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공간을 계획하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일들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 기자말

철거가 끝나고 실상을 드러낸 나무기둥들은 대부분 저 상태로 과연 집을 지탱할 수나 있을까, 걱정되는 수준이었다.
 철거가 끝나고 실상을 드러낸 나무기둥들은 대부분 저 상태로 과연 집을 지탱할 수나 있을까, 걱정되는 수준이었다.
ⓒ 황우섭

관련사진보기


오래된 벽체와 지붕의 흙을 다 걷어내고 나니, 이 집의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른바 철거가 끝났다. 나는 좀 허무했다. 다 비우고 난 집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타이밍이 드디어 시작된 셈인데,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집의 못 하나, 돌 하나까지 모두 다 내 손 안에 넣고,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가고 싶었는데, 막상 다 들어내고 나니, 뭔가 무력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내 집이고, 다들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오케이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도 그랬다.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

어릴 때 부모님께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주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때 하시던 말씀이었는데, 그 말이 왜 이 철거 끝난 집 마당에서 떠올랐을까.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뭔가 시작이 되는데, 나는 아는 것도 없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런 나와는 달리 현장은 매우, 매우 활기차게 돌아갔다. 때는 바야흐로 목공사의 타이밍이었다. 보통 우리집 정도의 규모는 서너 명으로 한 팀을 이룬 목수분들이 와서 공사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집은 두 팀이 와서 일을 했다.

좁은 집에 일고여덟 명이 와서 일을 하시니, 현장에 가도 내가 서 있을 곳이 없었다. 서울시 지원 관련 심사를 받느라 애초에 잡았던 일정이 늦어진 것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목수님이 집에 공을 더 들이시겠다고 무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좁은 현장에서 나는 존재 자체가 민폐였다. 

아직 해가 중천인데 일을 끝내는 사람들
이 천막 안에서 만들어내는 소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변을 다닐 때마다 낯선 분들을 만날 때마다 한도 끝도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나를 만들었다.
 이 천막 안에서 만들어내는 소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변을 다닐 때마다 낯선 분들을 만날 때마다 한도 끝도 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나를 만들었다.
ⓒ 황우섭

관련사진보기


우리집 현장은 이른 아침 시작해서 오후 네다섯 시경에는 그날의 일을 마친다. 처음에는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왜 일을 그만두는 걸까 의아했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니 알 것도 같았다. 철거는 물론 목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의 소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급적 인근 주민들이 일하러 나가고 없는 동안 일을 해야 한다. 집에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적어도 일하러 나간 주민 분들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되면 현장은 정리가 끝나 있어야 한다. 

집 짓기의 최대 변수는 바로 민원이다. 우리집 공사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분들이 나오는 순간, 공사는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 집은 행운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나는 오며가며 낯선 분들을 만날 때마다 고개를 한껏 조아리며 인사를 했다. 저 분이 뉘신지는 모르오나, 그저 이 집을 둘러싼 모든 분들께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게다가 노동의 강도는 매우 세다. 오늘 하루 일하고 말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버'는 금물이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루에 적당량의 노동량을 유지하며 오늘도 내일도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내 눈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지라도 이분들의 하루는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난다.

우리집을 지어주시는 목수님은 나보다 더 이 집에 애정을 보이셨다.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보이는 곳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결의가 비장했다. 그 결의와 애정에 값을 더 치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든 제대로 지어보겠노라,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모습이셨다. 

목공사는 매우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고칠 건 고쳐 쓰고, 바꿀 건 바꾼다."

대표적인 건 두말할 것도 없이 나무기둥이다. 오래된 기둥들은 대부분 밑둥이 썩었다. 얼마나 썩었는지, 기둥이 넘어갈까봐 기둥마다 지지대를 다 설치해야 했다. 처음에 나는 당연히 그 기둥을 뽑아내고 다 새 것으로 바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옥수선의 기본 원칙은 쓸 수 있는 건 최대한 살려서 쓴다였다. 

