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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 어른들끼리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일들을 겪습니다. 오직 육아하는 이때만,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애 키우는 동안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좌절감에 글을 씁니다. '너희만 크냐? 엄마도 같이 크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육아일상 속 메시지를 담아 글을 씁니다.[편집자말]
미혼 시절, 난 아이를 낳으면 모든 순간을 육아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양육할 줄 알았다. 실제로 아기를 키우는 지금 책장에 양질의 육아책을 꽂아두고 틈틈이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책 속 몇 줄보다 감각을 더 따르기도 했다. 아련하고, 희미하고, 감성적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랬다. 바로 기억 속 어린 시절 부모님의 양육방식, 그리고 어렸던 나의 감정이었다.


늘 따뜻한 집밥을 차려주던 엄마를 따라, 이유식 한 그릇도 내 손으로 차려주고 싶은 마음. 밥상 위에 초록빛 도는 반찬이 없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 거의 매주 주말, 시골 할머니 댁에서 올챙이, 버들치, 다슬기를 잡던 행복한 추억 덕에, 키즈카페보다 집 앞 강가의 풀을 손으로 쓸어보게 하는 일.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좋은 추억을 더듬어 아이들을 키우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부모님이 해주지 못했기에 생긴 결핍을 채우는 일이다.









어린 내가 갖고 싶던 풍선, 이제 내 아이에게

이번 어린이날, 딸에게 헬륨 풍선을 사줬다. 평소 식재료며, 생필품이며,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매일 가계부를 쓰며 불필요한 지출을 단속한다. 평소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기질이 있지만 가계부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기록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짠 내 풍기며 살다가도, 하늘 위를 동동 떠다니는 풍선만 보면 생활비의 벽이 허물어진다. 


어린 시절, 헬륨 풍선은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다. 행사장에서 헬륨 풍선을 만나도 부모님은 사주지 않으셨다. 난 그 풍선을 너무 갖고 싶었다. 입으로 바람을 넣는 고무풍선은 시시했다. 하늘을 날지 못하니까. 그렇게나 바랐건만, 어른이 될 때까지 헬륨 풍선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헬륨 풍선 가격은 만 원. 헬륨가스 들어간 비닐 값으로 과하다 생각했지만, 2만 원이어도 사주고 싶었다. 아이는 하늘 위를 동동 헤엄치는 예쁜 돌고래 풍선을 들며 행복했다. 딸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 신기한 헬륨 풍선에 마음을 빼앗겼다. 어린 시절 그렇게나 갖고 싶던 헬륨 풍선을, 딸을 낳고 나서야 만질 수 있게 됐다.


어린이날 내내 애완동물처럼 돌고래 풍선을 놓지 않는 모습에 흡족했다. 집에 와서도 천장에 띄어 놓고 "돌고래야~ 이리 와~" 하며 살뜰히 챙긴다. 어린 시절 나를 위해 샀지만, 딸이 좋아하니 지갑을 잘 열었다고 생각했다.







젊은 날을 검소하게 보내신 덕에 이제 우리 부모님은 부족하지 않게 사신다. 어린이날이라고, 우리 네 가족 마음껏 즐기라며 양가 어른들께서 수십만 원을 보내주셨다. 며칠이면 바람 다 빠질 풍선에 쉽게 지갑을 열 수 있던 것도, 어른들께서 보태주신 용돈 덕분이었다.


결핍은 내게만 있던 게 아니었다. 삼남매를 키우던 그 시절, 어린 것들에게 장난감을 넉넉히 쥐여주지 못 한순간들이 부모님 가슴에도 맺혔나 보다. 자식을 마음 깊이 사랑하셨지만, 물질로 다 채워주지 못하셨던 지난날.

당신들은 허리띠 졸라매며 살았지만, 딸 내외는 그러지 않길 바라는 마음. 부모님에게 우리 부부는 여전히 아이였다. 2살, 4살 손녀들의 어린이날이었지만, 실은 더 이상 장난감을 채워줄 수 없도록 다 자라버린 딸 내외의 '어른이날'이었던 것이다.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치열하게 사시느라, 장난감 앞에서 발을 못 떼던 자식 셋의 손을 눈 질끈 감고 잡아끌어야 했던 부모님을 위한 날이다. 부모님께서 느끼셨을 결핍을 보상해드려야겠다. 문제집 한 권 살 때도 부모님 주머니를 걱정했던 딸이 이렇게 컸다고. 부족하게 컸지만, 마음이 공허했던 적은 없었다고.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아이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태그:#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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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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