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유영.

배우 이유영이 스릴러 영화 <나를 기억해>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 오아시스이엔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 범죄의 피해자는 마냥 숨어야 하고, 공포에 떨어야 할까? 영화 <나를 기억해> 속 서린은 좀 달랐다. 정체불명의 남성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을 직시하려 한다.

이 캐릭터를 이유영이 온몸으로 입었다. 가냘프고 여려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는 데뷔작인 영화 <봄> 이후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한 역할을 줄곧 맡아왔다.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강단'을 기억해야 할 때다.

이유영이 증명한 것들 

"원래 공포 영화와 스릴러를 못 본다. 악몽을 꾸기 때문에"라는 말에서 짐짓 그의 영화 취향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기억해>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욕심이 났다"고 운을 뗐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이유가 충분했다"며 그가 설명을 이었다.

"제가 영화를 볼 땐 어둡거나 무서운 걸 안 보려고 노력하지만 연기할 때는 다르니까. <나를 기억해>가 담은 현실 속 문제가 이 영화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했다. 성범죄의 심각성은 저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무서운 일이 진짜로 벌어지는지는 몰랐다. 결말 부분이 충격이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들더라. 

대본을 읽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읽고 난 후의 제 느낌을 믿는 편이다. 촬영 이후 편집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린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폭발하는 지점이 있었다. 영화를 보시는 분들께서는 그런 부분을 상상하면서 봐주셔도 좋을 것 같다."

 영화 <나를 기억해>의 한 장면.

영화 <나를 기억해>의 한 장면. ⓒ 오아시스이엔티


앞서 언급한 주체성에 대해 물었다. 영화 <간신>(2015) 속 설중매도 그랬고,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속 민정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아랑곳 하지 않는 인물. 드라마 <터널> 속 신재이는 범죄에 맞서며 결국 잃었던 희망을 되찾는다. 이렇게 성격과 역할은 달라도 이유영은 이야기 속에서 어떤 권력이나 남성성에 묻히지 않고 자기 색을 내는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의식하진 않고 있었지만 그런 캐릭터에 확실히 끌리는 것 같다"고 그가 말을 이었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솔직히 평소 전 좀 끌려 다니는 스타일인데 연기로 풀고 싶은가 보다. <봄> 속 민경(극중 누드모델이자 아이 엄마로 자신에게 닥치는 시련을 하나씩 이겨낸다-기자 주)은 자신 보다는 아이를 살리려 하는 엄마였고, <터널>에선 후반부로 갈수록 성장하는 캐릭터다. 범인을 마주하면서도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번 닥치는 고비

알려진 대로 이유영이 애초부터 연기자를 꿈꿨던 건 아니다. 데뷔 직전(2012년)까지 미용사로 일했고, 대학에 갔으면 하는 단순한 바람에 실기를 준비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그렇게 처음엔 단순하게 접근했던 연기가 시간을 거듭하며 일생일대의 목표가 됐다.

"어렸을 땐 사람들에게 '키가 크니 모델하겠네?' 이런 말을 듣긴 했다. 동대문 이런 데 나가면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엄두를 내진 못했다. 기획사 사기도 많고 그랬으니까.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매 순간 무언가를 배우고, 제가 맡았던 인물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더라. 어떤 일을 해도 정체될 때가 있잖나. 근데 연기는 계속 패턴이 다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배워가는 거니까 그럴 틈이 없었다. 여러 캐릭터를 하며 좋은 영향을 받든 나쁜 영향을 받든 제게는 다 배움이었다.

너무 과하게 몰입하나 싶을 정도로 그 캐릭터의 나쁜 행동까지도 제가 이해한 뒤 연기하더라. 그 덕인지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많아졌다(웃음). 그만큼 안 좋은 뉴스를 보면 마음이 힘들기도 하고. 매 작품 마다 고비가 있는데 이젠 좀 즐기면서 해보려고 한다. <터널> 때 알게 된 스태프 분이 제가 최근에 찍은 단막극의 스태프로도 참여하셨는데 제가 현장에서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더라. 아, 내가 그만큼 고민만 하면서 연기를 했나? 생각했다."  

 배우 이유영.

ⓒ 오아시스이엔티


 배우 이유영.

ⓒ 오아시스이엔티


다소 늦은 데뷔지만 이유영의 연기력에 의문을 표하는 평가는 거의 없다. 그 때문에 <봄> 직후 그에겐 '괴물 신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이유영은 "그 말에 부담감과 책임감도 든다"며 "그래도 예전에 영화 한 편이라도 출연하려고 오디션 보러 다닐 때를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마냥 예쁜 역할보단 빈틈도 좀 많고 실수투성인데 사랑스럽고 매력 있는 역할도 좀 해보고 싶다. 장르 가리지 않고 전 제가 맡은 캐릭터라면 시나리오엔 안 나온 그 인물의 예전 모습도 상상해보고, 매 장면마다 제가 해낼 목표를 써놓는다. 그 인물에게 편지를 써보기도 하고, 그 인물이 처한 상황과 고민에 공감하려 한다. 그런데 또 철저하게 준비해도 배우의 시각은 그만큼 캐릭터에 몰입해 있으니 좁아지기 쉽더라. <나를 기억해>를 통해 한 걸음 물러나서 전체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최근 촬영을 마친 MBC 단막극 <미치겠다, 너땜에!>에서 이유영은 청량감이 가득한 캐릭터를 표현했다. 또 한편으론 일제강점기 관부 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 <허스토리> 속에서 주체적 여성으로 분하기도 했다. 풍요로울 유에 꽃뿌리 영. 꽃밭에서 꽃을 주웠다는 태몽 덕에 지어진 그의 이름이다. 이름만큼 앞으로, 특히 올해 그는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배우 이유영.

ⓒ 오아시스이엔티



이유영 나를 기억해 김희원 여성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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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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