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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모 이장이 미소를 지으며 밭일을 하고 있다.
 박충모 이장이 미소를 지으며 밭일을 하고 있다.
ⓒ <무한정보> 홍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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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지역에 3대가 이장을 보고 있는 마을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 주인공은 예산읍 간양4리 그리고 박충모(59) 이장이다.

간양4리는 35가구 86명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마을. 그의 아버지 고 박인호씨, 할아버지 고 박연수씨는 간양리가 분구되기 전 이장을 맡았고, 지금은 지난해 선출된 박 이장이 3대째 봉사하고 있다.

그가 이장을 하기로 결심한 건 마을주민들의 추천 때문이었다. 박 이장은 "나두 내년이면 환갑인디, 우리 마을에 나보다 어린 사람이 4명뿐이라니께. 으르신들이 내가 어리니 잘할 거라 생각한 거 아니것어"라며 소탈한 웃음을 보인다.

간양리에서 태어난 그는 예산동중학교, 예산고를 졸업했다. 또 예산농전을 다니다 공주대학교 산업대학교 식물자원학과로 편입해 젊은 시절을 지역과 함께했다. 그러다 직장생활을 위해 타지로 나가 버스회사 중견간부로 일했다.

박 이장이 다시 고향 예산으로 돌아온 건 10여년 전인 50세, 은퇴를 하고난 직후다.

"고향이 역시 좋지, 맴도 편하구. 온양에 집은 있었어도 주말이면 항상 고향에 왔었으니께 주민들도 다 알구 그려"

몸은 타지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예산과 함께했다는 박 이장은 간양4리와 같은 시골지역의 현실도 전했다. 그는 "일단 애가 읎어. 환경은 예전이랑 비교도 안되게 좋아졌는디, 사람이 읎어. 거의 대부분 1인 가구고 어르신들여. 예전엔 복닥복닥 모여 살며 시끌벅적했는디, 지금은 마을이 조용혀…." 그 시절 간양리를 회상하는 박 이장의 눈가에 아쉬움이 그득하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를 거쳐 자신까지. '그동안 참 고생하셨다'는 말에 그는 "뭐 내가 고생인가, 그냥 서로 돕고 사는 거지"한다. 그러면서 "이장은 발로 뛰어야 혀. 봉사하는 건데 내 일처럼 생각하고 해야지"라며 "주민화합이 잘 되는 마을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라는 소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바람을 나타낸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뭇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았던 날은 지났어도, 박 이장의 소망대로 간양4리가 그 옛날의 끈끈함을 간직한 마을로 오래도록 남기를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3대 이장, #이장, #시골, #마을,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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