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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온라인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장민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가족은 장씨가 숨지기 직전 잦은 야근과 과도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이 때문에 우울증이 악화됐다고 주장합니다. 36살 젊은 장씨에게 '과로 자살'의 그림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공인단기·스콜레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는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는 왜 힘들어 했는가' 기획 연재를 통해 한 노동자의 사망에 얽혀있는 이면의 문제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야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IT노동자 야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 IT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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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5월 8일 오후 5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은 IT 강국" 이란 말을 숱하게 들어왔을 것이며, 이런 자긍심으로 살아가시는 분도 많다. 대한민국의 경쟁력, 우리 산업의 중추는 바로 IT산업이고 나는 그 복무자라고 말이다. 많은 이들은 이 산업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준비를 하며, 일자리를 찾고, 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참 좋은 일이고 경쟁력 있는 산업의 '느낌'이다. 정말로 실상도 이러한지 한 꺼풀 벗기고 들어가 보자.

IT노조 홈페이지 온라인 회원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일터 Q&A' 게시판을 보면 어지간한 글은 조회수 몇백, 어떤 글은 2만5천 회 이상을 웃돈다. IT산업의 대부분 일은 "프로젝트"별로 진행된다. 많은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퍼블리셔, 데이터베이스 관리자 등 핵심 인력들이 프로젝트별로 결합하여 일을 진행하는 형태, 프리랜서나 계약직이 많은 양태이다.

얼핏 보기에는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형태로 보인다. 21세기 산업에 온라인, 모바일 서비스가 필요 없는 산업 분야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 IT산업 자체에서도 이와 관련된 전문인력들이 상시로, 대규모로 필요한 것을 고려할 때, 공공기관, 대기업 프로젝트부터 영세한 기업의 일까지 모두 프로젝트별로 철새처럼 이동하여 일을 할 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IT 노동자들을 파견하는 업체 '보도방'

대부분의 IT 노동자는 끊임없이 신규 일자리에 신경을 써야 하고, 불안정한 처지로 인해 불안감에 휩싸인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일을 구할 때까지 장·단기 실업 상황에 놓인다. 그렇다고 일 할 때가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프로젝트별 빡빡한 일정과 만성적인 야근, 각종 수당과 임금을 떼어먹히기도 일쑤다.

IT 산업 분야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불법 파견업체인 인력사무소(보도방)이라는 것도 성행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심화 속에서 출연한 일명 보도방들은 IT 전문지식과 무관한 인력파견 사무소를 운영하며 하청받아 모집한 IT 인력들을 파견한다.

원청인 갑이 1차 수행사에 책정하고 지급하는 인건비가 100인 경우, 2차 협력사에서는 70~80%로 줄어들고 더 내려가 3차 기업이나 프리랜서의 경우에는 55~65%로 인건비는 팍 줄어든다. 이 같은 경우만 해도 실력이 뛰어나거나 인맥이나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 되고 3차에서 4차 또는 프리랜서에 해당하는 상황에선 보도방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미 이즈음에서는 50% 정도의 인건비는 중간 과정에서 모두 사라진다.

만일 이 보다 더 내려가는 형태, 보도방과 함께 일하게 되면 마음+몸+금전 삼위일체로 고생을 한다는 말은 이제 인터넷 세상에선 전설이다. 현재 한국의 IT 산업의 프로젝트들은 오로지 인건비를 줄여서 성과를 내려는 시스템이고 그 인건비 자체가 하나의 "시장"이기에 그 비용을 나눠 먹으려는 곳은 즐비하게 나타난다.

직고용 부담을 줄이려는 기업들과 유연한 노동시장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IT 산업구조. 프리랜서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비정규직 IT노동자들은 끊임없는 고용불안과 전쟁 같은 장시간 노동과 싸워야 한다.

IT 노동자들이 시달리는 '테크노스트레스'

그렇다면 고용안정이 되어 있어야 할 IT산업 정규직의 경우는 어떠한지 상황을 보자. 기업 규모별로 이직 주기를 살펴보면, 대기업 IT 인력의 경우에는 2~3년마다 이직하는 경우가 37.3%로 가장 많았고 중소 IT 기업의 경우, 인력들이 1~2년마다 이직하는 경우가 45.8%에 달해, 중소 IT 기업 인력의 이직 주기가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인크루트, 2013).

주요 잦은 이직 이유를 살펴보면 1) IT 전문 인력들이 인지하는 경쟁 기업의 차별화된 일자리와 높은 임금 등이 이직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능력과 기여도에 부합되는 타당한 임금을 지급받는 IT전문 인력의 경우 현저히 낮은 이직률을 나타낸다.¹⁾ 2)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조직 몰입보다는 경력 몰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IT 기술인력은 전문적인 경력개발을 위해 이직한다.²⁾ 정규직의 절반에 육박하는 IT 인력들이 1~3년마다 이직하는 상황을 볼 때, 위의 부분에 만족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IT 노동자들의 독특한 '테크노스트레스'도 주목해야 한다. IT분야가 첨단 분야인 만큼 기술을 끊임없이 습득하여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커다란 부담이다. 특히, 테크노스트레스의 기술복잡성(복잡한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다루는 일에 능력의 부족), 기술 불안감(기술이 유발하는 직업 불안감), 기술 불확실성은 이직 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³⁾

에스티유니타스의 고 장민순 님과 동료들의 경우를 보면 이런 테크노스트레스로 인해 도리어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되었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업무량과 기술이 필요한 여러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테크노스트레스가 심화 되어 '지금의 나의 실력으로는 이직도 어렵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우울감, 무력증이 몰려온다. 그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부당노동을 받아들이거나 심한 경우, 과로자살에 내몰리게 된다.

