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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편 표지
▲ <지도의 역사> 강리도 아시아 편 표지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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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998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입니다.

조선 초 세계지도인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거의 아시아 지역 전체의 지도역사를 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지도의 역사> 프로젝트의 일부로 발간(1994, 시카고 대학 출판사)되었습니다. <지도의 역사>는 1987년 첫 권이 나오면서부터 미국 출판사협회로부터 '최우수 인문학 저서(Best Book in the Humanities)'상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20세기 인문학 분야의 기념비적인 성취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30년에 걸쳐 총 7권이 나왔는데, 각 권의 표지에는 대표적인 지도가 하나씩 실려 있습니다(아래 사진, 필자 6권 소장).

표지 지도
▲ <지도의 역사>총서 표지 지도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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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 선조들이 1402년 붓으로 비단 바탕에 그렸던 세계지도, 강리도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도의 원본은 전해 오지 않으나 가장 먼저 만들어진 사본(1480년초)이 일본 류코쿠 대학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류코쿠대 본을 통상 'Kangnido(1402)'라 부릅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도이자 세계지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강리도가 중국, 일본 등을 포함한 아시아의 수많은 지도를 제치고 표지 지도로 선정된 것일까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궁금증을 느낄 겁니다. 나그네(필자)도 그중의 한 사람으로서 관련 정보를 애써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찾을 수 없으면 궁금증은 더욱 깊어집니다. 어느 날 마침내 찾았습니다. 찰스 암스트롱 교수(컬럼비아 대학)가 게리 레드야드 박사(컬럼비아대 석좌 교수)와 인터뷰한 내용 중에 들어 있었습니다.

"강리도는 가장 놀라운 걸작"

여기서 그 대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참고로, 게리 레드야드(Gari Ledyard)는 저명한 한국학 학자로서 앞서 언급한 책자에 한국 지도의 역사에 대하여 약 100쪽에 달하는 논문을 실은 장본인입니다.

암스트롱: "이제 한국지도의 역사에 대한 박사님의 저술에 대해 이야기해 보죠. 어떻게 그게 이루어졌으며 박사님은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레드야드: "이 주제로 나를 이끌었던 연결 고리는 브루스 커밍스 박사였습니다. 당시 세계 지도의 역사 총서 발간에 착수한 시카고 대학 측에서 한국 전문가를 찾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브루스 커밍스(시카고 대학 교수)에게 적임자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는데 그가 나의 이름을 그쪽에 알려 주었습니다.

총 편집장 데이비드 우드워드 박사가 제공해준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나는 이 프로젝트가 지도학 분야에 항구적인 영향(permanent impact)을 미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이 중국 및 일본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독창적인(unique) 지도를 많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일반 지식인들에게 소개할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나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레드야드: "연구 결과를 좀 소개해 주시겠어요?"

암스트롱: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걸작(the most spectacular)은 1402년에 편찬된 강리도라는 세계지도였습니다. (중략) 당시 조선의 지도제작자들은... 아메리카, 호주 등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곳을 제외한 세계의 거의 모든 영역을 통합하여 한 장의 지도에 담았던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1492년 항해를 앞두고 유럽의 많은 지도들을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지도들을 살펴본다면 그중에 어떤 것도 조선의 강리도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 게 될 겁니다. 이러한 사실에 몹시 깊은 인상을 받은 데이비드 우드워드 총 편집장이 이 지도를 표지에 올린 것입니다. 그 이래로 강리도가 세계의 주목과 존중을 받게 되었지요(it has since gained the attention and respect of the world)." - 162~163쪽(번역: 김선흥)
이제 궁금증이 해소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강리도가 왜 근 25년 전부터 세계 학계와 지식인들에게는 알려지고 찬사를 받게 되었는지를.

백문불여일도! 이제 지도 실물을 보겠습니다.

류코쿠 본
▲ 강리도 류코쿠 본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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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지도가 왜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는 걸까요? 여기에서는 아프리카에 주목해 봅니다. 전술한 <지도의 역사>는 아프리카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도의 서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이 그려져 있다. 가늘게 매달려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들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듯이 확신에 차 있다. 즉, 아라비아 반도는 페르시아만의 윤곽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끝은 정확히 남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대다수의 옛 유럽 지도에서는 아프리카의 끝이 남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향해 있다). -248쪽 (번역: 김선흥)

조상들은 아프리카를 어떻게 알았지?

