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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의 고장 안동에서 열리는 전위예술제

2018안동행위미술제 포스터 ‘사랑’, ‘하트’, ‘아름다움’ 같은 반질반질 때 묻은 단어가 기대 되겠냐만 저돌적인 실험과 실천을 일삼는 육감도의 기획과 ‘행위’ 라는 동사적 수식의 단어가 당의정에 쌓인 금단의 과실을 준비했다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 2018안동행위미술제 포스터 ‘사랑’, ‘하트’, ‘아름다움’ 같은 반질반질 때 묻은 단어가 기대 되겠냐만 저돌적인 실험과 실천을 일삼는 육감도의 기획과 ‘행위’ 라는 동사적 수식의 단어가 당의정에 쌓인 금단의 과실을 준비했다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 오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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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안동행위미술제는 '너울거리는 몸·살' 이라는 주제로 시행된 2014년에 이어 두 번째다.

육감도 산채가 있는 안동과 너울거리는 몸·살을 들인 안동문화예술회관과 첫 번째 시도라는 기정사실 때문에 적잖이 긴장을 했었지만 행사는 평화롭게 잘 끝났고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안동에서 열리는 행위미술제라고 수선 떨 필요는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핑크빛 포스터와 '사랑♥아름답게'란 주제는 이번에도 작은 설렘과 과한 기대를 저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서쪽 나라 끝 강화에서 멀리서 왔다고 하면 안 되갔지만 내륙의 중심 안동까지 가벼운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온통 초록에 갇힌 산천과 맑고 푸른 하늘까지 분명 좋은 택일이다.

'사랑', '하트', '아름다움' 같은 반질반질 때 묻은 단어가 기대 되겠냐만 저돌적인 실험과 실천을 일삼는 육감도의 기획과 '행위'라는 동사적 수식의 단어가 당의정에 쌓인 금단의 과실을 준비했다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연은 진중하고, 학술적이고, 계몽적이기까지 했다. '사랑♥아름답게'라는 주제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탐미적 유희를 재현한 것 보다는 대체로 사랑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연구 수업과 지침까지 내려 주시는 듯 했는데 간간이 실험 소품을 쓰며 3D 입체 수업을 해 주셨다는 느낌. 일단 1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았다는 뜻이다.

이는 기성의 파괴와 직설만 돋보인 유별난 행위가 퍼포먼스라는 선입견으로 본다면 충격일 수 있다. 이유는 질풍노도와 순간적 직감으로 행동하는 작가에게는 주제를 알고 작업에 임한다는 것이 낯설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다.

물론 퍼포먼스는 개념미술의 하나라고도 하고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일 수도 있는데 한 가지 특정을 들어 퍼포먼스의 정의를 논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개 퍼포먼스의 문을 열기 어려워하는 대중들에게는 지나친 전위에 닫히거나 정제되지 않은 무한 자유에 함몰 되거나 현학에 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종종 행사장에도 불리는 것을 보면 짧은 역사와 생경한 명칭에 반해 대중화 되고 익숙해진 것은 틀림없어 보이고 이와 함께 장르의 일반화와 이해를 반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역작이 트레이드마크화 되고 히트작은 재생산 되어 공연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순기능도 만만찮다.

퍼포먼스가 복제나 재생산이 불가능한 1회성 실연으로 끝나는 운명이라면 숙명과 동시에 영광이다. 이내 곧 아쌀함이다. 그러나 빛나는 자존감은 산처럼 무겁다. 퍼포먼스 행위를 반드시 공연이 아닌 '실연'으로 불리는 이유가 이것이다. 다만 주어진 주제를 풀어가거나 부제가 있는 화두를 들고 탐하는 것은 예외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친절한 주제 '사랑♥아름답게'에 의한 변주 1장 6막을 살핀다. 그 사랑에 관한 한 연구는 갈망의 양이 많고 그것 때문에 따르는 외로움, 이를 타개할 연구와 몸부림 등을 전개해 가며 연극적 요소도 있고 직감만이 아닌 집중해 들어야 할 언어도 많은데 나의 이명과 전시장 음향의 공명 때문에 잘 듣지 못해 이해 못한 작품도 있었다. 이를 이유로 삼아 작품 개별적 감상을 옳게 적기 어렵고 주관이 포함된 소견임을 토로하며 때로는 그릇 행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정규 [관계(relation system)]<터무니 있는 퍼포먼스는 매직을 경계한다>

