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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충남도지사 후보 추대 결의식에 참석한 모습.
▲ 이인제 충남지사 출마 요청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충남도지사 후보 추대 결의식에 참석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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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3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 위원장 임명식에 참석한 모습.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3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 위원장 임명식에 참석한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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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가죽재킷 삼매경에 빠졌다.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다. 홍 대표는 지난 3월 20일 '6.13 지선 총괄기획단 전체회의'에 이어 이인제 고문, 김태호 전 최고위원을 각각 충남도지사(2일)와 경남도지사 후보(5일)에 전략공천하는 추대 행사에서도 가죽재킷 차림을 고수했다. 기껏해야 넥타이나 목도리 색깔 정도를 바꿔가며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고작이던 남성 정치인들의 여의도 패션을 감안하면 최근 홍 대표의 가죽재킷은 단연 눈길을 끈다.

5일 기자 간담회에서 "옷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렇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의 가죽재킷 패션은 최근 '올드보이' 공천 논란 등 자신에 대한 당 안팎의 반발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중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측근인 김대식 여의도연구원 원장(부산 해운대을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 후보)·조진래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창원시장 후보) 등에 대한 잇단 공천으로 불거진 '사천' 논란에도 홍 대표는 "잡음 없는 공천은 없다"면서 밀어붙이고 있다.

홍 대표의 '가죽재킷 정치'에 대한 당내 반응도 흥미롭다. 홍 대표가 가죽재킷을 입고 나오는 현장이면 당 관계자들은 "조폭 영화에 나오는 보스 같다", "전투복 같지만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허세다"라며 한 마디씩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특히 지난 2일 여의도 당사에서 있었던 '충남도지사 후보 추대 결의식' 현장에서 귀에 걸린 말이 있다.

"오죽 조급하면 저러실까."

그렇다. 맹수는 굳이 발톱을 과시하지 않는다. 연일 가죽재킷을 입고 나온 홍 대표가 조급한 이유는 뭘까. 그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그의 두려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충남도지사 후보 추대 결의식에 참석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충남도지사 후보 추대 결의식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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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MB도 기소된다고 합니다. 10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경선 때 앙금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집권기간 내내 반목하다가 공동의 정적에게 똑같이 당한 것입니다. 적은 밖에 있는데 아군끼리 총질하고 싸우다가 똑같이 당한 것입니다. 더 이상 내부 분열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공천도 이제 마무리 국면입니다."

9일 홍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날 검찰에 의해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소회를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정말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당내 반홍(반홍준표계) 세력의 준동이 있다고들 하지만 YS, DJ 1인 정당시대에도 항상 비주류는 있었습니다." (3월 29일)

"편안한 지역에서 별다른 당을 위한 노력 없이 선수만 쌓아온 극소수의 중진들 몇몇이 모여 나를 음해하는 것에 분노합니다." (3월 21일)

"요즘 당내 일부 반대 세력들이 당의 명운이 걸린 지방선거에 힘을 합치기보다 철저히 방관하거나 언론에 당을 흠집 내는 기사를 흘리면서 지방선거에 패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암약하고 있어 한심하다기보다 기가 막히는 현상을 자주 보게 됩니다." (3월 20일)

"대여투쟁에는 보복이 두려워 나서지 못하고 안전한 당내 총질에만 아르바이트 하듯이 하는 것이 야당 정치라고 생각합니까? 이제 모든 것을 잊고 하나가 되어 새로운 자유 한국당으로 나아 가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당내 문제는 없습니다." (2월 9일)

"두세 명이 준동한다고 해서 흔들릴 당도 이젠 아닙니다."(2월 8일)

"정치 24년 동안 나는 상대방을 대적하는데 힘을 쏟아 왔지 내부 총질은 단 한번도 한일이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2월 4일)

"연탄가스처럼 틈만 보이면 새어 나와 당내 분란을 일으키는 행동은 앞으로 300만 당원들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당내 계파는 없습니다. 내부총질도 없어야 합니다. 상대는 문재인 좌파 정권입니다." (2월 3일)

약 두 달간 홍 대표가 쏟아낸 페이스북 글들이다. 그가 '당내 분열', '내부 분열', '당내 문제', '내부 총질' 같은 단어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분열이 있어선 안 된다"(9일), "더 이상 당내 계파는 없다"(2월 3일)는 말은 역설적으로 현재 한국당이 겪고 있는 내홍과 분열상을 그대로 드러내 공허한 선언처럼 들린다.