지금 우리 현대인의 눈으로는 강리도의 아프리카가 결함이 많아 보일 겁니다. 가운데에 거대 호수도 엉뚱합니다. 하지만 시점을 당시 15세기로 돌려보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가정을 해 봅니다. 한오공이라는 호기심 작열하는 가상인물이 어느 날 <지도와 인간사>를 읽어 보고 작심합니다.

'조선의 강리도가 서양보다 아프리카를 먼저 그렸을 리가 없어. 희망봉을 '발견'하고 지리상의 대발견을 했던 주역이 서양인이라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나는 기어코 당시 서양 지도에서 더 멋진 아프리카를 찾아내고 말 거야.'

한오공은 세상에서 지도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미국 의회 도서관뿐 아니라 유럽 전역을 답사합니다. 당시 서양에서 표준적인 지도였던 프톨레미 유형의 지도에는 아프리카의 남쪽이 아예 바다에 접해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쉽게 확인됩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살펴봅니다). 한오공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더 찾아봅니다. 이런 지도도 보일 것입니다.

1450-60제작
▲ 카탈란 에스텐세지도 Catalan-Estense Map 1450-60제작
ⓒ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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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엄청 큰 부챗살 모양의 땅이 아프리카 남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지도는 아프리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파격적입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강리도의 근처에는 오지 못합니다.

한오공은 드디어 가장 혁신적인 지도 하나를 찾아내고 눈을 빛낼 것입니다. 유명한 프라 마우로(Fra Mauro) 지도로, 1459년에 이탈리아 수도승 프라 마우로가 만든 것입니다(이탈리아 국립해양 도서관 소장). 이 지도는 여러 면에서 서양의 강리도라 할 수 있습니다. 보다시피 아프리카가 근사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강리도의 아프리카에 비하면 덜 현대적입니다. 특히 남부 아프리카의 윤곽이 그렇습니다.

1459년, 원도는 남쪽이 위를 향함
▲ 프라마우로 Fra Mauro 세계지도 1459년, 원도는 남쪽이 위를 향함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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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오공은 결국 탄식을 토하면서 길고 고단한 탐구여행을 마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을 것입니다. 왜 서양의 지리학자나 역사가들이 조선의 강리도에 놀라는지를. 왜 미국에서 출간된 대작 <지도의 역사> 아시아 편 표지를 강리도가 장식하고 있는지를. 또한 왜 1992년 워싱턴의 국립 미술관에서 개최된 '콜럼버스 500주년 기념 전시회'에 강리도가 출품되었으며, 왜  그 전시회 도록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는지를.

"콜럼버스가 당시 가장 완전한 세계 지도를 찾으려 했다면 조선이라는 왕국을 찾아가야 했을 것이다." - (도록 329쪽, 아래 사진)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 기념 도록
강리도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 기념 도록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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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대체 강리도의 아프리카는 어디에서 왔다는 말인가. 선조들이 거기에 가서 그려 오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중국에 그게 있습니다. 북경도서관, 요령성 박물관, 제1역사당안관, 하남성 도서관, 절강성도서관, 중국역사박물관, 남경 도서관, 상하이 박물관, 유수한 대학의 도서관. '광여도'라는 지도첩을 소장하고 있는 곳들입니다. 광여도 속에서 우리는 '강리도 아프리카'의 어머니(혹은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실물을 보겠습니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광여도 초판본(복간본) 자료입니다(광여도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설명합니다).

광여도
 광여도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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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페이지를 봅니다. 왼쪽 맨 위에 그려져 있는 것이 유일한 강리도 아프리카의 원천입니다. 1320년대 즈음, 그러니까 원나라 후기에 그려진 것입니다. 부분도만 실려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거대 호수 및 나일강이 그려져 있고 몇 개의 지명도 한자로 적혀 있습니다. 바다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땅에는 기하학적인 눈금이 보입니다. 거리 표시입니다. 한눈금의 실제 거리는 100리. 

이제 이 지도와 강리도의 해당 부분을 병치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광여도>의 아프리카
▲ <광여도>와 <강리도> <광여도>의 아프리카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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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의 양 지도가 아프리카뿐 아니라 전체적인 구도에 있어서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두 지도가 같은 계통의 지도일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보다시피 차이점도 적지 않습니다. 과연 이 지도가 강리도의 모본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여기 아프리카는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이 당시 서양과 이슬람권에서는 과연 어떤 지도들이 만들어지고 있었을까요? 다음 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태그:#강리도, #지도의 역사, #아프리카, #광여도, #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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