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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표방하는 <오마이뉴스>는 이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주장을 환영합니다. 이 글에 대한 반론이나 기타 의견이 있다면 편집부로 보내주세요.[편집자말]
나는 암을 진료하는 의사다. 암은 아직 정복된 질병이 아니며, 매년 새로운 치료법이 보고된다. 환자분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나는 매달 10편 이상의 논문을 읽고 매년 3편 이상의 연구논문을 작성한다.

환자의 아픔, 처한 상황, 가족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공감하려 마음의 문을 연다. 경제적 부분을 도와드리기 위해 내 업무는 아니지만 보험 관련 상담도 마다하지 않는다. 평소에 마주칠 일 없는 복지팀을 찾아가 내가 맡은 환자를 도와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힘든 항암 투병의 길을 나와 함께 갈 수 있도록 한다.

이 모든 것들은 누가 나에게 시킨 것도 아니고, 강제할 수 없다(강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나의 양심과 환자분들의 신뢰, 그리고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에서 나온 자발적 노력인 것이다. 이게 내가 유별난 의사라서 그럴까. 아니다. 다수의 의사들이 그런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진료실에서 녹음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단순히 친구 사이에서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면 기분 나쁜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내 몸을 맡기고 마음을 위로받는 사이인 의사와 환자 사이는 어떠랴. 그런데 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요즘은 당연하지 않은 듯 돌아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파렴치 의사'는 소수일 뿐이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수술실 CCTV 운영을 시작했다. 경기도는 내년부터 경기도의료원의 나머지 병원에도 CCTV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수술실 CCTV 운영을 시작했다. 경기도는 내년부터 경기도의료원의 나머지 병원에도 CCTV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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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는 매일 새로운 의사들의 파렴치 범죄가 보고된다. CCTV를 설치하라, 녹음을 해서 증거 자료를 준비하라는 등 글들이 인터넷에 떠다닌다. 실제로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수술실 CCTV 운영을 시작했다. 경기도는 내년부터 경기도의료원의 나머지 병원에도 CCTV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은 15만 명에 가깝다. 그중에 몇 퍼센트나 그토록 파렴치할는지. 적어도 열 중 아홉의 의사들은 내가 위에 쓴 것처럼 양심과 사랑을 가지고 환자를 대할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녹음기를 들이대고, CCTV를 설치하는 것이 마치 환자에게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태가 고통스럽다.

응급실 폭력을 막기 위한 경찰 인력의 배치보다, 수술실 CCTV 설치가 훨씬 빠르고 경쾌하게 진행된다. 녹음하고, CCTV를 설치하고, 의사들에게 강력 처벌을 실시하면 국민들은 과연 좋은 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인턴 시절 나의 업무 중 하나는 입원 중인 환자분들을 대상으로 채혈하는 일이었다. 다들 병원에서 혈관이 찾아지지 않아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를 격려해주던 분이 있던 반면,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전자의 경우 극도의 피로 속에서도 마지막 집중을 끌어모아 혈관을 찾아 결국에는 채혈에 성공하곤 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오히려 집중력과 자신감이 감소하고 심지어 손까지 떨려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이 되곤 했다.

의료 문제에 대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서로가 다 환자와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하지만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은, 환자를 가장 위하는 사람은 환자 자신과 그 가족들이다.

그리고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환자를 위하는 사람은 바로 담당 의료진이다. 본인이 투병 중에도 중환자들을 위해 당직을 서고,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주말 밤낮없이 일하고 공부하는 의사들의 얘기는 파렴치한 의사를 찾는 것보다 수십 배는 쉽다.

나 또한 응급환자를 진료하다 신종플루에 걸려 일주일간 사경을 헤맸었고, 치사율 40%의 서슬 퍼런 메르스가 유행할 때 창고에서 숙식하며 마스크를 쓰고 일선 진료에 나섰다. 지금도 많은 의사는 환자를 위해 병마와 싸우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환자를 맡은 의사들에게 누군가가 그보다 더 환자를 더 위한다고 하는 말은 그만 듣고 싶다.

마지막으로 의사와 환자의 사이가 멀어지면 가장 크게 웃는 것은 바로 병마다.

태그:#수술실 CCTV, #수술실, #의사, #환자,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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