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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할아버지는 '멀쩡한 한글로 장난치는 짓'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독서실 광고라고 했더니, 더욱 기막혀 하셨다.
▲ 문제의 '스터디센터' 광고 이웃집 할아버지는 '멀쩡한 한글로 장난치는 짓'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독서실 광고라고 했더니, 더욱 기막혀 하셨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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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한글이야, 영어야. 당최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출근 길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만난 이웃집 할아버지가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광고지를 보고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셨다. 곁눈질로 슬쩍 보니, 얼마 전 인근에 개업한 독서실을 홍보하는 전단지였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라 그 할아버지의 푸념소리가 되레 어색하게 들렸고, 순간 '꼰대짓'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가만 보니 조금 너무하다 싶긴 했다. 독서실을 '스터디 센터', 개인 학습실을 '솔리터리 룸', 대화방을 '소셜 스페이스 룸', 컴퓨터가 갖춰진 휴게 공간을 '크리에이티브 룸' 등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게 맞는 영어식 표현인지는 의문이지만, 영어에 비교적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사진만 보고도 어떤 곳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기실 그 할아버지가 기막혀 한 건, 다름 아니라, 우리글이라 읽을 수는 있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굳이 영어를 발음이 나는 대로 우리글로 옮겨 놓은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곧, 독서실을 독서실로 부르지 않겠다면, '스터디 센터'를 차라리 'STUDY CENTER'로 적으라는 요구다.

승강기 안 할아버지와의 데면데면했던 만남을 소재로 수업시간 아이들과 잠깐 대화를 나눠보았다. 놀랍게도, 그분을 순식간에 까막눈으로 만들어버린 그런 영어식 표현을 아이들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고, 여지없이 '꼰대'라며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되레 우리글로 쓰면 왠지 촌스럽게 느껴진다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독서실보다는 '스터디 센터'가, 휴게실이라는 밋밋한 표현보다는 '크리에이티브 룸'이 훨씬 더 있어 보이잖아요. 제가 사장이래도 그렇게 이름 지을 것 같아요."

영어로 된 이름이 우리글보다 '있어 보인다'고 말하는 아이들. 하긴 몇 해 전 영어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별도의 영어식 이름을 짓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얼마 전 문을 닫았지만, 인근의 유치원 이름도 '리틀 아메리카'였다. 조금 삐딱하게 해석하자면, '미국 식민지'쯤 될 텐데, 민망하지도 않았던지 성조기를 배경 삼은 간판이 건물만큼이나 컸다.

당장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신발은 죄다 영어로 돼 있다. 모두가 해외로 수출되는 건 아닐 텐데, 브랜드 이름뿐만 아니라, 요즘 들어서는 옷 안에 부착된 취급 설명서 라벨에서조차 우리글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선지 옷이나 신발에 적힌 이름만 봐서는 국내산인지 외제인지 분간해내기가 쉽지 않다.

언제부턴가 크기를 대, 중, 소로 표현하는 경우도 사라졌다. 실상 똑같은 뜻인데도, 대신 L, M, S라는 영어 알파벳이 그 자리를 꿰찼다. 영어를 십 수 년 동안 배웠어도 외국 사람을 만나면 말 한 마디 못 꺼낸다고 조롱받을지언정, 백화점에서 식당에 이르기까지 '라지 사이즈(Large Size)'라고 표현하지, 어느 누구도 '큰 것을 달라'고 말하진 않는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가 세련되어 보인다는 아이들

부러 아이들에게 입고 있는 외투의 영어식 브랜드를 우리말로 옮겨보라고 했더니, 이내 교실은 시끌벅적 아수라장이 됐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굴지의 국내 등산복 브랜드를 '검정 소', '산골짜기', '빨간 얼굴' 등으로 바꿔 부르며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영어를 우리글로 옮겼을 뿐인데도, 몇몇 아이들은 마치 북한에서 만든 제품처럼 느껴진다며 무척 어색해하기도 했다.

한 아이는 글로벌한 시대에 영어가 세련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얼음 보숭이(아이스크림)'와 '가락지 빵(도넛)' 등의 우스꽝스러운 북한식 표현을 굳이 따라할 필요가 있느냐며 되레 반문하기도 했다. 그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언어 습관일 뿐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라고 짐짓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 사람들이 쓰는 말을 통해 북한 사회의 폐쇄성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말투와 억양을 흉내 내며, 오랫동안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다보니 우리처럼 영어가 자신들의 언어 습관에 스며들 기회가 없었을 뿐, 향후 문호가 개방되면 곧 달라질 거라고 덧붙였다. 분명 너무 나간 억측이지만, 결국 익숙하지 않다보니 어색하고 별스럽다는 것이다. 

