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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른이 되면 당연히 도시에서 살 거라 생각하던 시골소년이 서울의 삶을 두고 다시 시골로 갔습니다. 소유의 땅도 집도 없고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강원도 홍천에서 짝꿍과 함께 자연농과 시골살이를 배우고 있습니다. 현실과 부딪치고 방황하는 젊은 부부의 작고 솔직한 시골 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서울에서 어렵게 구한 신혼집을 공들여 꾸몄는데 오래 살지 못해서 아쉬웠다.
▲ 아쉬움으로 떠나보낸 신혼집 서울에서 어렵게 구한 신혼집을 공들여 꾸몄는데 오래 살지 못해서 아쉬웠다.
ⓒ 이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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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으로 가자고 마음먹었을 때는 시골이니만큼 우리가 살 빈 집 하나 정도는 금방 구할 줄 알았다. 웬걸, 마을 주민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수소문을 했는데도 마땅한 집이 없었다. 서울에서도 집구하기가 참 어려웠지만 그래도 부동산에 가서 가격을 얘기하면 뭔가 집을 보여주긴 했다. 여기는 집 자체가 별로 없었다. 부동산에도 부탁을 해두었지만 아무래도 시골 부동산에서 월세나 전세를 구하는 손님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빌려서 농사를 짓기로 한 '모래무지'네 밭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집을 찾아봤다. 마침 밭 바로 옆에 부엌 있고 방 한 칸이 딸린 조그마한 조립식 건물이 하나 있었다. 자연농법을 배우는 지구학교에 다니면서 슬쩍 보니 매번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비어있는 집 같아서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개구리'님께 부탁을 드려 주인을 찾아 보았다.

서울의 역세권처럼 여기선 농사 짓는 밭에서 가까운 게 최고다. 우리 생각엔 어차피 빈 집이니 우리가 월세나 '연세'(시골에서 1년 단위로 임대료를 드리는 것으로 월세 1년 치를 한꺼번에 드린다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보통 월세 총액보다 저렴한 편이다)라도 좀 드린다면 서로 좋은 일이 아닐까 싶어 기대를 꽤 했다.

하지만 '소금쟁이'님은 여의치 않다는 소식을 전해오셨다. 거기 살던 어르신이 몸이 안 좋아 요양원에 계시는데 나아지면 다시 오실 수도 있어 집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뒤로 집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던 1월 즈음 개구리님이 몇 해째 비어있는 집을 하나 소개시켜 주셨다. 집 옆에 조그만 텃밭도 딸려있고 뽕나무도 자라고 있는 곳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집이 낡고 망가져 있긴 했지만 우리가 고쳐가면서 살면 충분히 살만할 것 같은 슬레이트 지붕의 시골집이었다.

발암물질인 슬레이트 지붕의 교체비용을 지원해주는 지자체 사업까지 검색해보며 집주인과 통화를 해나갔다. 그 집은 우리와 통화하신 분의 부모님인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사시던 집인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형제 중 맏이가 모시고 있다고 했다.

통화한 분은 사남매 중 막내아들로 그 집을 관리하고 있었다. 집이 오래 비어있다 보니 누군가 살면서 관리해주면 좋을 것 같다며 우호적으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결정은 가족회의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셨다.

서울보다 어려운 시골 집 구하기

우리가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슬레이트지붕의 시골집
▲ 슬레이트지붕집 우리가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슬레이트지붕의 시골집
ⓒ 이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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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슬레이트 지붕 교체 사업은 우리의 설레발이 되었다. 슬레이트 지붕 교체 사업을 받으려면 집주인의 동의서를 모두 제출해야 했는데, 그런 이야기까지 급하게 꺼낸 게 실수였을까? 가족회의에서는 아직 할머니께서 살아계시기도 하고, 종종 도시에 있는 형제들이 함께 성묘를 가면 쉬어가는 곳으로 쓰기도 해서 세입자를 들이지 않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

사실 귀찮은 일 감수하며 세입자를 받는다고 해서 특별히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분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장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속이 탔다. 그때가 이미 지난해 2월이었다. 3월이나 늦어도 4월에는 이사를 가서 바로 농사를 시작하고 싶었던 우리는 아쉬워할 새도 없이 다른 계획을 고민해야 했다.

