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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은 가장 특별한 여행지였다. 하얀 빙원, 눈 폭풍 블리자드, 혹독한 환경에 살아가는 펭귄들,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남극에서 살아보기' 수첩 한켠에 적어 놓은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다. 2015~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남극탐사, 극지의 일상으로 초대한다. - 기자 말
펭귄 중에서 가장 크며 남극권에서만 서식한다. 부동자세로 주위를 경계한다
▲ 황제펭귄 펭귄 중에서 가장 크며 남극권에서만 서식한다. 부동자세로 주위를 경계한다
ⓒ 김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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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지속되는 여름, 남극의 바람을 맞고 싶다. 사진과 영상을 뒤적이며 기억을 떠올린다. 영하 50도의 내륙 설원에서 추위의 끝을 경험했다. 반대 계절인 8월의 남극은 밤만 계속되는 극야의 겨울이다. 남극 생물들에겐 생과 사의 시간이다. 펭귄들은 알을 품고 어둠의 시간을 견딘다. 해빙기가 시작되는 1월, 새 생명이 탄생하는 여름을 맞이 한다. 계절의 끝자락에 보았던 털보숭이 아기펭귄들은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남극의 친구들, 잘 지내고 있니?'
젠투펭귄과에 속하며 먹이가 풍부한 남극연안에 주로 서식한다
▲ 해안가를 거닐고 있는 젠투펭귄들 젠투펭귄과에 속하며 먹이가 풍부한 남극연안에 주로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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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마스코트, 황제펭귄

남극에는 총 16종의 펭귄이 서식하고 있다. 가장 사납고 작은 몸집의 젠투펭귄, 해안가에 집단 서식하는 아델리펭귄, 키가 120cm에 몸무게가 40kg이 되는 황제펭귄은 남극의 상징이다.

겨울 동안 알 한 개를 낳고 수컷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품는다. 부성애가 대단하다. 암컷은 바다에서 크릴, 오징어, 물고기 등을 배에 가득 저장한다. 둥지에서 새끼를 품고 교대하며 사냥을 떠난다. 수심 400미터까지 내려가 먹이를 찾는다.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지만 가장 깊이 잠수를 한다.

'뒤뚱 뒤뚱'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걷는다. 눈 위에 배를 미끄러지듯 밀며 이동한다. 유선형의 몸은 물속에서 저항이 적어 수영을 잘한다. 조류의 특성은 퇴화되었지만 생존을 위해 진화되었다. 차가운 물을 견딜 수 있게 지방이 많고 깃털은 방수로 되었다. 천연 잠수복을 입은 것처럼 물속에서 오래 생활할 수 있다.

펭귄은 남극에만 있지 않다. 더운 아프리카에도 서식을 한다. 케이프타운 볼더스 비치(Boulders Beach)의 자카스펭귄, 호주, 뉴질랜드의 가장 작은 리틀블루펭귄, 브라질 마젤란펭귄, 갈라파고스에서도 서식을 한다. 남극 펭귄에 비해 크기가 작고 따뜻한 해류를 따라 살아간다.

황제펭귄은 종족 보존의 본능이 강하다. 새끼를 잃으면 다른 새끼를 납치하기도 한다. 남극에서 펭귄 서식지를 방문할 때는 유의해야 한다. 절대로 만지거나 놀래켜서는 안 된다. 음식을 주는 일도 삼가야 한다.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하다.

아프리카 유일 펭귄 서식지 케이프타운 볼더스 비치, 따뜻한 해류에 살며 체구가 작다
▲ 자카스 펭귄 아프리카 유일 펭귄 서식지 케이프타운 볼더스 비치, 따뜻한 해류에 살며 체구가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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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서식을 통해 천적으로부터 방어를 한다. 무리의 주변에 경비를 서고 있는 펭귄들
▲ 아델리펭귄 서식지 집단 서식을 통해 천적으로부터 방어를 한다. 무리의 주변에 경비를 서고 있는 펭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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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펭귄은 같은 종끼리 집단서식을 한다.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펭귄마을 방문을 위해서는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구 목적에 한하여 가능하다. 천적으로부터 방어를 위해 주로 해안가 빙원에 모여 있다. 부화되기 전 알과 어린 펭귄들을 노리는 도둑갈매기와 해표는 위협적이다.

기지에서 20여분 비행을 하면 닿을 수 있다. 우뚝 선 화산산 에레부스(Mt. Erebus 3794m)를 넘으니 하얀 설원 너머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꽁꽁 얼어 있는 얼음은 서서히 해안 쪽으로 녹기 시작한다. 헬기가 눈보라를 일으키며 얼음바다에 안착을 한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내려 걸어간다. 펭귄의 배설물 냄새가 심하다.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펭귄들은 대원들을 본체만체다.

'우~우,  꺄악 꺄악' 낯선 대원들의 방문을 서로에게 알리는가 보다. 부화시즌이라 아기 펭귄들이 많다. 무리의 한가운데 단체로 모아 보호하고 있다. 가장자리 펭귄들은 덩치와 위엄이 있다. 살을 에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원형의 허들링(Huddling)으로 서로 몸을 밀착한다.

