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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최근 청소년시집을 펴냈다. 나는 시를 썼고 아들은 발문을 썼다. 시집의 제목은 <나는 고딩아빠다>(2018, 창비교육). 고딩아들을 주된 소재로 했기 때문에 주인공은 아들이다. 녀석은 자신을 소재로 쓴 시에 대해 발문을 쓰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대개의 발문이 유명평론가나 작가들이 쓰는 데 반해 부자가 함께 글을 엮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소통 통로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집에 들어있는 발문과 시인의 말을 요약 정리한다.

<나는 고딩아빠다> 표지.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다양한 글쓰기를 진행해 온 정덕재 시인의 청소년시집.
 <나는 고딩아빠다> 표지.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다양한 글쓰기를 진행해 온 정덕재 시인의 청소년시집.
ⓒ 창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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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아들의 발문] "아빠는 불량식품 같은 느낌"

아빠는 나에게 불량식품 같은 느낌이다. 맛있지만 자극적이고 몸에는 안 좋은 그런 느낌말이다. 어렸을 때 처음으로 배달음식을 집에서 시켜먹거나 쌀쌀한 축구장에서 함께 컵라면을 먹을 때 그랬다. 집에 들어올 때 치킨이나 피자 같은 음식을 사올 때도 그랬고 노상 방뇨를 하던 아빠를 보고 따라했을 때도 그랬다.

처음 술잔을 부딪쳤을 때, 그리고 최근에 엄마 몰래 아빠에게 용돈을 받을 때 또한 그랬다. 어린 시절, 일에 바쁘고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자주 보지 못했던 아빠는 가끔씩 불량식품처럼 다가와 내 기억 속에 남았다. 거기에는 불량식품의 중독성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내 주변 대학 동기들이나 고등학교 동창을 보면 학교 때문에 몸이 멀어지거나 아니면 그냥 스무 살이 넘었다는 이유인지 부모님과 서먹서먹해지고 연락이 뜸해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부자지간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나이를 먹어 갈수록 관계의 친밀도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알려주고 있다. 시집에는 내 고딩 시기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바라보는 아빠의 생각이 담겨있다. 시를 읽다보면 그때 상황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나와 아빠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 주변 친구들까지 시에 등장한다. 등하교 할 때 아빠 차에서 나눴던 시시콜콜한 대화들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중략)

이번에 펴내는 아빠의 세 번째 시집은 한 달 넘게 여러 번 읽었다. 내가 긴 발문을 써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는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부자지간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봄날의 오리>를 보면 내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땡땡이 치던 모습이 머릿속에 바로 그려진다. 당시에는 땡땡이를 칠 때의 두근거림과 걸렸을 때의 후회가 고딩에게는 크게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이제 와서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마냥 재밌기만 한 사건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의 힘과 내 기억의 과거가 미화되었기 때문일까 싶기도 하다.

<수업시간에 소설책 읽기>에 나오는 타우누스시리즈로 유명한 독일 추리소설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는 작가다.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한 페이지 읽고 복도에서 감시하는 선생님 눈치보고 또 한 페이지 읽기를 반복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다시 돌아보면 어차피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이라면 소설책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왜 금지 시켰나 어이없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공은 무죄>를 읽으면서도 느낀 것 이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참 답답한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답답하게 느꼈던 선생님들을 졸업 후 재수하는 동기들과 후배들의 수능 시험을 응원하러 갔을 때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정말 반가워서인지 아니면 반가운 척 하는지 알 수 없는 인사로 나를 대했을 때, 속이 좀 울렁거렸던 기억도 있다.

<둘 다 땡땡이>와 <가방은 대체로 비어 있다>는 내 고등학생 시절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유독 야간자습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학교에 밤 10시까지 남아있는 것은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시에 나오는 나와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야간자습을 하지 않고 그 시간에 알바를 하는 내 친구는 요즘도 가끔 술을 한 잔 하면서 그때 이야기를 한다.

생산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피시방에 가거나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맥주 한 캔 씩 마시곤 했는데 그때가 하루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하루의 그 달콤한 잠깐의 시간대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은 욕구는 있다.

