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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죽지 마
영원을 보여 줄게

내 낙원에서의
새로운 자유를

- 시 「두 번째 낙원」 전문

 

지난 7월 30일, 50편이 수록된 첫 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파란)를 냈습니다. 이 시집은 생명입니다. 나는 시에 숨을 불어 넣었고 이름을 지어주었고 내 심상대로 창조했습니다. 믿음과 의심 속에서 분열과 갈등을 체험한 자가 자유를 갈급하며 새로운 낙원, 즉 두 번째 낙원을 창조해 가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나를 매혹하거나 결박했던 것에서 태어난 시들을 모았습니다. 시 쓰는 일이 기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지만 시집을 정리하면서 시에 매몰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류에게 새로운 자유를 선물하고자 했지만 정작 내 영혼을 학대하고 억압했습니다. 나의 자아들에게 미안합니다. 시집 출간 후, 독자에게 독서의 방향과 길을 열어주고자 내가 내게 묻고 답한 것을 정리했습니다.
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파란)
 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파란)
ⓒ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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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간 당신을 매혹하거나 결박했던 것에서 시가 탄생했다고 했는데요. 무엇이 당신을 매혹하고 결박했나요?
"'구원은 죽음이 깃들어야 빛이 난다'(시 「화형」). '빛이 어둠에 의지하니까 보기 좋다'(시 「살아남은 성읍의 혈통」), '변심은 믿음의 자유'(시 「낙원의 자유」). '누군가 현을 풀어놓는다 하여 푸른 물의 시를 유서로 읽지 말 것' (시 「푸른 물의 시」). 진리나 정의에 고립되지 않는 새로운 자유를 느끼고 싶었어요. 태양을 부정한 햇빛의 자유를 갈망했죠. 믿음과 의심 속에서 분열과 갈등을 체험한 자가 새로운 자유를 갈급하며 새로운 낙원, 즉 두 번째 낙원을 창조해 가는 여정을 담은 시집입니다.

믿음과 의심의 대상은 지하 셋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그림자와 대화하는 유년의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성막에 갇힌 불신실한 파편화된 자유일 수도 있겠죠. 둘째가 첫째가 되는 환상을 봐요. 처음에는 시집 제목을 '햇빛과 그늘의 자유'로 하고 싶었어요. 밝음과 어둠에 옳고 그름은 없고 저마다의 새로운 자유가 있다고 보았죠. 영원을 갈망하면서도 스스로 자멸하는 자의 생명으로 함축할 수 있겠습니다."

- 첫 시집을 낸 후,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나는 다시 태어났어요. 시집이 나온 후, 완전히 새로워졌죠. 이 시들을 썼던 나는 죽었어요. 이제 환희와 은총에 대해 노래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더 큰 믿음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죽은 내가 돌아오지 못하도록요."

- 포스터, 라이터, 엽서 등 여러 굿즈를 제작했죠?
"시집이 외롭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했죠. 시집 출간 후, 서울 중랑천을 갔어요. 20년 동안 중랑천을 걸었고, 그 길 위에서 시들이 탄생했죠. 중랑천과 시집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어요. 시집을 중랑천에 띄웠고 그 영원을 담았죠. 그 장면으로 포스터를 제작했어요. 슬프지만 아름다워요."
 
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포스터
 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포스터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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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라이터 굿즈
 시집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라이터 굿즈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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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가 있을까요?
"2018년 10월, 연인과 함께 읽으면 좋은 시 한 편 소개할게요. 2010년 나비문학상을 받은 '겨울 화장 거울 여름'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자아를 애도하는 시입니다."
 
겨울 화장 거울 여름

나무에 싹이 트면 그는 내 키를 쟀고 단풍이 들거나 잎새가 지면 창가에 눕혀 잠재웠다.

참쑥을 따다 차를 끓이고 배를 쓰다듬는 그의 흙 묻은 잠 속에서 뿌리를 더듬으며 입안 가득 씨를 삼켰다.

거울에 어둠이 내린다.