2013년에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과 IT노조가 함께 진행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1) 지난 1개월간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 경험은 정보통신업(87.8%)에서 일반사무직(63.3%)보다 많았고, 야간시간대인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 사이에 일한 경험은 각각 63.9%, 11.3%로 정보통신업에서 약 6배 높았다.

2) 정보통신업 종사자가 호소하는 건강문제는 전신피로가 90.4%로 가장 많았고, 근육통(82.4%), 요통(77.5%), 두통(77.3%), 복통(59.4%), 불면증(55.0%), 우울 또는 불안장애(53.7%), 심혈관질환(10.2%), 손상(1.9%) 순이었고, 이는 일반사무직에 비해서 최소 2배 이상 높은 결과이다.

3) 우울증상에 대한 추가 검사가 필요한 사람은 54.1%, 임상적 우울증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21.8%이었다. 임상적 우울증 의심자는 국내 우울증상 유병률 CED-D 25점 기준 20-40대 연령대에서 7.6~10%에 비해서 약 2배 이상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불안정하고 긴 노동시간은 IT산업 노동자들의 건강을 크게 해치고 있다.

IT노동자는 가족을 사랑합니다
▲ 야근을 멈추고 싶어요 IT노동자는 가족을 사랑합니다
ⓒ IT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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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노동자들의 땀과 피를 먹고 자란 기업들

이야기를 IT노조의 '일터 Q&A' 게시판으로 돌아와 보면 다양한 부당노동행위와 인력 파견, 수당 미지급, 임금 체불이나 교묘한 후려치기 등 문제가 발생하면 회사 이름만 바꾸고 다시 운영하는 회사들에 대한 정보 공유, 계약단가에 대한 문의와 제보가 줄을 잇는다.

더 슬프게도 이런 프로젝트 단위의 일마저 '경력자'에게만 기회가 주어지기에 신입들에게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단절된 상황이다. 이런 산업 현실상, IT 노동자들은 만성적인 야근과 3, 4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에게 몰아치는 과도한 업무 일상이 반복된다.

재작년 16년에는 일 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아 '구로의 등불'이라고 불리던 넷마블 게임즈에서 세 명의 젊은 개발자, 아트 디자이너가 죽었고, 두명이 돌연사했다. 그 중에 한 분은 산재 처리가 되었고, '과로사'로 인정 받았다. 이들의 죽음의 원인을 한 가지로 특정할 순 없으나 주당 노동시간이 90시간을 넘었고, 주말특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게임을 개발한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그 덕에 넷마블은 주당 평가액이 삼성전자를 능가하여 시가총액 13조의 거대기업이 되었다.

오는 7월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부터 노동자가 주 52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 삼성SDS, LG CNS 같은 대기업들이 회원사로 가입한 IT서비스산업협회(ITSA)는 IT 업계 '특례업종' 지정을 요청하고 나섰다. 긴급한 버그(프로그램 오류) 수정, 보안 업데이트, 신규 시스템 오픈 등 불가피하게 '몰아치기 근무'를 할 수 밖에 없는 업종 특수성을 반영해 달라는 입장이다. 이런 특수성은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만 발현되는 것인가?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사례는 없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70년에는 봉제산업이 국가의 효자 수출상품, 경쟁력 있는 산업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IT 산업은 50년 전 노동집약적이던 봉제산업과 어쩐지 닮아 있다. 산업 역군이라는 칭찬 속에서 건강권마저 빼앗기며 고용불안과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집약적인 산업 일꾼이 되었다. 우리의 IT산업이 진정으로 경쟁력이 있으려면 건강한 노동환경과 창의적인 일터 기반 하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각주
1) 이혜정,김한별, 이정우 (2014) IT 전문 인력의 커리어 가치관: 이직(移職)의도의 Q 방법 분석, 주관성 연구, 통권 제28호, 93-114.
2) 김태성, 허찬영 (2014). IT기술인력의 경력정체가 경력몰입에 미치는 영향. 인적자원개발연구, 17(1), 87-116.
3) 정다미, 손달호 (2017). IT 인력의 이직에 관한 통합적 접근. 인터넷전자상거래연구, 17(3), 127-142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는 왜 힘들어 했는가]
프롤로그 : '야근 근절' 동생 유언 지키려 1인 시위 나선 언니
① "야근 없는 일터, 제가 동생 유지를 잇겠습니다"
② 출근길, 나는 생각했다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
③ 야근, 과로, 감정노동... 내 우울증은 '회사 탓'이다
④ 유가족이 과로 자살을 '의학적'으로 입증하라고?
⑤ 한국보다 적게 일하는 일본, 과로자살은 10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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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관한 충동, 지인이 자살에 관한 암시를 한다면 24시간 운영되는 상담전화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고,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연아님은 IT노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에스티유니타스, #IT노동자, #IT노동조합, #IT노조,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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