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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호 팩래프팅 프로젝트'는 제로그래머스 데이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제로그래머스 데이는 아웃도어 브랜드인 제로그램에서 주관하는 친환경적이며, 새로운 아웃도어를 지향하는 비상업적, 비정기적인 활동이다. 늘 새로운 아웃도어 활동을 디자인하고 있으며, 특히 인문학적인 아웃도어 활동에 관심이 많다. 본 행사를 기획한 운영진으로서 그 후기를 싣는다 - 기자말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은 수십만 년 동안 인간 DNA에 각인된 본능 같은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동아프리카 초원 지대 사바나를 걸어 나와 유럽 대륙에서 네안데르탈인과 경쟁에서 이기고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후예로서 지구를 지배하는 유일한 인류로 진화할 수 있었던 동력일 것이다.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인류 진화사 속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이 더욱 고양된 셈이다.

현대인이 아웃도어를 갈망하는 것은 진화인류학에서 보자면 크게 이상할 게 없다. 이제 현대인들은 더이상 돌을 깨서 손도끼를 만들 필요가 없고, 불을 얻기 위해 벼락을 기다릴 필요도 없게 되었다.  사전에 준비하고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한다면 우리의 조상들처럼 굳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미지의 세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신선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새로운 아웃도어를 디자인하다

소양호 일대 저 산, 저 물 어딘가에 길이 계속 이어진다. ⓒ 이현상
모험 요소가 없는 아웃도어는 관광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반복적이며 잘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세련된 여행 상품보다는 전례 없는 것을 디자인하고 싶었다. '산길, 물길을 이어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가다.' 즉, 산길은 두 발로 걸어가며, 물길은 두 팔로 노를 저어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대상지인 소양호는 강원도 춘천, 양구, 인제에 걸쳐 있는 국내 최대의 인공 호수이다. '소양강 처녀'라는 국민 가요가 있을 정도로 구구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는 소양호 주변의 골짜기와 뱃터들은 이제 찾는 이들이 없어 점점 미지의 영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곳이다. 

수몰되어 옛길은 끊기고, 끊긴 길은 다시 물길로 이어지는 곳. 막다른 곳이라는 정서적 배경은 우리의 모험심을 더욱 자극하였다. 우리는 그 속으로 고무보트를 접어 배낭에 넣고 걸어 들어갔으며, 길이 끊겨 물길로 이어지는 곳에서는 다시 보트를 꺼내 물길로 나아갔다.

물에 갇힌 듯, 산에 갇힌 듯

봉화산 조망 소양호의 주변의 산과 물이 한몸이 되어있다. ⓒ 이현상
봉화산 인적은 드물었으나 빼어난 조망을 선사하는 봉화산 ⓒ 이현상
5월 19일. 이틀간의 폭우로 말끔히 씻긴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청명하였다. 이번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약간의 흥분과 기대로 첫 번째 산길인 양구 봉화산에 올랐다. 봉화산 정상을 지나 석현리로 내려서면 양구선착장에 닿는다. 산길은 비교적 뚜렷했으며 걷는 거리는 약 10km 남짓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툭 트인 전망 아래 소양호가 조망된다. 때로는 산에 갇힌 물인 듯 때로는 물에 둘러 쌓인 섬인 듯 하다. 주말임에도 산에 오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양구 봉화산과 국토정중앙천문대

국토정중앙천문대 야영장 양구 국토정중앙천문대에서 운영하는 야영장은 시설이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 이현상
봉화산의 들머리는 양구의 국토정중앙천문대, 수림 펜션 입구 등이다. 국토정중앙천문대에는 잘 꾸며진 야영장이 있으므로 야영을 겸한 일정을 짜는데 도움이 된다(이용 문의 국토정중앙천문대 033-480-2586).

양구 뱃길

양구선착장 한때 가장 중요한 교통시설이었던 양구선착장. 이제는 쇠락하여 옛 영화를 찾을 수 없다. ⓒ 이현상
소양호 물길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만 나아가야 한다. ⓒ 이현상
우리는 봉화산에서 석현리로 내려선 후 양구선착장에서 고무보트를 배낭에서 꺼내 바람을 채웠다. 양구선착장은 이제 주말에 낚싯배만이 드나드는 쇠락한 선착장으로 변해버렸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떠올랐고 곧 오후가 되면 골바람이 내려와 수면을 할퀴며 파도를 만들 것이다. 서둘러 목적지인 춘천 조교리까지 16km의 물길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노를 저어 물길을 헤쳐나가는 일은 더디었다. 물길로 들어선 지 어느덧 3시간, 우리는 애초의 목표 지점인 조교리까지 절반에 이르렀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일몰 전에 조교리에 닿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물길 사전 정찰을 위해 카약으로 선두를 이끌던 지리산카약학교의 강호 팀장은 일행들의 의견을 모아 중간 탈출을 결정하고 탈출 지점은 추곡낚시터로 정하였다. 거기까지도 다시 1시간 이상을 노를 저어 가야했다.

우리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에 있었다

소양호 호수 한가운데 일엽편주처럼 물길을 헤쳐가고 있는 일행 ⓒ 이현상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해 누구도 아쉬움이 없었다. 탈출지점까지의 물길 마저도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추곡낚시터로 향하는 물길은 비교적 평온했지만 4시간째 작은 보트에 쪼그려 앉아 있었던 탓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산길이나 물길이나 목적지는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법, 우리는 계속 노를 저어 4시간만에 추곡낚시터에 도착하였다. 비록 물길을 다 건너지 못하였으나 애초 계획대로 우리는 조교리로 이동하여 다음날 다시 산길을 이어가기로 하였다.

조교리 농촌체험관 바위산을 오르기 위해 조교리 농촌체험관을 출발하고 있다. ⓒ 이현상
조교리 주민들이 운영하는 농촌체험관에서 하루를 묶은 우리는 이른 아침 바위산 들머리로 들어섰다. 그러나 바위산에 이르는 산길은 물길만큼이나 난감했다. 길은 끊기기 일쑤였고 이어진 길마저 희미하여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원래는 토끼와 고라니와 멧돼지들이 오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인적이 없어진 등산로는 다시 짐승의 길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길을 잃고 기슭을 더듬어 다시 길을 찾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들어선 골짜기는 엉뚱하게도 다시 조교리로 내려서는 길이었다. 하산길에 우리는 뭇짐승들에게 다시 길을 되돌려주었다고 생각하며 이틀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ZEROGRAMMER'S DAY IN THE UNKNOWN WORLD
ⓒ 이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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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운행 정보
양구 봉화산 약 10km, 양구선착장에서 탈출지점인 추곡낚시터까지 팩래프팅으로 약 10km, 다시 춘천 조교리 바위산 7.5km의 산길을 이어서 운행하였다.

팩래프팅(Packrafting) 보토를 포함하여 모든 짐을 배낭에 넣고 물길을 이어가는 것을 팩래프팅이라고 한다. ⓒ 이현상

덧붙이는 글 | 활동 정보는 제로그램 홈페이지 (http://www.zerogram.co.kr)을 참조한다.

태그:#제로그래머스데이, #팩래프팅, #소양호, #ZE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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