아빠는 내 빈 가방에 대해서 자주 얘기를 했었다. 가벼워서 좋겠다고 자주 말을 했는데 그 때는 정말로 좋겠다는 건지 놀리는 것인지를 잘 몰랐었다. 그런데 시를 읽고 나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만 봐도 충분한 답이 된 것 같다. (중략)

시를 읽으면 그때가 생각나고 친구들을 비롯해 주변인물들이 언급될 때 마다 잊고 있었던 상황들이 다시 떠올라 좋았다. 마지막 두 편인 <영국에서 축구 구경>과 <가불청년>은 고딩의 억압에서 벗어나 있는 최근의 내 모습이다. 가불청년에 나오는 이야기가 일상인 나에게는 마냥 재밌게 읽을 수만은 없다.

청춘을 저당잡히지 말라는 시 구절은 씁쓸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청년세대들의 불안과 도서관에 가면 공무원 수험서만 보이는 상황이 남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서관 앞에는 현수막이 많이 걸려있다.

토익OO점 상승이나 OO시험합격 그리고 취업자격증 안내를 하는 내용 등이다. 이것이 현실이라지만 현실감각이 없는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만 하면서 학교 앞 술집으로 간다. 아직 나는 2900원 짜리 계란찜 하나를 놓고 소주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청년이다.

나에게 이 시집은 타임캡슐과 같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추억에 잠길 수 있다. 행복했지만 슬프기도 했던 과거를 회상할 수 있다.

[50대 시인의 말] "아들의 길에 대해 생각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졸린 눈을 비비는 녀석을 차에 태워 교문 앞에 내려주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물론 특별히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쩌다 가끔 교문 앞에서 별을 세다가, 정전이 된 교실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기를 바라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녀석에게 초딩 수준의 부질없는 상상을 들려줬더니, 아들은 그런 생각을 자주하면 현실이 될 거라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어릴 적 장기판 앞에 마주 앉기를 몇 번, 운동장에서 공 뺏기 놀이를 몇 번, 술에 취해 치킨 한 봉지 들고 가기를 여러 번, 그래도 가장 꾸준히 한 것은 소파에 누워 녀석을 두 다리로 받들어 브라질과 이탈리아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가 있는 영국에 가는 비행기 놀이였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축구를 잘하는 나라라는 점이다. 녀석의 축구사랑은 졸업 때까지 이어졌지만 비행기 놀이는 중도에 멈췄다. "아빠, 이제는 다리 부러져" 내 키를 훌쩍 넘어선 고 2 여름쯤이었던가, 이 말 한 마디와 함께 비행기는 더 이상 뜨지 못했다.
 
녀석을 지켜보거나 아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재와 이야기의 대부분은 아들의 생활과 실제로 관련된 것들이다. 녀석은 학교에 다니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생각했다. 친구들과 축구공을 차며 탄력을 잃은 공의 운명을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빈 가방이 무거웠던 것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짐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의 생활을 바라보며 자주 길을 생각했다. 이정표 없는 인생의 길과 길 밖의 인생을 그려 보았다. 비슷한 세대들이 만들어낼 세상의 아름다움 혹은 비극적인 미래를 떠올렸지만, 그 또한 무기력한 상상이었다.

시집을 묶을 즈음에 관계를 생각했다. 시에 등장하는 혈연의 부자관계가 아니라 시적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과의 관계를 돌아봤다. 화자의 시선에 따라 대상은 가슴에 안기기도 하고, 저 멀리 풍경으로 놓여 있기도 한다.

이 시집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시인의 아들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지극히 사적인 선물이다. 때로는 선물이라는 게 받은 사람이 다른 이에게 몰래 주는 경우가 있고 형편에 따라 중고매장에 내놓기도 한다. 이 시집이 누군가의 손을 타고 여기 저기 돌아다녀 읽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어쭙잖은 바람이다.


나는 고딩 아빠다

정덕재 지음, 창비교육(2018)


태그:#고딩아빠, #고딩, #청소년시집, #청소년문학, #고등학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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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글쓰고 영상기획하고, 주로 대전 충남에서 지내고, 어쩌다 가끔 거시기 하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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