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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3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수중보 인근 강가에서 전복된 소방구조대 보트가 인양되고 있다.
 8월 13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수중보 인근 강가에서 전복된 소방구조대 보트가 인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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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2일 민간보트가 신곡 수중보에 걸려 있다는 신고를 받고 구조 활동에 나선 김포소방서 소방관 2명이 보트가 전복되어 순직했다. 16일 동료들의 애도 속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순직한 심문규 소방장은 두 살배기 쌍둥이 아빠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순직사고가 있을 때마다 소방청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정부는 소방관을 애도하며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을 내뱉지만, 현실은 관련 기관이나 정부의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쯤 되면 소방관의 현장 활동 중 사망은 소방관의 업무 성격상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소방관의 순직사고 현황을 살펴보면, 올 한해만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5명, 폭행사고로 사망한 구급대원의 경우, 순직처리가 진행 중인 소방관을 포함하면 총 6명이 순직했다.

소방관들을 지켜줄 또 다른 구조 조직은 없다

지난 8월 1일 오후 7시 37분께 충북 제천시 왕암동의 한 원료의약품 제조공장에서 난 화재 현장에서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이 바닥에 쓰러져 힘들어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 진화에 나섰으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 '폭염과 사투' 화마 잡다 쓰러진 소방관 지난 8월 1일 오후 7시 37분께 충북 제천시 왕암동의 한 원료의약품 제조공장에서 난 화재 현장에서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이 바닥에 쓰러져 힘들어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 진화에 나섰으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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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순직한 소방관은 56명, 부상을 당한 소방관은 37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5년간 스스로 목숨은 끊은 소방관도 47명이나 된다. 한 해 평균 5.6명이 순직하는 셈이다. 마치 소방관의 순직사고는 연중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제는 소방관이 구조요청을 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재난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소방관들에게 그들을 지켜 줄 또 다른 구조 조직은 없다. 단지 그들의 뒤엔 임무를 명령한 국가가 있을 뿐이다.

"First in Last out!"

소방관들이 가슴에 새긴 구호다. 재난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는 뜻으로 소방관들이 현장 활동에 임하는 자세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재난현장을 최대한 빠르게 대피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로 위험 속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야 함으로써 생존권을 포기해야 하는 모순이 있다.

달리 말하면 국가는 소방관들에게 "너희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한 개인에게 그들의 목숨을 대가로 타인의 목숨을 구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게 있을까?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사회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희생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인간사회를 보다 아름답고 미래사회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갖게 만드는 힘이 된다. 남는 문제는 원초적 생존권에 대한 포기의 대가로 국가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다. 국가는 과연 생존권을 포기하며 희생을 감수한 소방관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을까. 그건 국가가 위기에 처한 소방관을 구조하는 최소한의 행위이기도 하다.

생명을 담보로 한 소방관의 봉급으로 국가는 얼마를 지급하고 있을까. 소방관 초임봉급을 기준으로 교원직, 연구직, 지도직, 전문경력관 봉급의 나군, 가군, 헌법연구관보다 초봉이 적다. 9급 행정직 공무원보다 9만 원 정도를 더 받는다.

그러나 계급이 한 단계 더 많은 소방관은 퇴직시 일반행정직 공무원보다 보수가 적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행정직은 9단계, 소방직은 계급이 10단계로 상대적으로 한 계급이 더 많은 소방관의 경우 퇴직 시 일반행정식 공무원보다 낮은 계급으로 퇴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65일 잠을 설치며 현장을 출동하는 소방관의 초과근무 수당은 기본금을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기본금이 적은 타 직종보다 시간당 150원 정도가 더 많을 뿐이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는 근무환경이 암을 유발하는 발암 가능성이 있는 직업군으로 소방공무원을 분류해놓고 있다.

현장에서 소방관의 생명을 지키는 개인장비에 대해서 국가는 어떻게 해왔을까?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소방국가직을 외치며 1인 시위를 했던 소방관들에 의해 현장활동을 하는 소방관이 개인장비를 사비로 구입한다는 사실과 노후화된 장비의 진상이 알려져 국민으로부터 공분을 샀다. 이것들이 개선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아직도 힘겹게 진행 중이다.

생명을 담보로 임무를 명령한 소방관의 죽음을 국가는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2011년 7월 고양이를 구조하다 순직한 고(故) 김종현 소방관은 인명구조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당했다가 3년간 유가족의 법정 다툼 끝에 겨우 유가족의 이의를 받아들여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2014년 고(故) 김범석 소방관은 혈액육종암 선고를 받고 7개월 만에 사망했다. 유족이 낸 순직신청에 국가는 "업무와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며 거절했다. 인과관계 증명을 유족에게 떠넘겼다. 유족은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며 수많은 중증질환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이 국가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최근 5년간 중증질환 소방관 151명). 미국의 경우 중증질환인과관계추정법이 있어 국가가 중증질환에 대해 입증 책임이 있다. 현재 표창원 의원이 발의한 공상추정법은 국회에 잠자고 있다.

2018년 4월 구급활동 중 주취자 폭행으로 사망한 고(故) 강연희 소방관의 경우,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업무와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는 결론이 났다. 강 소방관은 현재 일반순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위험직무 순직은 인정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군인, 경찰, 소방 등 위험직무의 경우 위험직무순직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입증은 모든 공무원을 똑같은 기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공조직에서 소방조직의 권한과 그 독립성을 국가는 얼마나 인정하고 있을까? 2019년 1월부터 소방공무원은 국가직신분이 된다. 하지만 인사권이나 지휘권은 현재의 시·도지사에게 남아있으며 예산부분도 완전하게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신분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인 소방공무원에 대한 그리고 그 조직에 대한 권한은 변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시·도지사의 반대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국가직 1인 시위를 주도했던 고아무개 소방관은 "국가직의 진짜 목적은 재난 전문기관의 독립적 권한을 인정받아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업무가 일반행정업무 위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안전이 그리고 권한이 없는 소방조직이 그들의 보상과 권리에 대해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생명을 포기해가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고 명령한 국가는 명령만 했을 뿐, 그에 대한 보상에 있어서는 다른 공무원과 똑같은 기준을 들이대거나 그보다 못한 처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 현주소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재난현장과 그와 연관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소방관들의 희생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슬픔일지 모른다.

하지만 재난현장에서 소방관을 구할 수는 없어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가치를 인정하며 그 뜻을 기리는 것,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은 어쩌면 그 피할 수 없는 슬픔에 국가나 우리사회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소방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고 그 생명을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고진영씨는 현직 소방공무원입니다.



태그:#소방관순직, #소방관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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