우리가 이사 갈 집을 구하는 동안 모래무지네 가족은 집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모래무지도 처음에는 집을 새로 짓는 것보다는 근처 농가주택을 구입하고자 했으나 마땅한 집이 없어 결국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뒤에는 집을 직접 지을지, 전문가에게 맡겨서 지을지, 흙으로 지을지 나무로 지을지 그 밖에 좋은 재료는 뭐가 있을지 등을 치열하고 꼼꼼하게 공부했다. 공부를 함께하기 위해 그 겨울, 지구학교 사람들 가운데 언젠가 시골에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고음실이라는 마을 이름을 따 '곰실곰집'이라고 이름까지 정한 모래무지네 건축계획 세우기 겸 집짓기 공부모임이었다.

모래무지의 고마운 제안, 그러나

지금 사는 원룸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 군부대 바로 앞에 편의점들이 있다.
▲ 집밖풍경 지금 사는 원룸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 군부대 바로 앞에 편의점들이 있다.
ⓒ 김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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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함께하다 보니 우리가 집을 구하고 있는 상황도 다들 알고 있었는데, 3월이 되도록 집을 못 구하자 모래무지님께서 또 고마운 제안을 해주셨다. 집을 지으면서 우리가 살 집도 같이 짓겠다는 제안이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어차피 지구학교를 들으러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묵을 곳도 필요하니 자연농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 같은 걸 지어보면 어떨까했는데 그걸 집 지을 때 아예 같이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같이 지어서 우선 우리에게 전세로 빌려주고 나중에 우리가 다른 집을 구하면 다른 사람에게 또 빌려주거나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할 수 있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여기저기 더 알아봤지만 다른 집을 찾지 못해 모래무지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집은 당시 계획으로도 늦여름이나 가을 즈음에 완성될 예정이었기에 그동안 잠시 원룸에 살게 됐다. 원룸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밭에서 2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 군부대 앞 편의점 2층에 서울처럼 월세로 살 수 있는 원룸이 있었다.

밭에서도 거리가 좀 있고 마당도 없는 열 평 원룸이 아쉬웠지만 어디까지나 몇 달만 살 곳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원룸 치곤 넓고 월세도 서울에 비하면 아주 저렴했다. 언제든 바로 들어가 살 수 있었고, 집주인분도 모래무지님 부부와 아는 사이여서 몇 달이든 원하는 때까지만 살고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우선은 얼른 와서 때에 맞게 농사를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3월말에 잘 이사를 하고 밭에는 자전거로 왔다갔다 하며 농사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길어야 네다섯 달 살 줄 알았던 그 원룸에서 1년 넘게 살고 있다. 집짓기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거다. 곁에서 지켜봤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한 집짓기인 줄 알고 있는데 어찌 이렇게까지 틀어질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을 들어도 실감이 안 났는데, 지금은 10년이 아니라 20년 늙는데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살 집은 고사하고,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그 가족이 살 집도 결국 아직까지 완성을 못했다. 얼른 그 집이 잘 마무리되어서 모래무지네 가족이 문전옥답을 둔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디서 살지 여전히 고민이다. 저렴한 월세긴 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돈이 들기도 하고, 그보다 밭과의 거리가 멀다는 점, 마당도 없고 수확한 농산물이나 농기구 등 물건을 보관할 만한 공간이 적다는 점, 원룸이라 밥 먹고 잠 자는 공간과 다른 작업을 하는 공간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 등이 아쉽다.

우선 올해까지는 특별히 대안이 생기지 않는다면 여기 살면서 시작한 농사를 마저 지으려 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올 겨울까지는 끊임없이 짝꿍과 이야기를 나누어볼 생각이다.

전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늘 이런 고민을 함께하고 있다. 실은 가진 것도, 별 계획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지금으로서는 모든 게 불투명하지만 분명 또 어딘가 인연이 닿을 것을 믿는다.


태그:#귀촌, #귀농,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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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지금은 홍천에서 자연농을 배우고 있는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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