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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5.16 10:13수정 2018.05.16 20:03
비가 꽤 많이 온다.

지난 강원도 출장은 동쪽으로 비를 몰고 갔다면, 이번 전북 김제 출장은 남녘으로 비구름을 몰고갔다. 김제 가는 길, 내려갈수록 빗발이 거세다. 분명 서울에서 내려갈 때는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빗방울이 굵어졌다.

비 오면 출장 길이 고단하다. 운전도 어렵거니와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해 힘들다. 하지만 봄비는 반갑고 반갑다.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가장 반갑긴 해도, 봄비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이미 조생종 벼는 모내기 한 곳도 있지만, 본격 모내기를 앞두고 내리기도 하거니와 겨우내 쩍쩍 갈라지던 대기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가을비는 수확 시기인지라 반갑지 않다. 비 오는 만큼 과일은 당도가 떨어지고, 나락은 수분을 머금어 말리는데 애를 먹는다. 같은 비라도 봄과 가을, 계절에 따라 대접이 다르다.

내려가는 길, 차가 별로 없다. 이른 출발이라도 어느 정도 차가 있기 마련인데. 대신 올라오는 차량이 이른 시간치고는 제법 많다. 충남 홍성까지 가는 길 내내 차가 많다. 무슨 날이기에 올라오는 차가 많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3일 연휴 끄트머리다. 차 막히는 걸 염려한 나머지 일찌감치 출발한 차들이다.

아침 8시에 저러면 오후는 어떨까, 심히 걱정이 됐다. 연휴인지도 모르고 출장 간 나는 또 뭐고, 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양반은 또 뭔가. 하긴 반백수 프리랜서 4년차이다보니 연휴 개념이 희박해졌다. 사람에게 연휴라고해도 농작물과 소·돼지가 연휴는 아니니까. 어차피 연휴 개념이 희박한 두 사람의 만남이니 가능했던 약속이었다.

내장과 머리 고기에 신 김치를 한 조각 얹으면...

전북 김제 원평의 순댓국. 잡내 없이 잘 삶은 내장과 머리 고기에 김치 신맛이 쩡한 울림을 줬다. 최고의 하모니다.

전북 김제 원평의 순댓국. 잡내 없이 잘 삶은 내장과 머리 고기에 김치 신맛이 쩡한 울림을 줬다. 최고의 하모니다. ⓒ 김진영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서김제로 빠져나온 시간은 대략 오전 9시. 여전히 비가 온다. 김제시를 통과해 한반도를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관통하는 1번 국도 옆, 김제시 금산면 원평으로 갔다. 출장지에 일찍 도착해 즐기는 해장국은 놓칠 수 없는 출장의 묘미다.

순댓국이 목적이었는데 지나는 길에 금산사 IC를 지나쳤다. 순댓국을 먹을 요량이었으면 아예 호남고속도로로 올 걸 그랬다. 덕분에 왕복 60km를 더 달렸다. "어휴 병딱" 마음의 소리를 지르면서 달리니, 이내 원평 순댓국 집 앞이다. 먼 하늘을 보니 머리 위 하늘보다 색이 옅다.

순댓국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비가 사그라질 듯 싶다. 피순대, 내장국밥 7000원으로 시작해 모둠국밥은 만원이다. 몇 시간 운전한 나를 위해 3000원을 더 쓰자며 호기롭게 모둠국밥을 시켰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 속 국물이 자작하게 보일 정도로 피순대, 내장, 머리 고기가 한 가득 들었다.