#문정규 [관계(relation system)] <터무니 있는 퍼포먼스는 매직을 경계한다> 
매직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 퍼포먼스다. 있는 날것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과 끝도 볼 수 있는 것은 퍼포먼스의 가장 큰 매직일 수 있을 것이다.
▲ #문정규 [관계(relation system)] <터무니 있는 퍼포먼스는 매직을 경계한다> 매직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 퍼포먼스다. 있는 날것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과 끝도 볼 수 있는 것은 퍼포먼스의 가장 큰 매직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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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사회자가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이 목소리가 먼저 등장했는데 그 소리가 하도 크고 뚜렷해서 복잡한 기대와 나른한 자세의 감상자에게는 흡사 죽비의 일격과도 같았다. 

관계(relation system)라는 작품으로 "내가 행복해야 공동체가 행복해 진다" 그리고 자유와 구속, 사랑과 무관심, 행복과 불행, 태어남과 죽음 등을 내포한 작품이라고 설명한 작가는 이 모든 것을 한방에 해결할 묘수보다 문제를 짚어 풀어가는 과정을 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여러 유형의 군상을 개별적으로 잘 묶어 두고 종이 소품을 오려 놀라운 조형과 언어를 만들어 보이며 매직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직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 퍼포먼스다. 있는 날것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과 끝도 볼 수 있는 것은 퍼포먼스의 가장 큰 매직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랑, 자유, 행복을 제조해 보인 것이었다.

작가는 평면 회화 작업의 양과 성과도 많고 그 성실성과 선한 의지는 파격을 가하는 행위에서도 오롯하다. 역시 사랑은, 더구나 아름다운 사랑은 거저 오거나 쉽게 오지 않는 모양이다. 퍼포먼스의 연출보다 더 긴 길을 걸어 온 작가의 적공은 행위 밖에서도 깊다.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고독한 양치기는 작품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말씀하지 않았다.

#이혁발 [욕망-접촉감각]<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도구는 인간의 육감을 가르친다>

#이혁발 [욕망-접촉감각]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도구는 인간의 육감을 가르친다>이글거리는 욕망으로 점철된 도색 영상 속에서 읽힌 이혁발 작가의 선언은 “사랑은 번식 욕망의 발로이다”였다. 쾌락천국, 색토피아를 꿈꾸던 육감도 두령에게 이런 문화인류학적 접근이라니!
▲ #이혁발 [욕망-접촉감각]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도구는 인간의 육감을 가르친다>이글거리는 욕망으로 점철된 도색 영상 속에서 읽힌 이혁발 작가의 선언은 “사랑은 번식 욕망의 발로이다”였다. 쾌락천국, 색토피아를 꿈꾸던 육감도 두령에게 이런 문화인류학적 접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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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지치지 않는 그다운 타이틀을 들고 나왔다. 낯선 귀향 이후 원활하게 수급되지 못할 꺼리와 배설을 못해 육감도의 결기가 스러지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도색 화두를 놓지 않는 건장한 몸과 이번 행사도 반갑다.

다만 다소 무거워져 가는 나이와 웃음소리의 탄력이 떨어진 것은 탓할 수 없다. 그저 자연의 일, 하고 만다.

이혁발 작가가 선언한 "사랑은 접촉이고 접촉은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 문장이 평범하지 않게 하는 것은 접촉은 '인간답게' 와 '필수적인' 것에 방점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간의 작업이 육감도 실현을 위한 설교와 전도를 몸을 써서 역설하였다면 이번엔 좀 더 구체적 육감을 위한 도구적 접근이다. 자신이 발굴한 한없이 부드럽거나 무방비로 변형되는 물체(발굴 설정이 읽혀져서 웃음이 난다)를 육감으로 관계한 후 관람자들에게도 돌리며 자신과 똑같이 경험해 주기를 바란다. 또 주변에서 흔히 보는 오이, 호박, 양배추, 망양파에 이쑤시개를 꽂는 작업을 관객에게 권했는데 내밀하고도 짜르르한 촉수의 쾌감과 느낌이 육감을 일깨운다.

일련의 작업들을 종료하며 결국 그가 구호로 제창하고자 한 것은 "사랑은 무엇이냐?"였다.
여러 선언이 섞여진 정의는 들을 수 없었고 이글거리는 욕망으로 점철된 도색 영상 속에서 읽힌 이혁발 작가의 선언은 "사랑은 번식 욕망의 발로이다"였다. 쾌락천국, 색토피아를 꿈꾸던 육감도 두령에게 이런 문화인류학적 접근이라니!

