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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택배가 쌓여 있다. 이 아파트 단지는 택배 차량 지상 진입을 통제하고 정문 근처에 주차 후 카트로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택배 업체들이 아파트 정문 인근 도로에 택배를 쌓아두고 가는 방식으로 맞서면서 주민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1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택배가 쌓여 있다. 이 아파트 단지는 택배 차량 지상 진입을 통제하고 정문 근처에 주차 후 카트로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택배 업체들이 아파트 정문 인근 도로에 택배를 쌓아두고 가는 방식으로 맞서면서 주민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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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 아파트단지 배송을 맡고 있는 택배노동자 A씨는 오늘도 아파트 입구 주차장에 물건을 쌓아놓는다. 직접 찾으러 나오는 주민들 불편도 크겠지만, 물건을 이렇게 놔두는 A씨 마음도 편치는 않다. 만약 물건이 분실되면 오롯이 A씨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 아파트 측은 택배차량 지상 진입을 통제하고 정문 근처에 주차 후 카트로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카트로 배송하게 되면 몇 배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시간을 지체하면 다른 고객 물품 배송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건당 배송수수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다.

지하주차장으로 택배차량이 진입하기 위해서는 차량을 개조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개조 비용도 부담이지만, 그 기간동안 이용해야 할 대체 차량 비용은 또 얼마나 될지 택배기사 입장에서 감당하기 힘들다.

수많은 언론 취재 열풍도 달갑지 않다. 이슈가 되니 수많은 기사가 나왔지만 대다수가 주민들과 택배기사의 갈등을 부각시키며 오히려 논란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시간에 쫓겨 다음 배송지로 서두르는 A씨는 마음이 복잡하다.

며칠째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택배차량 출입 불가'의 발단은 지난 2월 다산 신도시 소재 한 아파트 단지에서 후진 중이던 택배 차량과 아이가 충돌할 뻔한 사고가 일어난 이후 아파트 측에서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통제하면서 시작됐다.

갑질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안내문
 갑질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안내문
ⓒ 김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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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택배 논란이 '갑질 논란'으로 번진 것은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단지 내에 게시한 택배 배송관련 안내문 때문이다. 택배차량 출입불가 이유로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내건 것. 물건을 찾으러 오라는 택배 노동자의 요구에는 "그걸 제가 왜 찾으러 가야하죠?? 그건 기사님 업무 아닌가요?"라는 식으로 대응하라고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아파트의 갑질로 인한 택배 노동자들의 피해가 부각돼 택배기사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택배 분실 우려 속에서도 아파트 주차장에 물건을 내려놓는 상황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택배 차량이 아파트 지상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되면 표면상 논란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입주민들이 출입불가를 결정한 "안전 우려"는 묵살되고 만다.

아파트 주민들도 속상하긴 마찬가지다. '택배차량 출입불가' 결정 이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택배회사와 협의를 시도했지만 일부 대형 업체는 협의는커녕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파트 주민들은 "업체 측에서는 단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은 채 고통을 택배기사와 주민에게 전가하며 기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택배시스템 책임지는 택배회사가 나서야

그렇다면 이 문제 해결의 주체는 누구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먼저 택배시스템을 책임지고 있는 택배회사가 나서야 한다. 현재 택배노동자는 택배회사가 구축한 시스템 내에서 배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대다수가 시간에 쫓겨 분초를 다투며 뛰어다니고 있다. 하루 13시간에 달하는 근무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공짜노동 분류작업'에 투여하느라 안정적인 배송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번 사고는 현재 택배시스템 상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인재이다.

그런데, 택배회사 측은 "택배기사들은 일대일 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높이가 낮은 탑차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을 표하며, "아파트 한쪽에 배송 물품을 쌓아두고 주민들에게 찾아가라고 연락"하거나 해당 아파트에 배송 거부하는 방침을 밝혔다.

택배회사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배송 물품을 쌓아두라는 택배회사의 지시를 따르다가 분실될 경우 그 부담은 오롯이 택배노동자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 시킬 때는 직원처럼 부려먹으며 책임질 일 있으면 개인사업자라며 나 몰라라 하는 책임회피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택배업을 관할하고 있는 국토교통부에게도 적극적 역할을 요구한다. 우선 향후 건설될 아파트 주차장의 높이 규정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현재 완공된 아파트의 경우에는 아파트 입구에 회사 문서보관실과 같은 무인택배 보관실 설치를 제도화하고 국토교통부에서는 설치비용을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

당장은 컨테이너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고,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입주민카드를 택배기사에 제공해 출입하게 하고 CCTV 설치강화 등으로 보안 대책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을 마련하는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단지내 택배차량 출입 허용을 아파트단지에 권고해주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해당 아파트 단지들도 대안 모색에 함께 나서주기를 바란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오늘도 고객의 물품을 배송하느라 분초를 다투며 뛰어다니는 택배노동자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택배노동자의 처지를 배려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줄 것을 부탁드린다. 아울러 언론도 주민과 택배기사간 갈등만 부각시키지 말 것을 부탁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정책국장입니다.



태그:#택배노동자,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택배연대노조, #택배노동자권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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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연대노조 정책국장입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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