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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광주에서 4세 아이가 35℃가 넘는 폭염 속에서 유치원 통학버스에 8시간 정도 방치됐다가 의식불명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그 당시 첫째 딸이 4살이었고, 어린이집 차량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남의 일이 아니었다.

딸에게 혹시나 차에 혼자 남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냐고 물으니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면 된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에게 수시로 생존전략을 알려주었다.

"아니야. 차에서 네가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밖에는 안 들려. 엄마 봐봐. 이걸 누르면 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멀리까지 잘 들리거든. 차에 아무도 없으면 당황하지 말고 빵빵! 여길 눌러야 해."

아이는 클랙슨 소리를 재밌어하며 따라 해보려 했지만 힘과 요령이 없는 4살에게는 누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조차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4살 아이에게 클랙슨 울리기 연습시킨 이유

혼자 남았을 때는 벨트를 풀고 운전석으로 이동하여 어른이 올 때까지 클랙슨을 울릴 것
 혼자 남았을 때는 벨트를 풀고 운전석으로 이동하여 어른이 올 때까지 클랙슨을 울릴 것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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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껏 눌러봐! 더 세게! 안 돼? 손으로 힘들면 두 발을 올려서 눌러봐~ 옳지~ 잘했어!"

손힘이 약해서 아무리 쳐도 소리가 잘 나지 않아 등짝을 의자에 기대고 두 발로 누르게 했더니 성공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또 연습을 시켰다. 누르면 된다고 아는 것과 직접 눌러보는 것은 천지차이라 익숙해질 때까지 주기적으로 시켰다. 아이들은 순진해서 한번 누르고 기다릴 수 있기 때문에 '어른이 올 때까지'라고 단서를 꼭 달아줬다.

아이가 벨트를 혼자 풀 수 있게 되면 주행 중에 풀어서 위험할 수 있기에 벨트는 절대로 스스로 풀면 안 되는 거라고, 어른들이 풀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벨트를 스스로 풀 수 있도록 지도했다.

'혼자 남았을 때는 벨트를 풀고 운전석으로 이동하여 어른이 올 때까지 클랙슨을 울릴 것.'

귀에 박히도록 알려주고 또 알려줬다. 첫째가 충분히 능숙해진 이후로 연습 횟수가 줄었고, 점점 시간이 지나 차량 사고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지난달 17일 경기도 동두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4살 어린이가 통학 차량에 7시간가량 방치되어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차량에 10분만 앉아있어도 참기 어려운 무더위에 7시간이라니. 왜 또 이런 일이.

둘째가 올해 4살이다. 2년 전 첫째에게 물었던 질문을 또 다시 둘째에게 반복했다. 둘째도 첫째와 같은 답을 했다. 소리를 지르면 된다고. 누군가 나타나길 바라며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어 곧바로 자동차로 데리고 가서 생존훈련을 시켰다. 역시나 손힘으로 안 되어 발로, 엉덩이로 클랙슨 울리기를 성공했다. 이 중요한 연습을 잊고 살았구나.

승용차와 어린이집 차량의 느낌이 달라 실제로 어린이집 차량에 혼자 남게 되면 당황할듯하여 어린이집 원장님께 전체 원아를 대상으로 클랙슨 울리기 연습을 안전교육으로 부탁드렸다. 알겠다는 답변을 받고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왜 나는 고작 4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차량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건가. 내가 사는 사회는 힘없고 어린 아이들마저도 온몸을 써가며 생존법을 배워야만 하는 사회라니. 분노와 함께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핵심은 '차'가 아닌 '보육교사'다

7월 27일 오전 서울 성동구청에서 운전기사가 어린이집 차량에 '슬리핑차일드체크(갇힘 예방)' 시스템을 부착하고 있다.
 7월 27일 오전 서울 성동구청에서 운전기사가 어린이집 차량에 '슬리핑차일드체크(갇힘 예방)' 시스템을 부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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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어린이집 인솔교사·운전기사가 구속되었다는 소식. 정부가 어린이집 차량 사고를 막기 위해 전국 2만8000여 대 어린이집 차량에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Sleeping Child  Check·슬리핑차일드 체크)를 올해 안에 도입하고, 법 개정을 통해 의무화할 방침이라는 소식이 들려와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해당 사건 관련자 몇 명에게 책임을 묻고, 값비싼 장비를 설치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격한 법과 제도나 첨단 시스템이 아닌 진심이 담긴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존재다.

진정성 있는 양질의 돌봄시스템은 보육교사들의 돌봄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열악한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계속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원에서 담임교사들이 차량 등하원 인솔교사를 번갈아 맡는다. 아이가 한 두 명도 아니고, 해당 반 아이들에게만 집중하기도 부족한 에너지를 차량 탑승 아이들에게까지 쏟아야 한다. 누가 어디서 타고 내리는지, 누가 결석인지 내 반 아이들만이 아니라 차량에 타는 아이들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하니 아침, 저녁으로 혼이 쏙 빠지는 전쟁을 치른다.

부모들이야 내 아이 하나 보내는 거지만 보육교사는 챙겨야 할 아이들이 넘친다. 현행 규정상 보육교사 1인당 영·유아 수는 만 0세반 3명, 만 1세반 5명, 만 2세반 6명, 만 3세반 15명, 만 4∼5세반 20명으로,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원아수가 일정 기준 이상인 기관에서는 통학차량 운행만 돕는 인솔 전문교사 배치가 절실하다. 담임교사는 해당 반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통학 차량 인솔교사는 해당 차량의 아이들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보육교사와 차량 인솔교사를 구분하여 따로 채용하고 각자의 분야에 책임감을 갖도록 법제화하면 좋겠다. 차량 인솔교사는 운전기사처럼 시간제로 고용하면 유연근무를 희망하는 인력의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인솔교사가 아이를 깜박하다니, 담임은 뭐 한거냐고 비난하지만 사실 그 담임교사도 정신없는 상태로 오전 돌봄을 시작했을지 모른다. 보육교사는 박봉에 노가다라는 말이 있다. 차량 지도 하랴, 해당 반에 가서 아이들 챙기랴, 짜여진 프로그램 진행하랴, 부모들 응대하랴, 원의 행정업무 처리하랴, 애들 밥먹이랴, 치우랴, 쉴 시간도 없이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다.

교사가 오롯이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양질의 돌봄이 이루어지려면 교사에게 심적,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돌볼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 없이 모든 책임을 보육교사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린다면 제2, 제3의 또 다른 사건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육교사 양성과정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함께 보육교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직무 스트레스, 낮은 임금 등 보육 환경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안전한 돌봄은 전문적이고 행복한 보육교사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어린이집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첨단 장비 설치나 관련자 처벌에만 머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작 4살밖에 안 된 아이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 너무 비참하고 슬프지 않나.


태그:#동두천 차량사고, #슬리핑차일드체크, #보육교사 처우 개선, #어린이집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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