홍 대표는 특히 이주영(경남 창원시마산합포구)·정우택(충북 청주시상당구)·나경원(서울 동작구을)·유기준(부산 서구동구) 의원을 필두로 하는 당내 중진 의원들과 정면 충돌할 때마다 알레르기 같은 과민반응을 보여왔다. "당을 흔들면 강북의 험지로 차출하겠다"(3월 21일)고 엄포를 놓는가 하면 자신에게 반하는 당내 목소리를 "연탄가스"라고 3번(3월 21일, 2월 3일, 2017년 12월 24일) 비유했다. "충치 같은 사람들"(1월 20일), "날파리"(1월 19일), "기생충"(2017년 11월 26일) 같은 혐오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혐오의 근저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깔려있는 법이다.

그의 욕망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3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2기 혁신위원회 혁신안 발표에 참석해 인사말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3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2기 혁신위원회 혁신안 발표에 참석해 인사말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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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려움의 실체를 알면 그 사람이 진짜 원하는 욕망을 가늠해볼 수 있다. 자신의 욕망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에 굳이 알레르기를 일으켜가며 고통을 감내할 필요는 없으니까. 여의도는 욕망이 모이는 곳이다.

"야당이 일사불란 하게 대처하는 것을 죽은 정당이라고 폄하하는 것을 보고 여당 편을 들어도 참 묘하게 들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묵묵히 갈 길을 갑니다." (4월 5일)

"방송장악, 신문과 포털 장악, 여론 조작으로 나라가 좌파폭주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를 막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서 이 난관을 돌파합시다." (3월 20일)

"이제는 하나가 되어 단일대오로 가야 하는데...(중략) 내 길을 갑니다. 자유한국당의 비상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내 길을 갑니다." (1월 19일)

당 안팎에선 벌써부터 홍 대표의 시선이 2022년 대선에 가있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당대표가 된 지난 2017년 이미 1년 후의 지방선거, 3년 후의 총선거를 토대로 5년 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한다는 식의 '1·3·5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스스로를 "계파 없는 독고다이"(2월 9일)라고 부르는 홍 대표에겐 향후 대선을 위한 당권 장악이 필수고, "틈만 보이면 비집고 올라오는 연탄가스"(3월 21일)들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선 지방선거 이후 조기 전당대회를 치러 당대표를 연임한다는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대로 홍 대표가 지방선거 직후 당대표가 된다면 2020년 총선의 공천권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 뿐만 아니라 여권 일각에서도 홍 대표의 '가죽재킷 정치'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홍 대표의 막말에 반사이익을 얻고 있긴 하지만 압도적인 제1야당이 쟁점 사안마다 뚜렷한 당론이 모아지지 않아 협상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막말만 있고 정치력은 없다는 지적이다.

한 여당 의원은 "미투 운동 등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홍 대표가 자멸해줘서 고마운 측면이 있었다"면서도 "개헌협상이나 상임위별 소위원회에서 상대당이 통일된 안을 내놓지 못해 협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국정운영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이 의원은 "홍 대표가 지금은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물러난다고 하지만 결국 대선을 노리고 있는 입장에서 당권을 포기할 수 있겠나"라며 '1·3·5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에 한 표 던졌다.

홍 대표는 9일에도 가죽재킷을 입고 국회 일정을 소화했다. 꽃샘추위가 가시고 봄기운을 되찾은 이날 그의 가죽재킷은 어딘가 다소 답답해 보였다.


태그:#홍준표, #욕망,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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