어른 펭귄들이 둘러 경비를 선다. 발은 45도로 벌리고 무릎은 붙이며 손은 허리춤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영락 없는 군대식 부동 차렷자세다. 흐트러짐이 없다. 몸은 가만히 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날개는 퇴화된 조류과 이지만 가장 깊이 잠수 할 수 있다
▲ 날개짓하는 펭귄 날개는 퇴화된 조류과 이지만 가장 깊이 잠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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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펭귄들을 위해 먹이를 찾아 나섭니다. 햇빛 따스한 설원에서 가족의 온기를 느낍니다. 이별을 준비합니다. 누군가 떠나 보낸다는 것 참 슬픈 일입니다. 혹독한 환경에 홀로 남은 아기펭귄은 오늘도 꿈을 꿉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됩니다. 세상의 끝, 평화가 깃든 펭귄 마을입니다.

펭귄의 관심법, 소리로 마음을 보다

자체 레이더를 돌리며 이방인들에 대처한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없다. 눈만 껌뻑일 뿐 두려워하지 않는다. 호기심이 많아서일까? 마음까지 뚫어 보는 관심법이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는 소리로 알아본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수백 마리가 합창해내는 울음소리는 대단하다. 펭귄의 모양새가 비슷해 전쟁 장면을 찍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CG) 처리한 병사들 같다.

'당신의 마을에 초대해 주시는 건가요?'
눈 맞춤을 한다.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나요? 친구가 되고 싶어요!'
펭귄이 내게 말한다.

마을의 손님이 되었다. 눈 위에 누워 사진도 찍어 보고 주변을 거닐어 본다. 황제 펭귄의 명성답게 카메라를 의식하며 멋진 포즈를 잡는다. 연신 물개박수를 치는 아기 펭귄들의 반응이 뜨겁다. 친구가 되면 도망가거나 놀라지 않는다. '졸졸' 따라 다닌다.

뒤뚱거리는 몸짓이 귀엽다. 하얀 바탕의 검은 단추 같은 눈동자는 움직임이 없다. 무슨 일인가 하고 펭귄들이 모여든다. 3~4미터 거리를 유지한 채 내 눈을 빤히 쳐다 본다. "눈싸움 해 볼래?" 동그랗게 눈을 뜨고 껌벅이지 않으니 이길 재간이 없다. 펭귄은 소리로 가족을 구분해낸다.

호기심 많은 펭귄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평화로운 펭귄마을 호기심 많은 펭귄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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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순수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곳, 누구나 동심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 황제펭귄 마을 세상의 모든 순수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곳, 누구나 동심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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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갈매기가 선회를 하고 있다. 갓난 아기 펭귄 주변에서 기회를 엿본다. 멀리 쫓아내주고 싶지만 여기까지다. 남극 생태계의 순환에 개입할 수 없다. 생물과 자연을 보호하는 일은 탐사 대원으로서의 의무다.

기지 복귀를 위해 돌아갈 시간이다. 이게 웬일인가! '뽀드득, 뽀드득' 눈 위의 발자국을 펭귄들이 지워 버렸다. 한 마리가 따라오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헬기 주변에 줄지어 모여들고 있다.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대원들은 안중에도 없이 녀석들이 먼저 헬기를 타려 한다. 펭귄들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이륙을 한다.

'안녕! 계절의 끝에 살아서 어른이 되길 바랄게!'
마을을 떠나는 대원들의 뒤를 줄을 지어 따라 오고 있다
▲ 환송 마을을 떠나는 대원들의 뒤를 줄을 지어 따라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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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따라온 펭귄들이 신기한듯 헬기 주위에 모여 대원들보다 먼저 탑승을 시도하고 있다
▲ 호기심 많은 펭귄 단체로 따라온 펭귄들이 신기한듯 헬기 주위에 모여 대원들보다 먼저 탑승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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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프론티어, 남극 대륙

지구 온난화로 생태계도 변화하고 있다. 극지의 생물 모니터링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굶주림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는 북극곰, 펭귄들에게 채취한 털에선 중금속이 검출되기도 한다.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해안가에는 점차 땅이 드러난다. 여름이 찾아오는 12~2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빙하가 무너진다. 펭귄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내륙으로 이동한다. 생존의 위협에 노출될 것이다. 펭귄 마을은 내년에도 그대로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을 생각해 본다. 카페에서 일회용품 대신 일반컵을 사용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적 공감을 따른다. 재활용 분리와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한다. 남극에 대한 관심과 작은 실천부터다. 행복한 기억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인생의 한가운데 펭귄들과의 만남은 오래토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하얀 사막의 아름다움과 평화가 지속 될 수 있기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매년 빙하가 녹아 떨어져 나간다
▲ 남극빙하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매년 빙하가 녹아 떨어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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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남극을 꿈꾼 적 있나요? 언젠가 펭귄마을을 방문한다면 기억해 주세요! 동그란 눈, 파닥거리는 손,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는 멋진 턱시도를 입은 배나온 신사. 먼저 다가와 인사합니다. 당신은 잃어버린 순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태그:#남극, #남극펭귄, #황제펭귄, #파르밧, #남극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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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트레킹 /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 해난구조대(SSU)대위 전역 / 산. 바다. 여행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배운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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