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중요한 건 기초체력이죠.
 중요한 건 기초체력이죠.
ⓒ pexels

관련사진보기


일주일에 세 번, 새벽에 수영을 다닌다. 6년째다.

꾸준히 다니면 누구나 수영을 잘하게 된다는 선생님 말씀을 믿었는데, 나는 '누구나'가 아닌가 보다. 아직도 멀었다. 물론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오리발에 다이빙까지 모든 영법을 마스터하긴 했다.

그런데 영 속도가 안 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헉헉 거리며 앞 사람을 쫒아가는 데도 몇 바퀴 돌다보면 차이가 저만큼 벌어지곤 한다. 체력의 차이도 있지만 그보다 자세의 문제가 더 크다. 자유형은 팔 꺾기를 똑바로 하지 않아서 교정하는데 애를 먹었고, 평영은 여전히 발차기가 엉성하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힘은 배로 들고, 앞으로 쑥쑥 나가지 못한다. 오래 배운 만큼 안 좋은 자세가 굳어져 고치기도 어렵다. 이제 막 수영을 배우는 초급반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빨리 하려고 하지 말고, 정확히 하세요."(생각해 보니 내 초급반 시절에도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민주주의는 '뿌리'가 있을까, 없을까

 우리 정치는 '이야기' 통하는 구조일까.
 우리 정치는 '이야기' 통하는 구조일까.
ⓒ pexels

관련사진보기


정치도 그렇다. 기초가 중요하다. 정치에서 기초는 지역이다. 내가 사는 곳, 내가 활동하는 곳, 내가 일하는 곳에서 정치를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은 허약한 토대에 마련된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정치'라 하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이를 구체적인 단어로 바꾸면 '정당'이다. 지역에서, 일터에서 '정당'을 만날 수 없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뿌리 없는 민주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민주노동당에는 '분회'라는 것이 있었다. 시·군·구 단위로 지역위원회가 있는데, 분회는 그보다 작은 규모의 마을 단위로 구성된다. 지역뿐 아니라 사업장에도 직장분회가 있었고, 대학 별로 만들어진 학생위원회도 분회 역할을 했다. 20~50명 정도의 당원들이 분회별로 월 1회 이상 모임을 진행했다.

분회는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였다. 분회 모임은 딱딱한 회의와 달라 당원들이 평소에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동네에서 발생한 문제도 공통의 이해관계로 다룰 수 있었고, 지역문제를 당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당원 실천의 날'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당 활동을 알리는 선전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분회를 통한 홍보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에게 지속적으로 당을 알릴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었다.

이처럼 분회는 당원 의견 수렴과 지역정치활동의 기초 단위이자, 중앙당의 소식을 전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당원의 다수는 노동자, 농민이었고, 인터넷 사용이 일상적이지 않았다. 분회모임을 통한 전달은 속도는 느리지만 정확했다. 당원들의 의견을 바로 들을 수 있었고, 서로 간에 토론이 가능했으며 그 과정에서 '당'에 대한 소속감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분회장은 당원들의 의견을 지역위원회를 통하여 중앙당으로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었다. 대의원들도 분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대의원 대회에 참석했다. 중앙과 지역 사이에 민주적 소통이 보장됐다.

'진보의 성지'로 불렸던 경남 창원의 경우 무려 16개 지회, 82개 분회가 있었다. 창원시당-본부(도의원 선거구)-지회(시의원 선거구)-분회 구조였다. '창원에서는 세 사람만 모이면 분회를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창원시을지구당 사무국장이 작성한 <분회건설 방법론과 운영안>에 따르면 "분회 지역 사업과 후보 추천 등 선거구 단위로 진행되어야 할 사업은 지회가 담당하고, 일상적인 교류와 당원 관리는 분회에서 담당하는 구조로 사업을 진행하였다"라고 한다. 그는 '이런 구조를 통해서 당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을 분회활동의 성과로 꼽았다.

