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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7살, 5살의 세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날마다 전쟁이다. 아침에 밥 먹여 세 아이 학교와 유치원 보낼 준비를 하면서 내 출근 준비까지 동시에 해야 하니 눈 뜨자마자 멘붕인 날이 허다하다. 퇴근하고 나면 부리나케 돌봄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데리러 가야하고, 세 녀석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출근을 한다. 대한민국 워킹맘들의 일상은 고단하다.

바깥일-집안일-육아의 챗바퀴를 좀체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자꾸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비루하고 피곤해질 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서는 것이 좋고, 기왕 맞서기로 했다면 즐거워야 한다.

나는 아이들 교육 문제에 몰입중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특히 더 교육문제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궁금한 게 많아지다보니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고 탐독하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료 학부모들과 토론하고 나눈다.

교육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모여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모색하고 시도하면서 '공동체'를 일궈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워킹맘들인 이들은 교육혁신의 길에서 만난 든든한 동료들이다. 토론하고 계획하고 도전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학부모로서 동반성장해 나간다.

'쎈' 엄마들이라 피곤하다구요?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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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남 영광 농촌 시골마을의 작은학교다. 한때는 학생수 급감으로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 방침에 따라 폐교 직전까지 갔었지만 학부모들과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기사회생했다.

면 단위에 유일하게 남은 초등학교를 살려보겠다고 교육청으로 언론사로 쫓아다녔다. 학연 지연 인맥 총동원해 학교 살리기에 올인한 결과, 지금은 학생수 1백여 명에 육박하는 잘 나가는(?) 학교가 됐다.

학부모들이 발품 팔아가며 공을 들여 살려 놓은 학교이니 아이들 교육과 학교 운영에 관심이 많은 건 당연지사. 이런 엄마들을 학교는 부담스러워한다. 학교가 '혁신학교'인지라 학부모와의 소통을 학교 운영의 중요한 요소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형식적이다.

교사들은 학부모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학부모들은 '꽉 막힌' 교사들을 답답해 한다. 이러니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교 살려놓으면 학교에서 다 알아서 할 줄 알았는데 더 힘들어졌다'면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교사들 사이에서 그 학교는 '엄마들이 쎄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학부모가 '쎄기' 때문에 힘든 학교라고 기피하는 분위기란다. 그런 말은 학부모들을 위축시킨다. 무엇보다 '쎄다'는 단어에서 묘한 반감이 느껴졌다.

학교에 자주 찾아와 많은 말을 하는 학부모들이 부담스럽다는 표현이다. 나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학교 교육에 의견을 내고 참여하는 것이 '쎄다'고 손가락질 받을 일인가, 의아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바람직한 모델은 무엇일까? 학교-학부모-지역사회가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교육자치의 내용과 방법은 무엇일까? 권위적이고 표준화된 근대 학교 교육 체계를 넘어서 새로운 교육의 상을 만들어가는데 학부모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시대에 뒤떨어지는 교육 현장의 낡은 관행은 과연 극복가능할까? 물고 태어난 수저 색깔로 계급화되고 대학 간판과 연봉 순으로 서열화 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가기 위해 학교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의문부호가 늘어날수록 고민은 깊어졌다.

교육혁명,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7세 아이들의 65%는 지금은 없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직업 40억개 중 20억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존의 일자리는 소멸하고 첨단과학기술과 새로운 산업에 의한 일자리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사물인터넷, 무인자동차, 빅데이터, 드론, 3D 프린터, 인공지능(AI) 등에 의한 변화는 직업 구조에서 생활 방식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시대가 예고하는 노동과 생활양식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지금의 학교 교육으로는 안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근대 산업혁명 이후 산업사회 노동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목적으로 설계된 근대 학교교육체계는 변화하는 시대를 감당할 수 없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7년 MBC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국이 과거 산업시대의 교육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크나큰 장애물이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감옥에 돈을 쏟아붓는 격"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교육학자 켄 로빈스는 저서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교육혁명>에서 지금 학교가 키워야 할 8가지 핵심 능력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학교가 키워야 할 8가지 핵심능력]

호기심(curiosity)- 질문을 던지며 세상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는 능력.
창의성(creativity) -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제로 적용하는 능력.
비평(criticism) - 정보와 아이디어를 분석하고 논리적인 주장과 판단을 펼치는 능력.
소통(communication) - 생각과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다양한 미디어와 표현형식을 통해 자신있게 표현하는 능력.
협력(collaboration) -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설적으로 협조하는 능력.
연민(compassion) -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하며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
평정(composure) - 내면의 감정과 연계된 개인적 조화와 균형의 감각을 키우는 능력.
시민성(citizenship) - 사회에 건설적으로 참여하며 사회를 지탱시키는 과정에 동참하는 능력.

획일화되고 표준화 된 시스템 속에서 선택된 소수만이 살아남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인격적 성장을 도모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과도기다. 이전의 교육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아직 새로운 교육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교육은 낡은 것과 새 것의 사이, 그 어디쯤에 서 있다.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교육정책 전문가, 정치권 등 학교 교육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이 발상을 전환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협력하면서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교육혁명은 유보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때로는 치맛바람도 필요하다

'치맛바람'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여성들의 극성스러운 사회적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단어의 뉘앙스 자체가 부정적인데다 의미 또한 성차별적이다. 학교가 '쎈' 엄마들을 기피하는 경향과도 상통한다.

하지만 나는 학교교육의 혁신을 위해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내 아이만 잘나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치맛바람이 아니라, 앞집 옆집 뒷집 아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인 치맛바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부모세대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초등학교 이상 아이를 둔 학부모들은 대부분 군대식 규율과 통제가 만연한 학교 분위기 속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주관식보다는 객관식에 익숙하고 소통과 협력보다는 경쟁에 길들여진 세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학부모들은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인터넷 없이 살았지만, 아이들은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상상하지 못한다.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다르고 문화적 감수성의 격차도 크다.

사는 세상이 달라졌으니 학부모도 공부해야 한다. 새로운 교육에 관해 학습하고 토론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 치맛바람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공부하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어야 한다.

앞으로 학부모로서 풀어가야 할 다양한 교육적 고민들에 관해 탐구하고 동료 학부모들과 토론한 내용을 북칼럼 형태로 연재하려고 한다. 교육 분야 관련 다양한 책들을 교육적 현실에 비춰 비판적으로 탐독하고 내용을 정리해나갈 것이다. 교사나 학자가 아닌 학부모의 시각으로 쓰는 교육 비평이자 북칼럼이다. 비전문가의 목소리이긴 하지만 다양한 교육 문제에 대한 의미있는 접근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태그:#학교혁명, #교육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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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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