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문 난 잔치 먹을 게 없었다. "한 해가 궁금하면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보라"는 말도 이제 효력을 다한 것 같다. 인터넷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서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확인하는 일도 더는 흥미롭지 않다. 어제(16일) 있었던 의정부고 졸업앨범 사진 촬영 이야기다.

2014년부터 의정부고 졸업 앨범 사진 촬영 관련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 왔던 나로서는 이 같은 현상이 매우 안타깝다. 해당 학교와 경기도교육청의 최근 행태에는 유감이 깊다.

의정부고의 졸업 앨범 사진 촬영 퍼포먼스가 지금껏 세상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이랬다. 성인이 아닌 고등학생들의 감수성 넘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분장'이라는 형식으로 터뜨리는 재기발랄함의 조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유쾌함과 조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당시 의정부고 교감이 졸업앨범 사진 촬영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욕설을 하며 사진을 다시 찍게 하고 검열위원회를 만들어 학생들의 사진을 졸업앨범에 싣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관련기사: '실검 1위' 의정부고 졸업사진, 교감은 왜 버럭했나, 의정부고 졸업 사진 실검 안 뜬 이유)

학생들은 즉각 교감의 반교육적 행태를 폭로하는 '교감선생님께 드리는 의정부고 방송부의 메시지'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했다. 동영상은 누리꾼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고 교감과 학교 측의 행태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결국 당시 의정부고 교장이 직접 나서 학생들과 대화하고 "(학교 측이) 졸업 앨범에 손 안 대겠다. 학생자치회에 맡기겠다. 민주적으로 소통하는 학생회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약속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2015년 새 교장이 부임했고 그로부터 2년 만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전임 교장이 학생들에게 약속했던 사항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학교 측은 졸업 사진을 찍기 전에 주제와 프로필 사진 촬영 계획, 세부 내용 및 그림 등을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학생들의 휴대폰과 태블릿 PC 등을 강제 수거했고, SNS에 사진을 올리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언론의 취재도 원천 차단했다. 동문들까지 나서서 반대했으나 학교 측은 무시했다.

학교 측은 2017년에는 의정부시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단독 공개했고, 올해는 경기도교육청 페이스북과 유튜브로만 공개했다. 학생들의 자발적 공개와 적극적 소통 행위는 시도조차 할 수 없도록 막아놓고, 학교 측과 지자체, 교육청이 학생들의 초상권을 일방적으로 SNS에 유통한 것이다. 외부의 위험 요소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이 같은 행태는 학생들의 건강한 비판 의식과 자발적 민주시민 되기를 학교와 교육청이 막은 꼴이다. 학생들의 민주시민 의식이나 참여 의지를 학교와 교육청이 꺾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학교가 바라던 대로 큰 이슈나 논란 없이 무난하고 조용하게 촬영은 끝났다.

학교 바깥에서 벌어지는 논란과 말들이 학교에는 큰 부담이 되었을 수 있다. 학교 측이 밝힌 것처럼 학생들의 비판과 풍자가 담긴 모습을 보고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고 무서운 말들을 쏟아놓는 어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이 학생들의 자발적 욕구를 차단하고 사전 검열하여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경기도교육청은 사진 촬영 행사를 독점 공개하는 이익을 누리는 것으로 해당 학교가 학생들을 사전 검열하고 자발적 의지를 꺾는 등의 비민주적, 반인권적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 학교 측이 학생보호를 미명으로 저지른 사전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한 등의 인권침해에 경기도교육청도 동의, 가담한 꼴이 되었다. 그것이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는 교육감이 19세 학생들의 유쾌한 놀이인 사진 촬영 퍼포먼스를 위축시키는 데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것도 아이러니이다. 학생들의 적극적 의지와 행위를 사전 검열하고 SNS를 차단하는 것 등은 민주주의도 없고 자치도 인권도 없는 학교의 현 주소이자 경기교육의 적나라한 실상이기도 하다.

결국 의정부고 학생들의 졸업 앨범 사진 퍼포먼스는 '속 빈 강정'이 되어 간다. 의정부고 졸업 사진 퍼포먼스만의 남달랐던 촌철살인과 풍자, 해학은 이제 없다. 분장 기술은 '싱크로율 100%'일지 모르겠으나 그것 말고는 의미가 없어졌다. 그들을 흉내 내어 '분장쇼'가 되어버린 아류들만 무수히 생겨났다. 전국의 중고교 졸업 앨범 사진 촬영 풍경이 온갖 캐릭터들의 분장쇼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촛불혁명의 요구와 시대적 정신은 사라지고 양초가게만 무수히 늘어난 셈이다. 학교와 교육당국이 저지른 일이다.

졸업앨범 사진 촬영은 학생들의 축제이며 졸업앨범은 학생들의 권리이다. 졸업앨범 제일 앞에 교장, 교감의 집무 풍경과 교사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들어가는 걸 없애는 학교들도 생겨나고 있다. 학생이 중심이고 그들의 앨범이므로 교장이나 교감, 교사가 앞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성장한 의식이 뒷받침한 결과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와 성장의 물결을 거슬러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기발하고 창의적인 졸업앨범 사진 촬영 퍼포먼스를 학교와 교육 당국이 지켜주고 가꾸어주지는 못할망정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는 현실은 참담하다.

학생들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의지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급선무다. 외부 언론의 학교 내 촬영 등은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시간을 제한해 취재를 허용하고 이후에는 학교 밖으로 내보내면 될 테고, 성희롱이나 혐오 등을 주제로 삼은 학생이 있다면 자치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될 일이다. 학생들이 정치(인) 풍자를 사진 촬영의 소재로 삼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학교가 너무 크게 안고 있는 현실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학생도 학생이기 전에 '시민'이며, 학교는 민주시민 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학교와 교육 당국은 기억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과 교육은 끝나야 한다.



태그:#의정부고, #경기도교육청, #졸업사진, #졸업앨범, #페이스북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