#조은성 [뽕]<마약 보다 부도덕한 뽕을 뽑자>

#조은성 [뽕] <마약 보다 부도덕한 뽕을 뽑자>과연 어떤 여자들을 보고 사랑스런 여자라고 생각하나 해서 인터넷을 통해 검색된 사례를 자신의 재구성을 통해 살펴보자는 것이다. 객석의 불려나온 실험남, 부끄러워 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표정은 감추질 못한다.
▲ #조은성 [뽕] <마약 보다 부도덕한 뽕을 뽑자>과연 어떤 여자들을 보고 사랑스런 여자라고 생각하나 해서 인터넷을 통해 검색된 사례를 자신의 재구성을 통해 살펴보자는 것이다. 객석의 불려나온 실험남, 부끄러워 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표정은 감추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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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대는 뽕 하면 뽕2가 생각나지만 이 뽕은 낡은 개그 같은 뽕과는 관련이 없는 뽕이다.

원래의 몸보다 몸매를 돋보이기 위해 과하게 부풀려 포장하는 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쳐 있는 뽕을 모두 털어 내는 작업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사랑스런 여자에 관한 얘기라고 했다. 과연 어떤 여자들을 보고 사랑스런 여자라고 생각하나 해서 인터넷을 통해 검색된 사례를 자신의 재구성을 통해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건 대단한 고급 정보이며 잘만 숙지한다면 숫제 복음이다. 이런 소재와 실연은 조은성 같은 여자 퍼포머가 아니면 실연하기 어렵고 설령 육감도 도장이 여장 실연한다 한들 처절 또는 처연할 것임이 불을 보듯 하다. 출연된 남자 관객들이나 객석의 남자들은 사랑스런 여자를 모둠으로 만나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남자들, 이 설정이 낯설다는 뜻인가. 여자 사람들이 널리 좋아하는 이 낱낱의 풍경은 인터넷 조사를 통한 객관적 통계라고 했다.

#HanQ [Andong Boogie Woogie-Gold]<보자기 속에서 세상 엿보기>

#HanQ [Andong Boogie Woogie-Gold] <보자기 속에서 세상 엿보기>작가가 중점 제시한 ‘보자기를 씌운 행위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살폈다. 정물처럼 모여진 소품의 몸짓 변화는 보자기 밖의 세상이 궁금할 뿐 낭독 내용에 따른 정밀 변화를 나는 감지하지 못하였는데 작가가 약조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떤 상태인들 그것이 내용이므로 작가의 죄는 면한다.
▲ #HanQ [Andong Boogie Woogie-Gold] <보자기 속에서 세상 엿보기>작가가 중점 제시한 ‘보자기를 씌운 행위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살폈다. 정물처럼 모여진 소품의 몸짓 변화는 보자기 밖의 세상이 궁금할 뿐 낭독 내용에 따른 정밀 변화를 나는 감지하지 못하였는데 작가가 약조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떤 상태인들 그것이 내용이므로 작가의 죄는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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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Andong Boogie Woogie-Gold>다. 이미 도록에 공개된 제목은 '키스'였고 그 키스 행위 사실을 이태원의 한 갤러리에서 한 적이 있다고 널리 발표하였다. 수정된 제목도 '보자기와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서 출연된 행위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살피는 작업' 과도 나에겐 딱히 유추가 어려운 연관이었지만 평론을 많이 한 윤집섭 작가의 퍼포먼스는 또 다른 궁금증과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롤프 데겐의 책 『오르가슴』(12초의 희열이 세계를 바꾼다)을 작가가 무작위 발취하여 낭독한 단어의 편린 일부를 주워 보면 '오르가즘', '남여가 평생 원하는 이성의 숫자', '통계', '치료사' 등이었고, 마지막에 일독을 권하면서 끝냈다는 정도를 기억한다.

작가가 중점 제시한 '보자기를 씌운 행위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살폈다. 정물처럼 모여진 소품의 몸짓 변화는 보자기 밖의 세상이 궁금할 뿐 낭독 내용에 따른 정밀 변화를 나는 감지하지 못하였는데 작가가 약조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떤 상태인들 그것이 내용이므로 작가의 죄는 면한다.

