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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중순으로 접어들면 장마를 기다립니다. 장마 때마다 우리 고양생태공원을 찾아오는 귀한 손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맹꽁입니다. 맹맹꽁꽁, 맹맹꽁꽁 쉬지 않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맹꽁이들의 산란장소가 바로 우리 공원에 있습니다. 그곳은 물이 흐르는 좁은 수로인데, 맹꽁이들이 산란 장소로 이용하는 것을 확인한 다음부터 '맹꽁이 도랑'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가뭄을 해갈시키는 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며칠째 비가 쏟아지기를 기다렸는데, 그 바람이 하늘에 가 닿았는지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빗줄기가 제법 굵습니다. 사무실 창가에 서서 귀를 기울입니다. 맹꽁이들의 합창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리면서. 처음에는 소리가 작게 들리다가 점점 커집니다. 모여드는 맹꽁이 수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때쯤 나가면 됩니다. 우산을 찾아들고 생태교육센터를 나섭니다. 우산을 두드리는 요란한 빗소리가 맹꽁이 울음소리를 삼켰는지 맹꽁이 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맹꽁이 도랑이 가까워질수록 맹꽁이 울음소리가 커집니다. 저러다가 성대가 터지지 싶을 정도로 우렁찬 떼창입니다. 저렇게 소리 높여 울어대는 친구들은 죄다 수컷입니다. 짝짓기를 하고 싶어서 암컷을 부르는 거죠.

맹꽁이
 맹꽁이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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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암수가 만나 짝짓기를 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나, 암컷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암컷보다 수컷이 개체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더 씩씩하게 큰 소리로 울어야만 암컷에게 선택될 수 있습니다. 맹꽁이 소리가 요란한 것은 이쪽에서 맹맹하고 울면 저쪽에선 꽁꽁하며 서로 경쟁하듯 떼창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목청이 터지게 부르고 있으니 어서어서 번식하러 오라는 의미입니다. 맹꽁이 도랑의 이 절박한 합창은 진정한 여름날의 상징인 것 같습니다,

맹꽁이 도랑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우산을 썼지만 비는 사정없이 우산 안으로 들이칩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하염없이 맹꽁이를 기다립니다. 지금이 아니면 맹꽁이 산란 장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수로의 물 위로 맹꽁이 알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이 지켜보거나 말거나 맹꽁이들은 비가 내리는 틈을 타고 자손 번식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다 합니다. 맹꽁이의 알은 마치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투명한 계란 프라이 모양으로 크기도 제법 큰 편입니다.

맹꽁이 알
 맹꽁이 알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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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원에서 맹꽁이 산란과 성장 과정을 처음 목격한 것은 2013년 여름입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인 맹꽁이는 평소에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땅 속에서 서식하면서 밤에만 나와 포식활동을 하는 습성 때문입니다. 이런 맹꽁이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시기가 바로 산란기입니다. 맹꽁이는 주로 밤에 산란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가 많이 오는 날 낮에도 합니다. 우리 공원에서는 비오는 날에 산란을 합니다.

우리 공원에서 멸종위기종인 맹꽁이가 산란을 하러 찾아오는 것은 아주 좋은 징조입니다. 우리 공원이 생물 서식지로 안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맹꽁이는 예전에는 아주 흔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결국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맹꽁이가 발견되면 공사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럴 정도로 맹꽁이는 귀하신 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맹꽁이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맹꽁이가 멸종위기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맹꽁이는 오색딱따구리, 은방울꽃과 함께 우리 공원의 깃대종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 공원에서만은 맹꽁이를 귀하신 몸으로 대접하고 싶어서 선정했습니다.

맹꽁이 알
 맹꽁이 알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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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맹꽁이가 우리 공원에서 산란하는 것을 확인한 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모니터링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맹꽁이 산란기가 오기 전에 '맹꽁이 관찰 모니터링팀'을 구성하고 산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매년 맹꽁이 산란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맹꽁이 관찰은 맹꽁이 존재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맹꽁이 도랑에 낳은 맹꽁이 알의 부화를 기다리고, 부화한 뒤에는 올챙이부터 맹꽁이 성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산란부터 성체가 되기까지 한 달 남짓 걸립니다.

맹꽁이 관찰은 맹꽁이의 일생을 관찰, 기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맹꽁이 도랑의 깊이를 재고, 수온도 측정합니다. 또 도랑에 같이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종들도 확인합니다. 맹꽁이는 한 번에 15개~20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15회~20회 정도 산란을 반복합니다. 어떻게 저 작은 뱃속에 그렇게 많은 알이 들어 있을까, 놀랄 정도로 알을 많이 낳습니다.

맹꽁이 도랑
 맹꽁이 도랑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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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도랑
 맹꽁이 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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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이 암컷의 등 위에 포접한 상태에서 암컷은 산란을 시작합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기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습니다. 맹꽁이에게는 한없이 숭고하면서 은밀한 순간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미안해. 해코지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암컷이 산란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확인하니 안타깝게도 알만 찍혔습니다.

