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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수산계장이었던 손성익씨를 기억하는가. 당연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역대 풍속 1위, 재산 피해 2위, 일강수량 6위를 기록한 역대급 태풍이었다. 그는 매미가 오기 하루 전 관할 9개 어항을 찾아 어선 대피에 소극적이던 어민들을 설득해 50여 척을 반강제로 육지로 끌어올렸다.

만약 피해가 없다면 이동비용을 자기가 주겠고 만약 자신 말을 안 듣고 어선을 옮기지 않으면 나중에 정부보상에서 제외시키겠다고 엄포까지 놨다. 태풍이 지나간 후 인근에서 21척의 배가 파손되었으나 북구는 단 한척도 피해가 없었다. 300여만 원의 이동비용을 들여 수십억의 피해를 막았다.

사실 이 사례는 그전에도 있었다. 바로 그 1년 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덮쳤다. 재산피해1위, 일강수량 1위, 순간풍속 3위, 인명피해 10위의 엄청난 태풍이었다.
전국에서 어선 파손 피해가 속출했지만 전라도 진도만큼은 피해가 적었다. 이남서(진도군 전 의원)씨 덕분이었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타워크레인과 형태가 비슷한 크레인의 특허를 출원한 후 해안가에 지브크레인을 설치했다. 이 크레인을 이용해 태풍이 오기 전 작은 어선들을 모두 육지로 옮겨놓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미 그 전해에 이런 모범사례가 있었음에도 바로 다음 해에도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어.'하며 안일하게 대처하려고 했으나 한 공무원의 집요한 노력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나마 이제는 태풍 경보가 알려지면 크레인 등을 이용해 어선을 육지로 옮기는 것이 거의 매뉴얼화되어 이런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이들 덕분에 이런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브루셀라 백신 파동도 사전 인지되었으나 막지 못해

1998년 나는 ○○우유에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매일 아침 인터넷을 통해 축산관련 소식을 브리핑했다. 인터넷이 충분히 보급되기 이전에 전화선으로 연결해서 하는 작업이라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전국 축산 관련 소식을 그토록 빠르게 검색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첨단적인 일이었다.

어느 날 나는 매우 특이한 뉴스를 하나 접했다. 제주 지역 신문 기사였는데 관내에 브루셀라 백신을 맞은 소가 유산을 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뉴스였다. 나는 이 사실을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왜냐하면 서울경기지역의 목장에 기반을 둔 ○○우유 조합 목장에도 곧 그 백신을 접종할 예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상관도 이 사실이 이상하다고 여겨 당시 농림부 관할 부서에 확인을 했다. 전달받은 답변은 '별 이상없다'였다. 정부가 하는 일이기에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해당 백신은 제주를 시범으로 실시한 이후 서울경기를 비롯해 전국에 접종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조합 목장 지정수의사들로부터 해당 젖소들이 유산을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한 마리 두 마리에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수가 늘어났다. 결국 접종받은 39만 마리의 젖소 중에 48%의 소가 유산내지 조산을 하는 대형 백신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교수, 농림부 간부와 백신 제조업체관계자 등이 무더기로 구속 또는 불구속되고 수많은 피해보상이 이뤄졌다. 백신 자체의 문제인지 백신 제조과정의 문제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이 또한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담당 공무원이 시범사업 초기 유조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백신투여를 중단하고 원인을 밝혔다면 그런 대형 백신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전 역대급 태풍이었던 솔릭이 한반도에 모처럼 상륙했다. 이번에는 정부, 지자체 관련단체 모두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했다. 유치원 및 학교는 휴교령을 내렸고 선박들은 육지로 미리 옮겨 놨다. 하지만 태풍은 육지로 상륙한 이후 급격히 약해져 거의 피해 없이 지나났다. 천만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나온 신문들의 헤드라인은 정말 가관이었다. '역대급이라 설레발치더니 아무 피해가 없었다'라는 취지였다. 심지어 그에 부화뇌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에겐 아직 안전 감수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직도 정신 차리려면 멀었다. 그렇게 많은 사고가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못한 것을 비판하면서도 사전에 준비했는데 아무 일이 없이 지나간 것을 문제 삼는 얼빠진 언론과 시민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작년 포항 지진으로 인해 수능을 연기한 일 그리고 이번에 솔라에 대한 대응 모두 매우 적절한 모습이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을 막기위해 공항내에서 철저하게 검역을 실시하는 모습, 메르스 발생시 즉각적인 환자 격리 및 접촉인의 가택격리 또한 매우 적절한 대응이다.

상도동 유치원 붕괴사고도 사전에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이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보고되었고 붕괴전날도 여러차례 위험을 알리는 시민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하지만 해당관청은 감리기관에 서면으로 대응하라고 조치만 내렸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대에 붕괴가 되었기 망정이지 정말 초대형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안전에 대한 감수성이지 너무 지나친 민감도가 아니다. 공무원이 부족하고 공무원이 일이 많은 것은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해서 행할 일이 있다. 바로 안전에 관련된 일이다. 그건 다른 무슨 일에 우선해야 한다.

이런 일은 아예 철저하게 시스템화되어 있어 어떤 공무원이 그 자리에 있더라도 동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정부나 관의 지도와 지시에 시민은 적극 협조해야 한다. 조금 불편하다고 불평할 일이 절대 아니다. 언론 또한 이런 식의 비아냥이 아니라 앞으로 더 안전에 철저해달라고 격려하고 독려해야 한다.

그것이 다시는 이 땅에서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씨랜드,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태그:#상도동유치원, #붕괴, #태풍,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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