여름 같은 봄 날씨라고 해도 비 오면 쌀쌀한 지라 뚝배기 온기가 반가웠다. 아무리 급해도 자글자글 끓고 있는 뚝배기 국물이 잦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뜨거울 때 맛 보면 입 천장을 데기 십상이고, 혀가 제 기능을 못해 간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물 한 모금으로 간을 체크하고 새우젓을 넣었다. 검붉게 잘 익은 김치 하나 올려 먹는다. 잡내 없이 잘 삶은 내장과 머리 고기에 김치 신맛이 쩡한 울림을 줬다. 최고의 하모니다. 다시 이번에는 막 무쳐 낸 부추무침과 먹었다. 이건 괜찮은 하모니다. 같이 나온 곁가지 반찬과 하모니를 맞추다 보니 뚝배기가 바닥을 드러냈다.

창밖을 보니 먼 하늘 옅은 구름이 방울방울 비를 뿌리고 있었다. 내 배가 부르니 이제야 원평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둘러보니 괜찮은 식당들이 보였다. 비록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의 영화는 없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듯, 빈번이 오가던 1번 국도와 인근에서 가장 컸던 원평장의 유산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작은 시골답지 않게 중심가에 중식이며, 한식이며 괜찮은 식당들이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호남고속도로를 오가는 길이면, 5분 거리인 금산사 IC로 빠져 호젓하게 식사를 하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먹방으로 휴게소 음식이 동난다고 하지만, 휴게소 음식은 급한 사람을 위한 음식일 뿐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달에 몇 번씩 고속도로를 타도 음료를 사거나 기름을 넣을 때만 휴게소를 이용한다. 시간을 조금 더 쓰더라도 IC 근처 식당을 이용한다. 출장 때의 버릇이다.

김제 청하면의 쌀 '청무', 근래 먹어본 쌀 중에 최고 

고창·청산도의 청보리가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김제 또한 청보리 밭이 좋다. 비 온 뒤 흐린 하늘 밑의 푸른 보리밭, 나름 운치가 있다.

고창·청산도의 청보리가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김제 또한 청보리 밭이 좋다. 비 온 뒤 흐린 하늘 밑의 푸른 보리밭, 나름 운치가 있다. ⓒ 김진영


순댓국 한 그릇을 먹고는 다시 김제 서쪽 끝으로 갔다. 오늘 출장 목적은 '쌀'이다. 김제의 이름난 쌀은 간척지 쌀도, 지평선 쌀도 아닌 신동진 쌀이다. 김제 지역마다 브랜드는 달라도 '신동진' 품종이 주력이다. 하지만 신동진을 보러 간 것은 아니다. 김제 청하면에서 새로이 생산하고 있는 '청무' 품종 때문이었다. 샘플을 맛 보고는 한 눈에 반해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청무는 최근 소개된 품종이다. 일본에서 개발한 품종이지만 '새청무'라는 신 품종이 나올만큼 밥맛이 좋은 쌀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육성 품종이 있다. 예를 들어 전북 김제·군산은 신동진, 충남 서천은 삼광 등 지역에 맞는 품종을 육성해 밥맛을 자랑한다. 아직 밥맛을 결정하는 아밀로스 함량, 단백질 함량에 대한 기본 데이터는 없지만, '청무'는 근래 먹어 본 쌀 가운데 가장 맛있었다. 쌀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품종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김제 진봉면으로 갔다. 고창·청산도의 청보리가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김제 또한 청보리 밭이 좋다. 비 온 뒤 흐린 하늘 밑의 푸른 보리밭, 나름 운치가 있다. 청보리 밭 한 켠에 나지막한 동산, 이제는 바다 대신 호수를 바라본다는 망해사(望海寺)에 올랐다.

바다로 나가던 배들이 있던 심포항은 쇠락했고, 바다는 새만금 덕에 호수가 됐다. 김제·부안 출장이라면 제철인 바지락죽 한 그릇을 했을텐데, 방조제가 완성된 이후 기수역(汽水域 :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곳)이 사라지면서 조개 또한 사라졌다. 바지락죽은 그렇게 내 메뉴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만경에서 육회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청하로, 대야로 해서 군산에 들려 딸내미 줄 빵을 사서 서울로 향했다.

만경에서 육회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만경에서 육회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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