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청와대에 올라온 수십만 건의 국민 청원 중 가장 뜨겁고 지속적으로 제기된 쟁점은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었다. 청와대와 사회부총리, 법무부 장관이 네 차례나 답변했지만, 소년법 개정 및 폐지 여론은 여전히 거세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법무부 장관을 의장으로 하고 관계부처(10개 부처) 차관급이 위원으로 참여한 소년비행 예방협의회를 개최하여 제1차 소년비행 예방 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했다. 청소년 강력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실효성 있는 소년범죄예방 대책을 마련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보호처분의 내실화를 통해 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강화하는 정책이 소년범죄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책인 이유를 비행청소년 교육의 최일선에서 얻은 경험과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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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법원 소년부 법정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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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법원 소년부 법정에 들어선 진수(16, 가명)는 보호자석에 앉아있던 부모님을 보고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보통의 키에 군살 없는 다부진 체격을 가진 진수의 팔뚝에 굵은 힘줄이 불거져있다.

진수의 비행명은 특수절도다. 가출 기간 동안 생활비가 떨어지자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인형 뽑기방에 침입, 드라이버를 이용하여 지폐 교환기에서 현금을 수차례 절취하였다. 

소년부 판사는 진수의 비행사실을 하나씩 물어보며 확인해나갔고, 진수는 자신의 비행을 모두 인정했다. 판사는 진수의 부모님에게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진수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치고는 진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판사 앞에는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제출한 진수의 분류심사서가 놓여있었는데, 첫 장의 가정환경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소년은 ○○시에서 갓난아기 때 입양되어 양부모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함'

부모님은 사과와 복숭아를 재배하는 소규모 과수원을 운영하여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진수는 초등학교 때 레슬링을 시작했고, 소년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할 만큼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중3 여름방학 때 진수는 부상과 슬럼프로 인해 운동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자신의 입양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춘기의 진수는 충격으로 방황을 시작했고 레슬링을 스스로 포기한 후 무단결석을 하면서 비행친구들과 어울렸다. 

레슬링 청소년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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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바라 본 파란하늘. 운동장 크기만큼의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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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진수는 학업에 흥미를 잃고 1학년 1학기 때 학교를 자퇴했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집을 나간 진수는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폭주를 뛰었다. 돈이 떨어지면 배달대행업체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서 숙식비와 유흥비를 충당하거나 인형 뽑기방에서 현금을 절취했다.

결국, 진수는 소년부 재판을 앞두고 4주 동안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됐다. 소년부 법정에서 위탁 결정을 받은 순간부터 수갑과 포승줄 등의 보호장비를 사용하여 신체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4주 동안 하루 40분의 면회시간을 제외하고는 사회와 철저히 격리된다(음주운전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성인범죄자를 도주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하는 사례들과 비교해볼 때, 여론의 비판처럼 소년법이 매우 관대한 것은 아니다).
      
진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은 부모님은 원거리임에도 정기적으로 진수를 면회했다. 진수를 대신해 학교 복학 절차를 진행하면서 퇴원 이후 진수의 성행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훈육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진수와 상담한 담임교사와 분류심사관은 진수가 비행친구들과 어울리며 유흥가를 방황하던 시절에도 담배는 입에 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6살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고 운동을 그만둔 후 가정과 학교 밖을 떠돌면서도 레슬링 청소년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부 판사는 진수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범죄단절 의지를 보이는 점, 레슬링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재입학하여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진수의 의지와 부모의 강한 보호 의지를 고려하여 1,3,5호(보호자 위탁, 사회봉사명령, 장기보호관찰) 처분을 결정했다. 

보호처분은 사회 내 처우(1~5호 처분)와 시설 내 처우(6~10호 처분)로 나뉘는데, 사회 내 처우는 비행청소년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내 보호관찰관의 지도, 감독 및 지원을 받으며 범죄와 단절하여 건전한 청소년으로 거듭날 기회를 주는 처분이다.

이제 1회가 시작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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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소년원 위탁생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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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청소년의 보편적인 심리적 특성 중 '방어기제'라는 용어가 있다. '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나 행위를 뜻한다. 진수는 비슷한 환경의 비행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어기제를 통해 자신의 입양 사실과 운동 포기로 인한 좌절감과 감정적 상처를 어루만지고,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비행을 저질렀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 때문에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을 알고 소년법을 악용할 만큼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행하지는 않는다. 비행청소년들은 주변인으로서의 특성과 방어기제와 같은 환경적 요인에 따른 불안한 심리 상태로 인해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축구, 야구, 육상, 태권도, 레슬링, 유도, 배드민턴, 역도, 씨름... 비행청소년 교육 현장에서 운동했던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재기하기 힘든 큰 부상을 당하거나 선배들과 코치의 폭행, 경제적인 부담감 등으로 운동을 포기한 청소년들은 좌절감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거나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공교육은 이 아이들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진수는 1 대 1 개별상담으로 다가가야하는 청소년이다. 법무부는 비행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보호처분을 내실화하기 위해 청소년 교육에 관심이 많은 퇴직 교사와 전문상담사, 대학생에게 보호관찰 청소년들의 멘토 역할을 맡기는 '명예보호관찰관'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국민의 참여를 끌어내는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시행된 정책이다.

야구에서 선발투수가 가장 점수를 많이 내주는 이닝은 1회라고 한다. 마운드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풀리지 않았고, 야구장 환경과 상대 타자 등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이다. 포볼을 내주고 안타를 맞아 점수를 줘도 감독과 코치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준다. 동료 선수들은 투수의 뒤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힘을 실어준다.

어른들의 눈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떼로 몰려다니는 10대들이 노는 아이들, 불량학생으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있고 나름의 아픈 사연이 있으며 나름의 생각과 꿈이 있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좌절하고 방황하는 사연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제 1회가 시작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