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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14 아이의 반문

지난 14일 토요일이었다. 아내와 8살 산들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아침부터 시작됐다. 성당을 가야 한다는 엄마와 내가 왜 성당을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의 기 싸움.

이 갈등이 시작된 것은 지난 3월부터였다. 양가 할머니들은 까꿍이가 3학년이 되자 아이들을 성당에 보내야 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고, 아내는 이를 계기로 한동안 다니지 않았던 성당을 다시 열심히 다녀야겠다며 주말마다 아이들을 성당에 보냈다.

첫영성체를 받기 위해 성당을 다니기 시작한 10살 까꿍이와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성당에 가는 6살 복댕이. 그러나 8살 산들이는 누나와 동생 같지 않았다. 녀석은 엄마의 잔소리에 마지못해 발걸음은 뗐지만 그때마다 자기는 성당에 가기 싫다며 꼭 한마디씩 했다.

계속되는 아이의 투정. 아내는 이 모든 게 아이들 앞에서 신이 있느니 없느니 이야기했던 내 탓이라며 눈을 흘겼지만, 녀석이 왜 성당에 가기 싫은지 이유나 들어보자며 말을 꺼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 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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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성당에 가기 싫어? 성당 가는 대신 집에서 TV 보고 싶어서 그러지?"
"아니. 난 신이 없다고 생각해."
"아빠가 신이 없다고 해서? 아니야. 아빠도 어렸을 때는 열심히 성당 다녔었대. 성당에서 많이 배운 다음에 20살이 넘어서 결정한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 전에는 성당을 다니면서 배워봐야지 않겠어?"
"아니, 난 신이 없는 것 같아. 진짜로 신이 있다면 왜 세월호 같은 사건이 일어나? 거기서 죽은 형과 누나들 다 죄가 없다면서."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도 그건 잘 모르니까 네가 성당 가서 신부님한테 묻든가 하자며 말끝을 흐렸다. 신이 없어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는 아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4년 전 아이의 나이는 4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세월호는 그만큼의 트라우마였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일부였다.

문뜩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성당을 꼭 가야 한다는 어머니께 비슷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당시 나의 세월호는 십자군 전쟁이었다. 어차피 기독교를 모르던 조상들은 연옥에 간다고 하니, 하느님의 이름으로 무고한 이교도들을 학살했던 역사를 들이대며 어머니를 곤란하게 했었다.

그런데 둘째도 비슷한 질문을 하다니. 부전자전인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이웃들은 6학년이나 하는 질문을 1학년이 했다며 기특해했지만 어쩌면 그건 세월호 사건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세월호는 그만큼 큰 충격이었다는 뜻이리라.

#2. 4.15 세월호 침몰의 원인

15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 <그날, 바다>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둘째 산들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빠, 영화 뭐 보러 가?"
"세월호 관련된 영화. 보러 갈래?"
"글쎄."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이 가면 볼 수 있어. 이 영화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관련된 영화라는데 보고 싶으면 같이 가도 되고.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아니. 왜 침몰했는지 아는데 뭐."
"응? 왜 침몰했는지 알아?"
"그럼. 어른들이 돈을 더 벌려고 다 썩은 배를 사가지고 와서 다시 바다에 띄운 거잖아. 그래서 죄 없는 형, 누나들이 죽은 거고."
"넌 어떻게 알았어?"
"예전에 아빠가 그랬잖아. 뉴스에서도 나왔고."

세월호는 아직 진행형이다
▲ 영화 <그날, 바다> 세월호는 아직 진행형이다
ⓒ 프로젝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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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아이의 계속되는 질문에 4년 동안 많은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국가가 발표한 원인서부터 시작해서 음모론에 이르기까지. 세월호가 짐을 많이 실었고, 평행수가 부족했고, 급변침을 했고, 앵커를 내렸을 수도 있고, 잠수함과 부딪혔을 수도 있고 등등.

그런데 녀석은 아빠에게서 들은 수많은 원인들 중 단 하나의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어른들이 욕심을 부려서 배가 가라앉았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것. 섬뜩했다. 8살 꼬마의 정확한 지적은 하나의 죽비와도 같았다.

그래, 우리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아직도 모른다. 아니 알지만, 알지 못한 것과 같다.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세월호 침몰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구조는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죽어갔음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사회. 모두의 안전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중시되는 사회. 과연 나는 기성세대로서 그런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3. 4.16 세월호를 기억하라

아이들에게 세월호란?
▲ 그해 겨울 아이들에게 세월호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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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그럼. 세월호가 가라앉은 날이잖아. 뉴스에도 나왔어."
"TV에서 세월호 봤던 거 기억나?"
"응. 엄마, 아빠가 뉴스 보면서 울었잖아. 그리고 우리 세월호 때문에 사람들과 막 걷기도 했고. 촛불집회 나가서 큰 고래도 봤네."

고마웠다.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녀석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한 우리 사회에 희망은 있을 것이다.


태그:#세월호,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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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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