물론 모든 분회가 활동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3분의 1은 모임조차 어려웠고, 3분의 1은 정기적으로 모임이 이뤄졌으나 지역 활동까지는 어려웠고, 나머지 3분의 1이 당 이름으로 안정적인 지역 활동을 했다. 지역별로 편차가 컸고, '동네' 정치의 어려움으로 인해 분회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분명한 것은 당시에는 '지역'을 중심으로 기초가 튼튼한 정당을 만들어가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후 민주노동당의 내분으로 지역 기반이 무너지면서 분회도 사라졌지만 생각할수록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유럽 의회에 20대 의원, 30대 장관이 있는 까닭

우리의 지방선거 투표율은 그리 높지 않다. 첫 지방선거 때 68.4%를 기록한 이래 3회 선거 때는 48.8%까지 낮아졌다가 지난 6회 선거에서는 56.8%로 증가했다. 한편, 19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77.2%, 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58.0%였다. 정치권은 지방선거 투표율이 대통령 선거나 총선보다 낮은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총선도 높은 편은 아니다).

언론은 중앙 정치(유력 정치인)를 주목하지만 시민들 곁에 더 가까이 있어야 하는 건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알아도 시의원·구의원은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역도 모를 진데 후보자들의 면면까지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선거 때마다 아쉬운 것은, '준비된 정치인'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많은데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당선'을 위한 활동만 보이지 당선 이후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후자가 더 중요한데 말이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정당 안에서 '시간이 걸려'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에서는 신인 정치인이 외부영입이나 전략공천(우선공천)을 통해 정치에 입문하는 방식은 찾기 어렵다. 스웨덴의 경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정당이 청년조직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질적인 정치인 충원의 통로가 된다고 한다. 청년조직에 속한 이들은 청소년기부터 일찌감치 각 정당마다 있는 정치학교에서 정치수업을 받는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면 정치제도는 물론, 경제, 사회복지, 환경, 국제문제에 이르기까지 전문가에 준하는 지식을 갖추게 된다. 정치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정당 안에서 교육 받는 것이다.

이런 청년들이 지방의회에서부터 시작해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되고, 총리도 된다. 그래서 유럽 각국 의회에서는 20대 의원, 30대 장관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준비된 정치인은 이처럼 정당 내에서 교육·훈련을 받고, 지역에서부터 정치인으로 성장한 사람을 말한다. 참고로, 스웨덴은 역대 선거에서 투표율이 8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갑자기 '정치'를 잘하게 되는 경우는 없다

 싹도 틔우지 않고 꽃이 피는 일은 없듯이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이 정치를 잘하리란 법도 없다.
 싹도 틔우지 않고 꽃이 피는 일은 없듯이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이 정치를 잘하리란 법도 없다.
ⓒ pexels

관련사진보기


우리의 '낮은 투표율'은 투표 독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 삶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방정부(선거)에 관심이 덜하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가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말이다. 정당이 지역 활동보다 '여론전'에 더 치중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역에서, 일터에서 '정당'을 만난 적이 없는 시민들에게 정치의 필요성을 말하며 지지해 달라는 건 어찌 보면 뻔뻔한 일이다.

투표 안 하는 시민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 활동 안 하는 정당이 문제다. 정당이 지역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역에서 꾸준히 정치 활동을 해 온 사람이 지역 정치인이 돼야 문제가 풀린다. 누가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지, 현역 국회의원(또는 지역위원장)과 가까운 지가 유일한 선택의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는 '작은 중앙정부'가 아니다. 정당들은 지방정부를 누가 더 잘 운영할 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대안이 있는 체제'라고 했을 때에 중앙정부에만 국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나의 정당이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를 오랜 기간 독식한다면 투표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리 다르지 않은 두 개의 정당이 적당히 의석을 배분하고 있다면 그 역시 신나는 선거는 아닐 것이다. 나의 투표로 지역정치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어야 '투표할 맛'이 나지 않겠나.

비록 현재의 정당들이 '기존 방식'으로 선거에 임하고 있더라도, 시민들의 선택은 보다 '자기 삶'에 친화적이길 기대해 본다. 아이 키우기 어렵고, 오르는 집값 때문에 어렵고, 직장 구하기 어렵고, 소득이 적어 어려운 처지라면, '그런 나'를 위해 일할 정당에 투표해야 한다. 재벌가의 횡포에 화가 나고, 대법원의 정치 거래에 우리의 삶이 뒤흔들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여성이라 장애인이라 소수자라 평범한 일상에 제약이 가해지는 사회를 바뀌고 싶고, 최저임금법 개악을 되돌리고 싶다면 '다른 가능성'에 투표해야 한다.

수영은 갑자기 잘하게 되는 경우는 없다. 꾸준히 성실하게 하다 보면 물살을 힘차게 가르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수영을 잘하는 비법은 기초부터 충실히 하는 거다. 정치의 비법도 같다.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