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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년이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저하게 하는 것과 확신하게 하는 것이 가득한 이 정치판에 뛰어든 이, 여성최초 제주도지사 후보였던 고은영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활동가인 혜민과 연주가 함께 만났다.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또는 꿈꾸는 여성청년들의 사연을 받았고 이를 중심으로 고은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고은영x여세연의 제주도 푸른밤. 장장 5시간이 넘게 이어진 대화를 4회차 기사로 정리해보았다. 1, 4회차는 혜민, 2, 3회차는 연주가 작성하였다. -기자말

[이전 기사]
1회: 1톤 트럭에 오른 무일푼 후보, 그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
2회: "다음 선거에선 더 많은 고은영과 경쟁하고 싶어요."
3회: "작은 승리 경험, 여성청년 정치를 상상할 수 있게 했다."

"저런 놈도 차기 대권주자인데... 정치, 제가 하는 게 낫겠어요."

지난 8월 14일,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에 의한 성폭력사건 1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에서 함께 활동하는 연주씨와 함께 서울 서부지방법원 앞에 가서 "재판부는 안희정성폭력사건을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판단하라!"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었다.

공판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안희정이 도착했고 우리는 그 차량 주변으로 뛰어가 소리쳤다. "안희정은 인정하라!" "안희정은 사과하라!" 그러나 결과는 무색하게도 무죄 판결이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선고 공판 이후, 진행된 '안희정성폭력사건 1심 선거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연주씨가 말했다. "샘, 저런 놈도 차기 대권주자인데. 정치, 제가 하는 게 낫겠어요. 제가 왜 못 해요, 뭐가 부족해서." 목소리에 울음과 분노가 가득찼다. 그렇게 8월 14일은 연주씨가 생애 첫 정당에 가입한 날이 됐다.

 
안희정에 의한 성폭력사건 1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날.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들었다.
 안희정에 의한 성폭력사건 1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날.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들었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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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들만 살아남는 정치판, 탈락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다

지난 8월 30일, 연주씨와 나는 여성청년이 정치를 한다는 게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최초의 여성 제주도지사 후보였던 고은영을 만났다(1~3회 기사 참고). '본격정치수다'를 5시간 동안 나눴기에 그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고은영은 후보로서의 경험, 정당 활동에 대한 과정을 설명할 때, 반복적으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전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 평범한 사람인데,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대표성을 가지며 기존과는 전혀 다른 일들을 해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정치가 너무나도 '특수'하기에 '평범'해져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기존 정치인들이 여타의 사람들과는 다른 나만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른 말하기 방식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정치판은 어쩌면 너무나도 '특수'해서 '평범함'을 갖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50대' '이성애' '남성' '엘리트' '아재'들의 독점정치로 인해 '그 밖의 사람들'의 평범함은 사라지고, 얘기되지 못하고, 대표자들의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탈락되는 것이다.

'젊은 여자애'가 정치에 뛰어들기 어려운 판,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의 재부상은 또 다른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여성청년들에게 페미니즘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한 '생존'에 가까운 언어가 됐고 그들은 광장에 나와 기존에 논의되지 못했던 새로운, 그러나 꼭 필요했던 의제들을 전면에 내걸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녹색당의 고은영이라는 여성청년후보의 등장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선거 운동 과정에서 고은영은 '젊은 여자애가 무슨 정치를 해'라며 끊임없이 정치할 자격을 묻는 이들을 만났고 높은 기탁금 등 수많은 장벽들을 마주했다.

모아둔 돈이 없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 선거운동과정에서의 경비와 같이 돈의 무게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만난 한 여성청년 출마자는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선거에 나갈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당선되지 못했고 여전히 빚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출마자는 빚에 대한 무게감보다 본인이 '퇴직 이후의 아버지의 삶'을 본인이 가로막았다는 것에 더 큰 부담감, 자책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여성청년이 쉽게 정치에 뛰어들 수 있을까?

또한 거대정당에게 유리한 현 선거제도는 녹색당과 같은 군소정당이 아무리 열심히 활동을 하고 지지를 받더라도 그에 따른 결과를 얻어내기가 어려운 장벽들로 작동한다. 2018년 지선 당시 서울시의회 선거결과에서 정당득표가 9%였던 정의당이 시비례의원으로 1석을, 50%였던 더불어민주당이 102석을 가져간 사례만 봐도 현재의 선거제도는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게 하는 약탈적 구조이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수많은 여성청년들이 끊임없이 정치에 도전해왔으나 그들은 사라졌고, 우리 여성청년들은 다시 처음처럼 무대에 등장해야 한다. 이처럼 불합리한 장벽들은 겹치고 겹쳐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저런 놈'이 진보의 탈을 쓰고 차기대권주자까지 될 수 있는 지금의 정치판을 이끌어낸 건 아닐까? 

2020 총선 머지 않았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를 외쳤던 우리가 행동할 때

 
지난 8월 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집회의 한 장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사건 무죄 선고를 규탄하며 우리는 횃불을 들었다.
 지난 8월 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집회의 한 장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사건 무죄 선고를 규탄하며 우리는 횃불을 들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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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영이라는 여성청년후보의 등장이 2018년의 '사건'이 아니라 이후에도 지속되는 활동이 되려면, 그리고 그들의 도전이 당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의 아재정치판과 이를 뒷받침하는 선거제도를 그저 관망해서만은 안 된다.

그들의 등장이 많은 여성청년들에게 '나도 정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그들의 당선을 통해 여성청년도 실질적인 정치 권한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2020년 총선에서는 2018년 지선에서의 등장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결과가 있어야 우리는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전국 57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정치개혁공동행동'이라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모인 연대체에서 함께 활동하며 민심 그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가 개혁될 수 있도록, 이를 통해 페미니스트 의제가 제대로 대의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정치변화를 이끌어야 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자유한국당이 위원명단을 제출하지 않음에 따라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정치개혁공동행동과 함께 정치개혁의 뻔한 말들을 반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고 실질적으로 페미니스트 대표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 개혁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분주할 계획이다.

2020년 총선은 생각보다 머지 않았다. 퇴출돼야 마땅한 '아재'들은 이미 벌써부터 죽기 살기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아재정치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다. 정치라는 것이 여성청년이 해볼만한 판, 뛰어들고 싶은 판, 그리고 그녀들의 시도가 사무치게 가슴 아린 사건이 아니라 성취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판이 돼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여성청년정치인들을 만나고 더 오래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녀들이 우리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 돼 아재들이 독점하고 있는 국회의 판에 거역할 수 없는 균열을 낼 수 있도록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고 외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 국가는 여성 없이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바로 우리의 것 아니던가.

태그:#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고은영, #여성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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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치적 역량과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서의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여세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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