"'국화주'라면 또 모를까, 촌스럽게 '들쭉술'이 뭐에요. 자동차 이름에 뜬금없이 '평화'를 갖다 붙이고, 맥주 이름과 축구팀 이름에 '대동강'과 '압록강'이 들어가는 건 그렇다 쳐요. 아무리 미국을 싫어한다 해도 그렇지, 명색이 연예인인데 밴드 이름이 '모란봉 악단'인 건 좀 심하지 않아요?"

사실 이쯤 되면, 남북한의 이질적인 언어 습관을 차치하고라도, 우리글 한글에 대한 폄훼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아이들은 대화중에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을 자연스러워 하고, 정확한 의사 전달에도 보탬이 된다고 여긴다. 한 번은 친구와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기 벌칙 게임을 한 적이 있다는 한 아이는 대화하다 답답해 죽을 뻔했다고 당시의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마침 그때, 엊그제 새로 장만한 옷을 입고 교실 뒤 거울 앞에 선 아이에게 친구들은 이구동성 '핏이 산다'고 칭찬했다. 이 말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즐겨 쓰는 '체형에 맞다'거나 '잘 어울린다'는 뜻의 '반영반한(半英半韓)식' 구어체 표현이다. '스키니한' 바지가 '핏감'이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는데, 만약 이 표현을 그 할아버지가 읽게 된다면, 아마도 '핏'이 어떤 외국인의 이름이거나 오타인 줄로 착각하게 될 것이다.

애먼 아이들을 탓하자는 건 아니다.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오롯이 기성세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TV와 인터넷을 열어보라. 넘쳐나는 수많은 광고 문구 속에 과연 온전한 우리글로 된 게 몇이나 되는지. 얼마든지 우리글로 바꿀 수 있고, 또 본디 우리글인 것을 억지춘향 식으로 영어를 끌어다 붙인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넘쳐나는 영어, 따지고 보면 기상세대의 책임

아니 수고롭게 TV와 인터넷을 켤 필요도 없다.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봐도, 좋은 우리글을 두고 왜 저렇게 썼나 싶은 것들이 부지기수다. 이 글을 쓰다 말고, 잠시 양치질하러 들어간 화장실의 용품에서조차 온갖 '세련된' 영어들로 뒤범벅이다. 솔직히 지금껏 한 번도 유심히 살펴본 적 없지만, 읽자니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다. 

'딥 클렌징' 효과가 있는 샴푸 옆에는 '스타일리쉬한' 연출에 도움을 주는 '트리트먼트'가 있다. 세면대 위에는 '덴탈 케어' 효과가 탁월한 '멀티 액션' 치약과 '그립감'이 좋은 칫솔이 꽂혀 있다. '마일드한' '클렌징 폼' 옆에는 '내츄럴한' 느낌을 주는 '수딩' 젤과 '모이스춰라이징' 로션이 갖춰져 있다. 제품마다에 영어가 아닌 한글로 이렇게 적혀 있다.

제품을 출시할 때 이렇게 바꿔 적어놓으면 안 되는 걸까. 모발 세정 효과가 탁월한 샴푸, 세련된 머리 모양을 연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모발 보호제, 치아 보호 효과가 있는 다기능 치약과 손잡이가 편한 칫솔, 부드러운 거품 비누, 그리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피부 진정용 젤과 보습용 로션으로. 영어 알파벳이 적혀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제품들 모두 내수용인데, 굳이 영어식 표현을 고집하는 이유를 당최 알 수 없다.

하긴 학교도 떳떳하긴 어렵다. 명색이 미래세대를 길러내는 곳일진대, 교실 안팎을 둘러보면 우리글이 시나브로 뒷방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일례로, 개설된 수많은 동아리 중에 우리말로 된 이름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언제부턴가 영문 이니셜을 사용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개인 사물함이 놓인 공용공간이 '홈베이스'고, 진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이 '내비게이션 룸'으로 명명한 마당이니 누가 누굴 탓하랴.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됐다고 손 털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멀쩡한 우리글이 제대로 된 표현인지도 의심스러운 영어의 남용으로 인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축소되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한때 난 데 없는 '급식체'가 세대 간의 의사소통을 방해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에 비하면 사소해보이기까지 한다.


태그:#한글, #국적불명 언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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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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