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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콜포비아(call phobia)'를 아시나요? 전화와 공포증의 합성어로, 전화통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통화보다는 문자나 메신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콜포비아 세대'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콜포비아'를 둘러싼 사는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야, 누군데 이렇게 친절해? 웬일이냐 네가?"
"네?"

업무 협의차 방에 찾아왔던 선배가 도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는 내게 던진 말이다.

"저요? 제가 전화 받을 때 까칠해요?"
"뭐, 네가 전화 받을 때만 까칠한 건 아니지."

그렇다. 나는 까칠한 마흔네 살 여자이고, 남자들이 90퍼센트가 넘는 일터에서 10년째 버티고 있는 중이다.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닌데 성격이 나빠서 '힘들다'는 얘기를 듣는 것으로는 부족한지, 전화 받는 것마저도 까칠하다니. 짐작만 했던 인물평을 직접 확인하게 되니,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싫은 것을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니까 말이다.

"들켰네요."

고백하자면, 업무 중에 울리는 전화가 너무 싫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화 때문에 방해받는 그 시간이 싫고, 갑작스러운 용건들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마주쳐야 하는 순간의 '어리바리함'도 싫다. 

무엇보다, 내가 느낀 '방해받았다'라는 불편함이 상대에게 전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싫다. 언제부터였을까?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니면, 핸드폰이 일상화되어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생각했던 때부터였을까? 정확한 시작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을 하는 동안은 전화보다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더 편하다.

이 전화가 내 건지 회사 건지

 고백하자면, 업무 중에 울리는 전화가 너무 싫다
 고백하자면, 업무 중에 울리는 전화가 너무 싫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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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어떻게 받는 게 좋아?"


동료들과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들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던 중에 한 친구의 하소연이 크게 남는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업무 전화 때문에, 가끔은 이 전화기가 내 것인지 회사 것인지 모르겠다니까. 어떤 날은 업무 전화를 받다가 배터리를 다 써버린 적도 있어. 개인 전화기를 따로 가지고 다니는 게 답일까? 그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데."

2010년이었다.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의 대성공은 '스마트폰'이라는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신문물을 내 앞에 가져다 놓았고, 회사에서는 '업무의 스마트화'라는 표어를 걸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라고 장려했다. 이유는? 회사의 업무 시스템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언제라도 '일'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이게 '스마트화'의 요지이자 핵심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하라는 회사의 '의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당시 회사에서는 일정 액수의 통신요금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고 '지원금'이라는 당근은 당시의 아이폰 열풍과 패키지로 묶여있는 '홈쇼핑 히트 상품' 만큼 유혹적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사무실의 유비쿼터스화'라고 불렀는데, 요즘 사람들에겐 너무 오래된 언어일 수도 있겠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지만, '유비쿼터스'란 나름대로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았던 신조어였고 '언제 어디에나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라고 한다.

어쨌거나, 나는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지원금과 함께 아이폰을'이라는 회사의 당근에 넘어간 대가를 꽤나 오래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당시 구입했던 스마트폰에는 회사의 보안 시스템을 반드시 설치해야 했고, 시스템이 설치된 전화기는 내가 회사 안에 있는지 밖으로 나갔는지를 계속 확인하느라 바빴다. 어떻게 알았냐고? 회사 안에 들어오는 순간 카메라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모를 수가 없지.

이것뿐이 아니다. 전화기에 깔린 회사 업무 시스템은 계속 업무 메일 알람을 울려대고 있었고, 확인하지 않으면 곧잘 업무 전화가 울렸다. 아마,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받는 게 더 짜증스러워졌던 때가 말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이전에도 업무 시간이 끝나서 회사를 벗어나면 일터에서 오는 전화는 받지 않는 게 원칙이었는데, '업무의 스마트화' 이후로는 업무 시간과 개인 시간의 경계가 계속 모호하게 무너져버렸다. 그렇다고, '지원금'의 굴레에 갇혀 업무 전화를 무턱대고 '거부'할 수도 없었으니, 싫은 감정이 점점 자라났고 이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버렸던 것 같다.

"부장님, 제가 준비되면 회신 드릴게요"

 '까칠함'이라고 통칭되는 나의 전화 응대 태도는, 어쩌면 이 모든 '소통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까칠함'이라고 통칭되는 나의 전화 응대 태도는, 어쩌면 이 모든 '소통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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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용) 카톡은 안 했으면 좋겠어. 카톡은 그냥 개인 메신저로만 쓰고 싶어."
"그냥 메시지를 남겨주면 안 되나? 내가 편한 시간에 연락을 하면 되잖아. 지금은 다른 일로 바쁠 수도 있고 말이야."
"이메일을 쓰면 되잖아. 글자 수가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파일도 보낼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업무 이력도 남길 수 있고, 장점이 많은데 왜 계속 전화로 지시하는 거야?"
"전화로 하는 게 증거가 안 남잖아. 매번 녹음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동료들과 업무 연락을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좋은지 얘기하는 중인데, 다들 생각이 참 다양하다. 대학원 실험실에 들어가면서 일정한 조직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1995년이니, 그 사이 많은 의사소통의 도구가 새로 나타나긴 했다.

1995년에는 출장 신청을 하려 해도 교수님께 직접 서명을 받을 수 있도록 결재 파일을 들고 다녔었는데, 요즘엔 거의 전자결재로 바뀌어서 더 이상 결재 파일에 머리를 맞았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요즘엔 전화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으니 놀라울 뿐이다. 나도 가끔 적응이 안 되는데 선배들은 '아직도 적응하는 중'일 수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니,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이 이해될 만도 하지만 (이해하기) 싫다.

가끔 내가 왜 직접 통화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업무상의 전화 통화' 얘기이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전화는 언제라도 좋다! 항상 준비되어 있으니까.) 결론은 단순하다.

전화 통화는 상대방과 내가 같은 시간에 같은 사안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만 소통이 가능하다. 전화를 걸겠다고 결심한 상대방은 용건을 준비한 상태로 나를 불러낸 것이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응대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나는 그 사안을 몰랐을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준비하지 못한 채 상대방이 되는 경우도 있다. '까칠함'이라고 통칭되는 나의 전화 응대 태도는, 어쩌면 이 모든 '소통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부탁하고 싶다.

"부장님! 업무와 관련된 사항은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연락 주세요. 제가 준비가 되면, 업무 시간 내에 꼭 회신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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