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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작가 정유정을 잘 모른다. 이름을 안 것도 영화 <7년의 밤>을 보면서다. 평소 공포 소설이나 추리물 류를 거들떠보지 않는 편식 탓이다. 영화 관람 후 사건 전후로 7년씩을 구성한 동명의 원작이 궁금하던 참에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눈에 띈다. 반가워서 냉큼 집어 든다.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대담 형식이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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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암시하듯,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정유정의 스토리텔링 노하우 소개다. 정유정은 지승호의 짤막한 질문에 대해 번번이 긴 서술형 답안을 내놓는다. 전체적으로는 '독창적 방식으로 말 되는 이야기를 쓴다'는 것인데 조목조목 다부지고 상세하다. 그 주장을 따라가며 나도 소설 쓰기가 가능한지를 슬며시 따져본다. 이야기가 필연적 결과를 내게끔 엮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초장에 나는 두 손 들고 물러선다.

인터뷰이 정유정의 첫인상은 나름의 규칙을 자기화하는 아날로그적 준비 과정이 탄탄한 작가라는 것이다. 아날로그적이라 함은 발품을 파는 몸 철학을 의미한다. 순간순간이 삶이고 인생임을 아는 자의 걸음새다. 필요한 관련 지식들을 얻기 위한 다독, 전문가 면담, 답사 및 실사, 초고 작성, 수정, 탈고 등 일련의 작업들을 7전8기식으로 다지며 모질게 자유 의지를 펼친다.

그러한 소설쓰기 작업은 영감(靈感) 덕이 아니다. 순전히 엉덩이가 무거워야 가능한 수도행이다. 작가는 "글쓰기도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두려움과 의심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지 못하면 펜을 놔야 한다"라고 말한다. 지쳐 쓰러지려는 자신에게 긍정적 생각을 먹이며 키운 내면의 근육으로 이야기의 변화를 이끈다는 실토다.

정유정은 소설가로 등단하기까지 6년간 '공모전 좀비'로 지냈음을 밝힌다. 그래도 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건 이야기를 향한 욕망 때문이다. 소설 쓰기는 정유정에게 살맛을 제공하는 '무엇'이다. 그 '무엇'은 "인간과 삶, 세계와 운명을 한계 없이 은유해내는 것, 그것이 문학이 품고 있는 원형적 힘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 이야기의 힘은 현실적 삶에서 놓친 의미들을 "밀물처럼 밀려드는 어떤 정서와 깨달음이 융합되는 현상"인 미학적 감동으로 일깨우며 위력을 발휘한다. 정유정이 광주의 역사적 시공에 살며 안간힘으로 읽은 이야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안겨준 눈뜸처럼. 그 위력의 체험적 가치가 이야기를 삶의 모험적 도구로 삼게 한다. 

그렇게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스토리텔링 작법을 넘어 생존방식을 엿보게 한다. 더군다나 정유정표 이야기의 근간은 도덕적이다.

"작가는 자기가 믿는 바를 써야 한다. 물론 그 믿음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닌지, 철저한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건강해야 한다. 정신은 물론 몸과 가치관, 세계와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 모두."

그러한 관점은 "나는 인간 본성의 어둠과 그에 저항하는 '자유의지'에 관심이 많다"에도 녹아 있다. 그것은 "우리 대부분이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종이라는", 그리고 "그 노력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일이 일어나도, 다시 또 줄기차게 노력하는 게 가장 큰 강점"이라는 인간관의 역설이다. 내게는 자기 삶에서 주인공이어야 소설쓰기도 가능하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어떤 존재든 같음과 다름이 혼재된 채 타자와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주인공이 지금껏 쌓아올린 갈등과 인과관계가 한 방에 폭발하는 부분이자 주인공의 내면적 투쟁이 끝나는 순간이고, 주인공이 최후의 행동을 보여주는" 절정의 장에서 맞닥뜨린 '이야기의 영혼', 즉 작가의 메시지는 독자의 정신적 윤활유가 될 수 있다.

지승호가 묻는다. 자기 소설의 캐릭터 중에서 누가 가장 빼어난 소설가가 될 것 같은가. 정유정은 '한유진'(<종의 기원>의 주인공)이라 답한다. "워낙에 거짓말 선수"이고 "상상력도 뛰어난 데다, 자기 자신마저 속여 넘길 수 있는 내공도 있"어서다. 거기에 감정조절 능력과 성공에 필요한 냉정한 구석, 그리고 악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악당의 자질을 보탠다.

그 잣대로 따지면 나는 소설가가 될 수 없다. 그래도 지금부터 내 장래 희망은 소설가다.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최소한의 조건은 갖췄으니까. 그러니 내가 등단할 때까지 정유정이 행복한 이야기꾼으로 장수하길 바란다. 내 이정표가 된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를 엮은 인터뷰어 지승호에게도 감사하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지승호 지음, 은행나무(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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