시골집
ⓒ 영화사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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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차를 몰고 거제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밤 열두시에 출발했는데 아침 일곱시가 되어서야 거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외로 거제는 강남 못지않은 대도시였다. 그걸 모른 건 나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거제를 지나 부산, 포항, 영덕, 양양, 삼척, 강릉, 속초를 둘러보았다.

차를 몰고 해안을 따라 달리다 마을이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고 한 바퀴 둘러보았다. 마을이 마음에 들면 부동산부터 찾았다(시골집은 부동산으로 찾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부산과 포항은 역시 대도시인지라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양양은 의외로 서퍼들의 베이스캠프라 비쌌다.

동해시에서는 기업 회장님께서 은퇴 후 사용하신다는 저택을 싼값에 넘겨주겠다는 제안도 받았고(그러나 그 싼값은 너무나 회장님 기준이었다) 영덕에선 갑자기 이장님이 마을 투어를 시켜주시기도 했다.

일주일의 소소하지만 재밌는 투어를 마친 후 내가 자리를 잡은 건 엉뚱하게도 파주 금촌이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걸 채우고도 남을 다른 매력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영덕과 동해시는 아직도 한번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연고도 없는 금촌에서 일 년을 살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금촌에서 지내던 그 일 년이 생각났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금촌에서 지내던 그 일 년이 생각났다
ⓒ 영화사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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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금촌에서 지내던 그 일 년이 생각났다. 리틀 포레스트는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고달픈 서울 생활을 피해 시골 집으로 내려온 혜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혜원의 작은 성장을 음식과 함께 담아내 잔잔하게 보기 좋았다. 이 영화에서 서울살이의 고달픔은 편의점 삼각김밥과 도시락으로, 시골 집의 푸근함은 온갖 다채롭고 창의적인 요리로 비유된다.

완전한 시골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그곳에 살 때가 내 삶에서 가장 많은 딴짓을 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금촌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6년간 회사를 다니며 모은 돈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빼 먹으며 지냈다.

회사를 다니며 하지 못했던 일들을 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혼자서 유튜브를 보고 기타를 배웠고 선생님 없이 혼자 그림을 그려보았다. 집구석 영화제를 열어 친구들을 초대했다. 친구들을 먹인답시고 창의적이고 맛없는 요리들을 만들어냈다. 집 앞 체육관에서 복싱을 시작했다. 시를 낭독하고 소설을 썼다. 무엇보다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었다.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니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하는 것 자체가 좋으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그 딴짓엔 요리도 포함되어있었다. <리틀 포레스트>처럼 직접 농사를 지어 먹지는 못했다. 집 앞에서 고추와 방울토마토, 무순, 딸기를 키워봤지만 모두 비실거리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큰 재래시장이 있어 싼값에 식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죽지 않고 잘 큰 무순으로는 구절판을 가장 많이 해 먹었다. 도우없이 프라이팬으로 피자 만드는 노하우도 익혔다. 딸기와 바나나로 잼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소포로 보냈다(바나나로는 왜 잼을 잘 안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겨울엔 커다란 솥에 과일을 썰어넣고 뱅쇼를 만들어 먹었다. 시골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중요한 건 어디에 머무냐 보다는 그만한 시간이 있느냐였다. 금촌에서는 나가도 할 일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딴짓을 할 만한 시간도 그만큼 많았다.

그렇게 금촌에서 일 년을 보냈다. 계절마다 변하는 금촌의 하늘을 보면서.

다시 서울로 돌아와 오랜만에 회사 동료의 모임에 나갔다. 사실 전 직장 동료와의 만남은 부담스러웠다. 다들 그곳을 나온 내게 어떤 '답'을 원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는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말해주길 바랐고 누군가는 이곳만이 탈출구라 말해주길 원했으니까. 그러나 모두에게 지옥인 지옥이, 혹은 모두에게 천국인 천국이 있을까. 동료들은 내게 어딘가 분위기가 변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역시 이것이었다.

"너 편안해 보인다."

일 년간 딴짓을 하던 금촌에서의 그 시간이 내겐 힐링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자체적인 독서치료, 그림치료, 놀이치료 같은 것이었달까? 동료들 말대로 조금 편해지고 나서야, 나는 그 전의 내가 지쳐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금촌은 당시의 내 '리틀 포레스트'였다.

다시 시작된 서울살이, 나를 지탱할 '곶감'

 금촌에서 살던 집
 금촌에서 살던 집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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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를 본 지인들은 이 영화가 퇴사 권장 영화 혹은 귀농 장려 영화라며 웃었다. 싱그러운 계절의 변화와 침이 꿀꺽 넘어가는 다채로운 음식, 민낯이 예쁜 김태리가 어우러져 편안히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가 꼭 '시골에 살자'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이 영화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외려 회사에서 뛰쳐나온 재하(류준열 분)가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라고 한 것이나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봐야겠다"라는 말이 아닐까.

가끔 금촌에 살던 그때를 생각하면 픽픽 웃음이 난다. 스쿠터로 논 사이를 달리다 개에게 쫓겼던 일이나 옆집 꼬마와 친해져서 떡볶이를 나누어 먹던 일. 친구들이 놀러 왔다가 끝도 없이 펼쳐진 논밭을 보며(사실 반대편은 신도시였는데도) 경악했던 일들을 기억 속에 잘 저장해두었다. 영화 속에서 혜원이 곶감을 만들어두듯, 그 기억은 한 겨울에 나를 지탱해줄 곶감이 되었다.

일 년의 금촌살이가 끝나고 지금 나는 서울의 중심에서 지낸다. 최근 2주 동안에는 너무 바빠 밥을 제대로 챙길 틈도 없었다. 시간이 여유로울 때 내가 하는 것이 '식사'라면 요즘 같을 때 내가 챙기는 건 '끼니' 같다. 허나 지금 이 바쁨이 괴롭지 않다. 도망쳐온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것도 아니니까. 영화 속 재하처럼 힘들지만 이 길이 내게 더 맞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 시골에 돌아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닐 테니까. 다만 내겐 가끔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 '아주 심기'를 준비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나만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는 다시 금촌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영덕이나 동해, 아니면 빠이나 페루의 우루밤바가 될 수도 있겠지.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할까? 혹은 요리의 재능을 살려 다른 분야에 뛰어들게 될까? 결국 재하와는 잘 만나게 되었을까? 영화는 혜원이 엄마가 돌아온 듯한 집 안으로 반갑게 뛰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확실한 결말은 없다. 이 모호한 결말이 나는 답답하기보다 설렜다. 마음이 단단해진 사람에게는 그 막막함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일 테니까. 요리 전문가가 된 혜원을, 선생님이 된 혜원을, 시골에 정착한 혜원을, 야심차게 서울 살이를 다시 시작한 혜원을 상상한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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