"밑둥이 썩은 기둥을 어떻게 쓸 수 있어요?" 
"썩은 부분만 바꿔서 씁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말씀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거기에 토를 달 수도 없었다. 그게 한옥 수선의 원칙이라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집을 부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놀라운 기둥의 변신, 이건 아트다

밑둥이 썩은 기둥은 새 나무를 밑에 대고 저렇게 나무로 연결한다. 저렇게 붙여놓으면 한몸이 된단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밑둥이 썩은 기둥은 새 나무를 밑에 대고 저렇게 나무로 연결한다. 저렇게 붙여놓으면 한몸이 된단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 황우섭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기둥의 변신은 놀라웠다. 기둥의 변신은 '무죄'가 아니라 '서프라이즈'였다. 어떤 기둥은 뭉텅이로 잘라내고 밑둥을 통째로 바꾼다. 이것만으로도 공정의 과정은 '아트'다. 그런데 중간중간 부분적으로 썩은 건, 그 부분을 파내고 새 나무를 끼워 넣는다. 이것은 '더 아트'다.

대들보는 또 어떠한가. 기둥이 썩는데 대들보라고 멀쩡할 리 없었다. 썩은 건 고치고, 바꿔 쓴다. 서까래는 또 어떤가. 자세히 보니 너무 가냘펴서 그대로 쓸 수 없는 게 많았다. 목수는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버릴 건 버리고, 쓸 건 쓴다. 결정은 신속하고 칼처럼 예리하다.

나무를 덧대는 것도 예술이지만, 썩은 부분을 메꾸는 것은 더 예술이다.
 나무를 덧대는 것도 예술이지만, 썩은 부분을 메꾸는 것은 더 예술이다.
ⓒ 황우섭

관련사진보기


좁은 현장에 장정 일고여덟 명이 북적이며 일하는 현장은 그러나, 전혀 어수선하지 않았다. 나름의 질서와 흐름 안에서 작업은 착착 흘러간다. 나무는 한 번 잘못 자르면 다시 붙여 쓸 수 없다. 목수들은 평생 그 일을 해온 분들이다. 한 번 잘못 자르면 되돌릴 수 없는 일. 신중하지 않고서는 해나갈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눈과 손에 일이 익지 않으면 집의 근간이 흔들린다. 그래서 나무를 만지는 그들의 손끝은 야무지지만, 절대 경솔하지 않다. 그들의 손끝에서 썩어가던 나무기둥이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80여 년 넘게 이 집을 버텨주던 오래된 나무의 고색과, 막 켜서 덧댄 새 나무의 진한 향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기둥을 버텨주는 지지대의 정렬. 나무의 각 잡힌 모습이, 직선의 곧은 선이 아름답다.
 흔들리는 기둥을 버텨주는 지지대의 정렬. 나무의 각 잡힌 모습이, 직선의 곧은 선이 아름답다.
ⓒ 황우섭

관련사진보기


비 내리던 4월의 어느 날. 비 오는 날 찾은 현장은 비어 있었다. 비를 맞고 나무 공사를 할 수는 없다. 북적이던 소음 대신 촉촉한 봄비가 현장을 채웠다. 밑둥이 교체된 기둥, 천장에서 땅으로 내려와 쌓인 서까래, 막 수선을 끝내고 다시 천장에 자리 잡은 대들보를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봤다.

손이 닿는 곳마다 쓰다듬어주었다. 굳이 이 집에서 나와 더불어 잘 살아보자, 라는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나무와 나 사이에도 이심전심. 나는 이 나무가 이고, 지탱해주는 이 집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쓰다듬는 손길에 실어 나무에게 조용히 전했다.

봄비 내리던 날, 목공사가 모두 끝난 날. 나무들은 내 마음을 받아줬을까?

오래된 집의 현장 어디에서나 빠질 수 없는 시간의 흔적.
 오래된 집의 현장 어디에서나 빠질 수 없는 시간의 흔적.
ⓒ 황우섭

관련사진보기


수리를 마치고 다시 천장에 자리 잡은 들보의 자태. 부디 이 집과 더불어 너의 역할을 잘해다오.
 수리를 마치고 다시 천장에 자리 잡은 들보의 자태. 부디 이 집과 더불어 너의 역할을 잘해다오.
ⓒ 황우섭

관련사진보기


주초석 위에 단단하게 고정된 나무 기둥. 썩은 나무 대신 새로 들어선 저 기둥은 80여 년 동안 이 집을 지탱해온 기둥을 이고 서서, 앞으로 100년 동안 거뜬히 이 작은 집 한 채를 지탱해줄 것이다.
 주초석 위에 단단하게 고정된 나무 기둥. 썩은 나무 대신 새로 들어선 저 기둥은 80여 년 동안 이 집을 지탱해온 기둥을 이고 서서, 앞으로 100년 동안 거뜬히 이 작은 집 한 채를 지탱해줄 것이다.
ⓒ 황우섭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도시형한옥, #혜화1117, #작은집고치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