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포스터

영화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포스터 ⓒ ParanoidKitchen


78분이라는 러닝 타임 속에서 관객은 서서히 목을 죄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본 영화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의 주인공 히토미(마츠바야시 우라라 분)가 서서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과정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고생의 내면이 점차 붕괴할수록 스크린 바깥 분위기도 차가워진다.

제22회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이 작품은 현대사회에서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해 겪는 한 인간의 피해를 그린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SNS 등 현대기술을 통한 소문의 빠른 확산으로 인한 피해자를 다룬다. 그러나 좀 더 확장해서 보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내면을 비춘다.

영상 유출에 소문에 의한 2차 가해... 원제가 '굶주린 사자'인 이유

히토미는 여고생이다. 예쁜 외모로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친구도 있다. 어느 날 히토미의 담임교사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된다. 불똥은 엉뚱한 데서 튄다. 담임교사의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된 것이다. 거기다 성관계 상대가 히토미라는 소문이 퍼진다. 영상 속 인물이 히토미를 닮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히토미는 친구들의 의심에 그저 웃음으로 넘긴다. 그런데 상황은 심각해진다. 동영상은 빠르게 주변으로 확산된다. 친구들은 점점 소문은 믿는다. 히토미의 남자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곁에 없다. 여동생도, 엄마도 오히려 히토미를 의심한다. 그렇게 소문은 사실이 된다.

각종 기술을 통해 소문은 빠르게 퍼진다.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가 퍼트렸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대로 검증은 거치려고 하지 않는다. 대다수가 동의하면 소문은 사실이 된다.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는 다수의 무신경한 행동에 의해서 피해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준다. 결국 히토미의 평범한 주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된다. 히토미를 도와줘야 할 어른들은 제 역할을 못 한다. 교사들은 히토미에게 학교를 쉬라고 권유한다. 엄마는 히토미가 소문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영화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스틸컷

영화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스틸컷 ⓒ ParanoidKitchen


영화에서는 수시로 장소가 바뀌면서 컷과 컷 사이가 매끄럽지 않다. 이는 관객이 뒤로 갈수록 공포를 느끼게 한다. 히토미의 상황이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는 만큼 다음 컷이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히토미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장면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극 중에서는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얼굴을 드러내면서까지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는 언론, 피해자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만히 앉아' 추측성 발언으로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평론가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다. 모든 가해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는 세상에서 잊혀진다.

연출을 맡은 오가타 타카오미 감독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일본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그는 "지난 몇 년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대중의 반응과 보도 본연의 자세에 의문을 가진 것을 계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굶주린 사자>다.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가 1905년 발표한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에서 따왔다. 정글에서 사자가 영양 한 마리를 물고 있는 그림이다. 주변에는 떡고물을 노리는 표범,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올빼미가 있다. 오가타 감독은 "익명성이 유지되는 정글의 광경이 현대사회의 일본과 닮았다"고 말했다. 사건을 두고 이래저래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의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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