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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전쟁터다. 여기저기 늘어진 옷들, 거실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짐들, 정리될 때까지 참으면 된다지만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사를 하지 않고 방 하나를 비워 두 아이의 방을 나눠줘야 하는 상황, 그때가 온 것이다.

상황은 이러하다. 초4 딸이 문을 쾅 닫고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초2 아들이 문고리를 붙잡고 들어가려고 하면 "저리 가~ 변태" "옷 갈아입는데 왜 들어오냐고~". 남녀 한방, 이층침대의 끝은 여기까지인가?

올해 들어 특히 심해진 아이들의 아침 풍경을 보다 보다 방을 옮기기로 한다. 방 하나를 만들려면 그 방에 있는 짐을 모두 빼야 한다. 이사를 하지 않고 그 일을 한다는 건 참... 여기에는 그만큼의 노동이 따라온다.

한 방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짐은 안방으로 베란다로 거실로 자리 잡는다. 미처 자리잡지 못한 물건들은 거실 한쪽 구석에 차곡차곡 쌓인다. 며칠째 계속되는 노동과 그 노동의 대가로 따라오는 '방'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오히려 나의 영역인 안방이 무차별적인 짐의 폭격을 맞아 좁아진 탓에 나의 정신 상태는 피폐해져만 간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있는 딸을 위해서 '방'을 나눠주는 이 프로젝트를 기획, 실행하고 있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절실히 나는 내 방을 원하고 있다. 정작 그 어디에도 나의 방은 없다. 그 때문일까? 짐을 옮기는 과정에서의 힘듦보다 더 많은 짜증들이 자꾸 고개를 쳐들고 올라온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불편한 것인가?

사춘기 딸의 방, 오춘기 엄마의 방

뒤죽박죽 정신상태 저 덩쿨속에 들어가면 왠지 나만의 공간이 있을것만 같은 착각을 느낀다.
▲ 뒤죽박죽 정신상태 저 덩쿨속에 들어가면 왠지 나만의 공간이 있을것만 같은 착각을 느낀다.
ⓒ 조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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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가정, 방 3개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가정에서 엄마들의 공간은 전무하다. 안방과 아이들방, 아이들이 이성일 경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둘이 방 하나씩을 차지한다. 주방에 작은 서재를 만들어 엄마의 공간을 두기는 하지만, 나의 경우엔 사방이 막힌, 가족과는 약간 분리된 나만의 완벽한 공간을 갖고 싶다.

안방 문을 하염없이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나의 공간에 무지막지하게 쳐들어오는 '저 자'들의 무례함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 사실은 나는 '숨구멍' '쉴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딸과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 엄마만을 위한 방, 과연 어느 것이 더 절실할까? 이쯤에서 <19호실로 가다>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드라마에서 지나가듯 소개되었던 그 책이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다가온다.

책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결혼 후 자기만의 공간이 없어진 엄마를 위해 남편이 다락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 공간마저 아이들과의 공동 공간이 되어버린 엄마가 어느 여인숙의 19호실로 가는 이야기.

그 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거짓으로 불륜을 고하면서까지 그 공간을 지켜내려 한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이해시키기 보다는 나쁜 년이 되는 편을 선택한 여인. 그 여인의 19호실이 부러웠고, 좀처럼 들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 무엇도 하지 않을 공간, 안전한 공간, 무엇 하나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나는 절실히 필요하다. 나처럼 숨구멍이 필요한 엄마들이 또 있지 않을까? 그 공간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엄마친구들이 스스로 만든 포스터  숨구멍이 필요한 엄마친구들이 모였다. 그들이 원하는 클럽은 어떤 모양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의 포스터를 만들어 보았다.
▲ 엄마친구들이 스스로 만든 포스터 숨구멍이 필요한 엄마친구들이 모였다. 그들이 원하는 클럽은 어떤 모양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프로젝트의 포스터를 만들어 보았다.
ⓒ 조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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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숨구멍이 필요할 때 혹은 숨어있고 싶은 방이 필요할 때 함께 모여서 무언가를 하면 그 삶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만 중요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만 좋은 것이라는 시선은 부담감을 준다. 마음이 좀 지치고 피곤할 때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다. 지치고 피곤한 마음도 안전하게 받아줄 수 있는 구멍.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함께 모여 뜨개질을 하는 공간. 나만의 숨구멍을 옆의 엄마에게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이다 보면 숨구멍이 많아지고 커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해보면 재미있을까? 나에게는 사실 특화된 숨구멍이 있다 바로 사진이라는 구멍인 것이다. 사진가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나는 사진을 그냥 나의 이야기 창구, 숨구멍으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쉬고 싶은 방을 만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멍 때리기'이다.

프로그램은 이러하다. 5분 멍 때리기 연습-5분 멍 때리기 / 7분 멍 때리기 연습-7분 멍 때리기 / 9분 멍 때리기 연습-9분 멍 때리기, 명상, 마음수련 등 거창한 것이 아닌 멍 때리기, 아무 생각 없이 5분만 있어보기다. 멍 때리기 전에 핸드폰을 끄는 필수조건. 생각만 해도 재밌고 설렌다. 아~ 이 봄 얼마나 멍 때리기 좋은 날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집안 풍경을 바라보니 뭐, 좀 지저분하긴 해도 봐줄만하다. 나만의 공간이 없다고 징징대던 나의 내면아이를 만족시켜줘서인지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이다.

나에게는 나만의 숨구멍과 함께 동참할 엄마 친구들이 생길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구들과 숨구멍에서 같이 활동하고 영역을 넓혀 가면 진짜 우리들만의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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