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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반란을 일으키거나 대역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나 정치 분야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고대에는 전쟁 영웅들이 이름을 남겼고, 현대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인 정치인이 이름을 남긴다. 때문에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속 이야기들도 대부분 엘리트와 사회 주류 계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때문에 민중들의 이야기는 보통 묻히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뭔가 이끌기도 쉽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저평가된다. 사람들이 탄압받거나 고통을 겪는 일이 발생해도 대부분 폭군이나 악정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다. 악정을 해결하는 경우에도 폭군과 맞서 싸운 영웅의 노력이 평가된다.

하지만 세상에 위대한 사람들만 살아왔을 리가 없다. 역사의 어느 시점, 어느 순간에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해왔다. 그들은 사회의 먹거리를 책임졌고 산업 현장의 일꾼이 되었고 민주주의를 지키기도 했다. 이들은 사회 주류에 맞서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고, 죽음을 각오하고 전체주의와 싸웠다.

 유럽민중사
 유럽민중사
ⓒ 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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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민중사>는 그런 민중들의 관점에서 유럽사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나폴레옹, 비스마르크같은 권력자들의 입장에서 유럽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이 주인공으로 삼는 것은 사회의 중심을 이루었던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 보통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했고, 어떤 희생을 겪었기에 오늘날의 사회가 탄생했는지 진보적인 관점에서 조명한다.

책이 다루는 시기는 종교 개혁기부터 현재까지다. 저자는 종교개혁 시기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의의도 있지만 민중을 탄압했다는 한계도 명확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시기, 가톨릭 교회는 점점 부패해 갔고 돈을 버는데 골몰했다. 독일에서 루터가 종교 개혁의 불을 당기자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후에는 종교의 자유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은 사회 개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농민들은 농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개혁을 추구했다. 반면 개혁을 부르짖었던 루터는 농민들의 운동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농민들은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도움이 되는 요구안을 제시했다.

농민들이 제시한 요구는 분명 구원의 본성을 둘러싼 모호한 논쟁과 달랐다. 1525년 3월에 독일어를 쓰는 평민들이 모여서 12개조를 합의했고, 12개조의 인쇄본이 두 달 안에 2만 5000부 넘게 유포됐다. 요구 중에는 십일조의 10퍼센트 이상을 공공 목적에 쓸 것, 주임 사제의 생계비로는 적정 금액만 공제할 것 등이 포함됐다. 또한 농노제 폐지, 낚시하고 사냥할 권리의 회복, 세금, 소작료, 강제노동의 제한, 일체의 독단적 사법과 행정 종식도 있었다. - 59p


이후 농민들의 요구는 철저한 탄압에 의해 분쇄되고,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저자는 종교개혁이 유럽 일부를 로마의 착취에서 해방시켰지만,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꿈꾼 이들은 분쇄당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봉건적 구조는 유지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봉건적 체제를 부수는 시발점이 되었다. 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그중에서도 프랑스 혁명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다. 여성들은 가정 내 생계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무시당하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굶주리는 가족들을 위해 들고 일어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혁명 이후에는 여성의 경제적 종속을 비판하고 여성의 자연권을 주장했다.

10월에 베르사유 왕궁을 향해 행진한 한 무리의 여성 시민들은 프랑스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임을 예고했다. 여성이 수동적이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대담성을 발휘하며 여성들은 루이 16세와 왕가를 윽박질러 파리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 97p

근대 이후의 민중들은 뒤이어 발생한 산업 혁명 체제에 편입되었고, 민족주의 속에서 전쟁터에 파병되어야 했다. 제국들은 식민지 개척과 무역에 사람들을 쏟아 넣었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바람 속에서도 사람들 모두가 이를 달갑게 여긴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 사보타지와 노동조합 결성으로 제국주의에 맞서서 투쟁했다. 세계 대전이 발생하는 동안에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여 레지스탕스 활동을 시도했다. 이런 노력은 좀 더 평등한 유럽이 자리잡도록 하기위한 시도였다.

저자는 냉전 시기의 양 진영에 모두 비판적이다. 자유 진영은 복지 제도를 추구하는 남미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공산 진영에 맞선다는 명분하에 시민을 짓밟는 독재자들을 말리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의 세력권으로 간주된 그리스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독재 시기에 탄압을 당해야 했다.

공산 진영 역시 공산 진영대로 소련의 말을 듣지 않는 동구권 사회를 짓밟았다. 스탈린 사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에 변화의 바람이 불자 군대를 투입해서라도 탄압했다. 저자는 유럽의 민중들에게 철저한 진영 논리로 접근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들이댄다.

중세, 근대, 냉전기를 포함하는 역사 속에서 보통 사람들은 대개 패배했다. 탄압의 주체는 제후, 성직자일 때도 있었고 독재자일 때도 있었다. 오늘날의 유럽은 과거에 비해 보편적이고 평등한 문명을 이룩했다. 저자는 이것이 오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유럽 민중들의 투쟁과 노력의 결과라고 본다.

이 책은 유럽 민중사에 대한 입문서이기 때문에, 민중의 삶과 관련된 사건 하나 하나를 깊이있게 다루지는 못한다. 그러나 역자인 장석준씨가 지적했듯 이 책의 장점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에 있다. 이 책은 산업 혁명 이후 굶는 세상이 끝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 국가가 만들어져서 민중이 모두 만족했다는 서술로 이야기를 뭉개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의 진보와는 달리 항상 민중에게 장애물이 있었고 장애물을 꺾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지적한다. 오늘날에도 유럽 국가들에게 희망찬 나날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유럽 사람들은 체제 붕괴의 후유증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고, 서유럽에는 불법 입국 노동자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 선진국임에도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근로가 박탈되는 곳도 있다. 이런 수많은 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보통 사람들이 겪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했던 노력을 잊지 말자는 것이 저자의 고언이다.


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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