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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는 길고양이였습니다. 동네 철물점에 매일 밥을 먹으러 오던 강호가 어느 하루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만에 찾아온 강호는 뒷다리가 심각하게 부러져 있었습니다. 앞발로 기어서 평소에 밥 주던 사람을 찾아온 거지요. 그 분의 도움 요청으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수술을 받고 강호는 두 발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이 되었고요. 장애를 얻었지만 늘 씩씩하고 명랑한, 무엇보다 호기심 많은 강호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기자 말

3월 29일, 떠나는 날입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제주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한 지역에서 한 달간 지낼 예정입니다.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겼는데도 짐이 상당하네요. 그 중 절반은 강호를 위한 밥과 간식, 모래 등등입니다. '강호, 네 짐은 네가 들면 안 되겠니?'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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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수속을 마쳤습니다. 동물과 함께 여행 시 티켓 예약할 때 그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항공기에 탑승 가능한 동물의 수가 정해져 있으니 해당 날짜에 동물과 반려인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발권 시 서약서를 작성하고 이동가방을 포함 동물의 무게를 측정, 1킬로그램 당 2천 원의 요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강호의 교통비는 총 1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의 짐을 실은 여행가방이 무려 28.5킬로그램!

결국 항공사의 무료 수화물 기준 15킬로그램보다 초과된 무게에 대해 킬로그램 당 역시 2천 원의 추가 요금이 발생, 총 2만 원을 더 냈습니다. 그나마 할인가.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럴 경우 일반 택배를 이용해 미리 짐 일부를 붙이면 체력도 경비도 상당 절감할 수 있습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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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을 앞두고 강호의 상태를 살피고 물을 먹인 뒤 녀석이 좋아하는 목덜미 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강호는 이미 두 번의 부산-제주 구간 비행 경험이 있는데, 차나 도보로 이동해 낯선 장소나 사람을 만나면 비교적 덤덤한 것과는 달리 기내에서는 훨씬 예민했습니다.

여기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점. 강호가 두 다리를 잃지 않았다면 이런 여행은 아마도 절대 하지 않았을 겁니다(3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짐가방을 들고 강호를 업고 공항에 가는 길부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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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반 여행을 결정한 것은 지난 2년간, 또 앞서 몇 번의 짧은 여행을 통해 강호가 여행으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긍정적인 자극을 더 많이 받을 거란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단, 현재까지는 국내에 한해서.

만약 '나도 동물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그리고 충분히 동물의 성향과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격 여행에 앞서 단계적으로 여러 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해야 합니다. 그러고도 매순간 아기를 돌보듯 동물을 살펴야 합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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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발 아래 보이는 제주의 바다와 땅에 감탄했습니다. 강호는 앞서 두 번보다는 안정적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착륙 소음에 예민했고 세 번쯤 이동가방을 뚫고 나오려는 듯 몸부림쳤습니다. 녀석 덕분에 40분 비행이 4분처럼 느껴졌네요!

"(엄마 들으라는 듯)고양이 키우면 소원이 없겠다."
"고양이 키우려면 평생 같이 살아야 해. 죽을 때도 옆에 꼭 있어주고."
"고양이 몇 년 살아요?"
"20년. 너 몇 살이야?"
"11살."
"그럼 너 지금부터 31살 될 때까지 살아야 하는 거야. 버리거나 하면 안 돼. 동물도 슬퍼하는 거 알지?"
"네." (생각이 깊어진 표정)

같은 비행기를 타고온 꼬마와의 대화였습니다.

제주공항 내부에 도착하자마자 이동가방을 열어 강호에게 물을 먹이고 충분히 몸을 펴고 휴식을 취하게 했습니다. 달라진 주변 풍경과 낯선 냄새에 강호가 반응을 보였습니다. 본인 역시 오던 길의 피로가 싹 가시고 본격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마음이 부풀었습니다. 

숙소로 가는 버스 안. 강호는 이제 차는 문제도 아니라는 듯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두리번거리며 코를 큼큼거리는 모습에 뿌듯해집니다. 드디어 한 달 살 집 도착. 구좌읍에 위치한 제주 전통의 낮은 돌담집에 한 방을 빌렸습니다. 사진보다 훨씬 근사하니 마음에 쏙 듭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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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하는 과정은 이랬습니다. 숙박 정보 공유 사이트인 '에어비앤비'와 최근에 유행하는 '제주 한달살기' 여행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사진으로 마음에 드는 집 몇 곳을 정한 뒤 집주인에 고양이와 동행 사실을 알리고 수용 가능한 월세를 제시해 수락한 곳 중 가장 좋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짐을 풀고서야 문득 깨달은 사실. 강호 변기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 임시방편으로 이동가방 안에 비닐을 깔고 챙겨온 모래를 채워주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오늘 아침까지도 몇 번을 점검했는데 와서 보니 '아차' 싶은 아쉬운 물건이 여럿입니다. 그 중 또 하나가 강호 몸줄. 아쉽지만 살면서 해결하도록 하고 이만 취침 준비.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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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의 실시간 여행이 궁금하다면? https://www.facebook.com/pg/travelforall.Myoungju, http://blog.daum.net/lifeis_ajourney



태그:#고양이와 여행, #장애 고양이, #뺑소니 , #한달살기 , #CAT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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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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