산란을 마친 어미 맹꽁이는 서둘러서 맹꽁이 도랑을 떠납니다.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알만 남긴 채 제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리지어 나타났던 맹꽁이들은 무리지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맹꽁이 도랑에는 맹꽁이 알들만 남았습니다.

아무도 품어주는 이가 없으니 제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맹꽁이 알의 숙명입니다. 알 주변을 둘러싼 끈적거리는 액체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알은 생명을 이어갑니다. 맹꽁이 알은 28시간에서 30시간 정도면 부화됩니다.

맹꽁이 올챙이
 맹꽁이 올챙이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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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도랑에서 맹꽁이 성장과정을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맹꽁이 도랑에서 맹꽁이 성장과정을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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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가 산란한 뒤에 우리 모니터링팀은 날마다 맹꽁이 도랑에 갑니다. 성장과정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지만. 그 자리를 24시간을 꼬박 지킬 수 없어 무인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그러면 맹꽁이 성장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큼 감동스럽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낮 시간 동안은 몇 시간이고 도랑을 지키고 앉아 알의 변화를 확인합니다.

알에서 올챙이가 탄생하는 순간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맹꽁이가 산란한 알이 전부 올챙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맹꽁이의 산란을 목 빼고 기다리는 생태시민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적이자 포식자들이죠. 맹꽁이가 한꺼번에 수백 개의 알을 낳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운 좋게 살아남아 부화하는 알은 얼마나 될까요? 절반 정도 부화하면 다행이지만, 자연은 그 정도의 확률도 남겨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맹꽁이가 알에서 올챙이로 부화한 어느 날 밤, 무인카메라에는 포식자가 찍혔습니다. 너구리입니다. 우리 공원에서 너구리 서식지와 맹꽁이 도랑은 제법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너구리는 맹꽁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니 한밤중에 맹꽁이 도랑에 나타나 긴 혀를 내밀어 맹꽁이 알을 후루룩 마시듯이 먹어치웠을 것입니다. 맹꽁이 알은 일 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간식이니, 오매불망 기다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새들도 맹꽁이 알의 천적입니다. 맹꽁이가 알을 낳았대. 부화하기 전에 얼른 먹어치우자. 이러는 것처럼 참으로 부지런히 날아옵니다. 또 뱀이나 수생곤충의 먹이가 되기도 합니다. 맹꽁이 알이 빨리 부화하는 것은 자연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저런 포식자들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알들이 부화하면 귀여운 올챙이가 됩니다. 머리에 꼬리만 붙은 올챙이가 꼬물거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귀엽습니다. 올챙이가 맹꽁이 도랑을 가득 채우면 비로소 안심합니다. 알 상태일 때는 포식자를 피해 달아날 수 없지만, 꼬리가 달린 올챙이는 헤엄쳐 도망칠 수 있으니 그만큼 생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맹꽁이 올챙이
 맹꽁이 올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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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가 되는 과정에 있는 맹꽁이 올챙이
 성체가 되는 과정에 있는 맹꽁이 올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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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올챙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맹꽁이
 아직 올챙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맹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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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1센티미터에 불과했던 올챙이들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3센티미터가 되면 올챙이는 성장을 멈춥니다. 맹꽁이가 되기 위한 준비단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신비는 이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꼬리만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앞다리가 쑤욱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앞다리가 나오면 꼬리가 점점 짧아집니다. 이때의 모습은 마치 연미복을 입은 신사와 같습니다. 뒷다리까지 나오면 꼬리는 누군가 뚝 잘라간 것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드디어 맹꽁이가 된 것이죠.

산란한지 20일 남짓 되면 맹꽁이 도랑에서 올챙이는 모조리 사라지고, 맹꽁이들만 우글거리게 됩니다. 이 때 맹꽁이 크기는 1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꼬리가 사라지면서 몸길이가 3센티미터에서 1센티미터로 확 줄어든 것이죠.

성체가 된 맹꽁이
 성체가 된 맹꽁이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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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성체
 맹꽁이 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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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되면 우리는 맹꽁이와 이별할 준비를 합니다. 한 순간에 거짓말처럼 맹꽁이들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미리 맹꽁이 도랑에 가서 마지막 사진을 찍어둡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이곳을 떠나더라도 잘 가서 잘 살아라. 맹꽁이들을 관찰하면서 정이 들어서인지 이별은 아쉽기만 합니다.

맹꽁이 성체
 맹꽁이 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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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을 떠나는 맹꽁이들은 본능적으로 어미가 사는 곳을 향해 무리지어 떠나갑니다. 그렇게 떠난 맹꽁이는 성체가 되어 이듬해 6월에 다시 맹꽁이 도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자손 번식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만남에는 이별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이별할 때는 다시 만날 기대를 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태그:#고양생태공원, #맹꽁이, #올챙이, #깃대종,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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