세숫대야에 약수를 부어 흰쌀을 씻고 쌀무덤 위로 쌀벌레가 눈썹을 내밀면 쌀알로 덮는다 뜨물 위에 고인 얼굴에 눈곱이 낄 때까지 그리움을 뜸 들인다.

햇살을 걷어 가는 구름이 그늘을 드리우면 또다시 그가 안아 줄 것만 같다.

그는 수탉을 잡아 피를 거르고 키 작은 내 그림자를 곧추세우고는 그해 칠월 문지방을 넘었다.

찬물에 발을 담그고 흙이 가라앉을 때까지 뼈를 주물렀다.

거울 속 빈방에 불을 지피며 죽을 오래 끓이는 법을 익힐 때 심장 가까이 안개가 모여들었다.

전구가 지하 복도 끝까지 기지개를 켠다 거울을 닦고 지상에 오르면 그가 불을 쬐고 앉아 나무의 결을 매만진다.

밤하늘은 달 한 조각 속주머니에 챙기며 눈꽃을 떨어뜨리고 아카시아는 흰쌀밥처럼 부풀어 올랐다.



- 이 시집을 누가 읽으면 좋을까요.
"자존감이 높고 위대한 삶과 자유를 꿈꾸는 이들이 보면 좋겠습니다. 명예와 품위… 그런 낭만을 간직한 사람들이요. 그리고 고통 받은 모든 세대가 함께 읽고 새로운 자유를 만끽했으면 합니다. 온 인류가 아끼고 사랑한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

- 시집이 음악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요.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이 있을까요?
"nick cave&the bad seeds의 「girl in amber」, pope x pope의 「black tower」, the black underground의 「she's on psychedelic」,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한국말」, 이장혁의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 nirvana의 「lithium」, aphrodite's child의 「the seventh seal」, 정차식의 「마중」,  pink floyd의 「comfortably numb」 타부의 「월식」, the smiths의 「the queen is dead」, kimsoil의 「clouds」, 이상의날개의 「코스모스」, alice in chains의 「nutshell」, red house painters의 「24」, 네스티요나의 「cause you're my mom」, nick drake의 「day is done」, 황병기의 「미궁」."

- 두 번째 시집에서는 어떤 세계를 만날 수 있을지?
"은총과 기적.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기쁨을 되찾는 것이 두 번째 시집의 성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가족, 벗, 동료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인류. 그들의 눈과 귀가 멀 정도로 찬란한 시를 쓰고 싶어요. 몇 년 간은 시 창작보다는 그 기쁨을 찾는 데 집중할 것 같습니다."
 
시인 김광섭
 시인 김광섭
ⓒ 김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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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에서

김광섭의 시를 읽는 내내 인간사 현실 저편 너머에 있는 신비주의 및 여러 상징들이 상기시키는 종교적 성향과,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며 자유분방하게 직조된 운율의 패턴에서 본능적으로 쇤베르크의 최후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이 떠올랐다. 특히 제2막 3장 '황금 송아지 앞 광란의 의식 장면'의 이미지들과 이때 울리는 음향들이 지면 곳곳에 어른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시를 읽을 무렵에는 오히려 어느 청신한 교부의 명상록을 접하는 듯했다. 이 시집은 한마디로 숭고하다. - 김환욱(뮤지션, 밴드 POPE X POPE, 시집 추천사)

'죽음'과 '삶' 사이를 오고 가며 자신의 기울기를 적는 시인의 시 쓰기를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보도블록 틈 사이에 서서 외롭게 흔들리는 시인의 몸짓을 어떤 방식으로 만져야 하는가. 그는 그 '사이'에서 삶을 살아내는 유령이자 귀신이다. 믿는 행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 주는 기도와 같다. 그가 '살아 본 자'와 '죽어 본 자'의 옷깃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행위는 간절한 믿음 안에서 작동된다. - 문종필(문학평론가, 시집 해설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김광섭 시인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나비문학상(2010), 시작신인상(2013)을 받았다.


내일이 있어 우리는 슬프다

김광섭 지음, 파란(2018)


태그:#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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