#신진식 [외로워Ⅱ (Alone Again)]<시작으로 돌아온 외로움의 복원력>

#신진식 [외로워Ⅱ (Alone Again)] <시작으로 돌아온 외로움의 복원력>필연 생겨나는 반목과 외로움을 정물로 두지 않고 반드시 변화 시키거나 변고로 인한 여정, 그 과정에 일어나는 개입과 역할, 재편성과 육성을 거쳐 끝은 주된 흰 모델과 배경 모델이 처음처럼 시작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래의 그가 온 것일까?
▲ #신진식 [외로워Ⅱ (Alone Again)] <시작으로 돌아온 외로움의 복원력>필연 생겨나는 반목과 외로움을 정물로 두지 않고 반드시 변화 시키거나 변고로 인한 여정, 그 과정에 일어나는 개입과 역할, 재편성과 육성을 거쳐 끝은 주된 흰 모델과 배경 모델이 처음처럼 시작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래의 그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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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기는 하지만 무세중 전위극을 본 후 무언극이 처음은 아닌데도 당최 이번 상황 극(?)은 감상하기 어렵다. 막 사이 등장하는 일갈이나 선언을 들었으면 한결 도움이 됐을 것 같긴 한데 그마저 정식 공연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실내 공명 현상 때문에 언어의 해상도는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무언극은 애초에 언어가 없음을 말한다.

이 작품은 여느 퍼포먼스와는 달리 쓰고 연출하는 일종의 '상황 건축'이라고 신진식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랑은 시작도 외롭고 사랑하는 중에도 외롭고 끝도 외롭고 "삶이 외로운 것처럼" 외롭다고 했다. 작가의 제목 풀이에서 키워드를 얻을 수 있었다. 외롭다…확실히 '외롭다'는 내 몸에도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전이가 빨라 금세 극화에 몰입을 돕는다.

필연 생겨나는 반목과 외로움을 정물로 두지 않고 반드시 변화 시키거나 변고로 인한 여정, 그 과정에 일어나는 개입과 역할, 재편성과 육성을 거쳐 끝은 주된 흰 모델과 배경 모델이 처음처럼 시작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래의 그가 온 것일까?

#유지환 [균형(balance)]<흰 갑옷의 도시형 부조리 버스터>

 #유지환 [균형(balance)] <흰 갑옷의 도시형 부조리 버스터>초대한 관객은 가뿐히 완샷을 즐기지만 작가는 이목구비가 없는데 하필 켜진 촛불이 담긴 칵테일을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가슴을 타고 내린다. 결국 거울을 통해 자신의 상황과 불균형을 인식한 현실을 깨뜨린다. 깨진 현장에서 찾아낸 현실과 어렵게 붙인 촛불을 다시 들고 관객으로 걸어간다.
▲ #유지환 [균형(balance)] <흰 갑옷의 도시형 부조리 버스터>초대한 관객은 가뿐히 완샷을 즐기지만 작가는 이목구비가 없는데 하필 켜진 촛불이 담긴 칵테일을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가슴을 타고 내린다. 결국 거울을 통해 자신의 상황과 불균형을 인식한 현실을 깨뜨린다. 깨진 현장에서 찾아낸 현실과 어렵게 붙인 촛불을 다시 들고 관객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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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위 작가 구성 중 비교적 젊은 작가가 유지환이다. 그는 탄성이 좋은 패기와 탄탄한 구성으로 퍼포먼스 작업을 해서 그의 일상도 퍼포먼스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그의 사랑 풀이 시간을 엿보기로 한다. 그런데 작가의 사랑론은 안전하고 고전적이다. 들어 보자.

사랑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의 균형, 불균형을 관객과 이야기 하듯이 풀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사랑엔 정답이 없듯이 자신의 작업도 어떤 느낌의 표현이 될지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고 사랑은 "균형이 잡혀야 하는 것"을 특히 강조 하였다.

대체로 퍼포머는 객석의 관객을 불러 동참하기를 즐겨한다. 작가는 붉은 테이블보를 깔고 와인을 정성스럽게 따른 다음 관객을 불러 나눠 마신다. 아니 나눠 마신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초대한 관객은 가뿐히 완샷을 즐기지만 작가는 예의 흰 슈트형 갑옷과 헬멧을 쓰고 이목구비가 없는데 하필 켜진 촛불이 담긴 칵테일을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가슴을 타고 내린다. 다음 그 다음 관객과도 역시 상황은 애달프다.

결국 거울을 통해 자신의 상황과 불균형을 인식한 현실을 깨뜨린다. 깨진 현장에서 찾아낸 현실과 어렵게 붙인 촛불을 다시 들고 관객으로 걸어간다.

이것이 내가 본 풍경 일부이고 행위 속의 고갱이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8안동행위미술제>에 관람평으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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