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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 찬란한 불국사의 가을 여행 인증샷으로 단연 으뜸인 자하문에 다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 극락전으로 통하는 연화교와 칠보교다. 이곳에 내려않은 가을이 아련하다. ⓒ 최정선
 
수학여행지로 경주 불국사는 단연코 일순위다. 초등학교 시절 불국사를 다녀온 기억이 어렴풋하다. '경주'라는 도시는 우리나라의 천 년 고도. 꼭 가야만 하는 곳으로 기억된다. 각종 여행 및 세미나가 열리는 곳이라 '역시 그곳'이라는 식상함도 공존하는 도시인 것 같다. 물론 나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경주를 오고 갔지만 과연 '경주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없다'였다. 어린 시절 시끌벅적하고 들뜬 마음속에 방문한 경주는 불국사와 석굴암 밖에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세미나 장소로 각광받는 보문단지 외에 가본 곳이 없다.

결과적으로 내 가슴속에 경주는 없었다. 카메라 속으로 경주를 본 후, 경주에 대해 다시 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취재 후 글을 쓰면서 경주의 역사를 훑어보았다. 옛 서라벌인 경주를 '사사성장(寺寺星張) 탑탑안행(塔塔雁行)'이라 했다. 마치 탑들이 늘어선 모습이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떼 같다는 뜻에서 인용된 말이다. 그만큼 탑이 많다는 뜻. 탑을 쌓듯 나의 기억 속에 경주를 쌓았다.

왜 경주에 대한 책이었을까
생각없이 경주 경주에서 만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의 이야기 ⓒ 최정선
 
사실 책을 출간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생각없이 경주> 기획의 첫 단추는 한국여행작가협회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다.

주말마다 경주로 짐을 싸 달렸다. 경주예술의전당에서 프로젝트 전시가 끝난 후에도 경주에 대한 여운을 지울 수가 없어 한해를 더 다녔다. 경주의 게스트하우스 박경희 대표님 도움이 컸다. 잠자리며 경주의 핫한 곳을 깨알같이 소개해줬다.

꼬박 이년을 기록한 자료를 정리해 출판 지원을 받고자 경주시청 담당자와 미팅도 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출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주에 대한 자료가 넘쳐날 뿐더러 기존의 여행 책들이 많다는 이유로 여러 출판사가 거절하기 일쑤였다.

첫 출판 때도 그랬지만 '바위로 계란 친다'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포기하지 않고 원고를 다듬었고 각고의 노력과 여러분의 도움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책을 출간하기까지 가장 힘든 작업은 원고를 다듬는 작업인 것 같다. 물론 원고를 쓰는 일도 힘들지만 원고를 다듬는 일은 상품화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신중하고 정교해야 된다. 고치고 또 고쳐도 늘 오타가 보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원고는 정리되지 않았다.

초고 원고가 끝난 후 윤문할 작가를 섭외했지만 뜻대로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 짬짬이 윤문 작업하던 걸 멈췄다.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내 경주 여행기는 컴퓨터 속에서 다시 일 년을 잠을 자야 했다.
 
허나 기다리면 기회는 오는 법. 10년 가까이 연락이 두절되었던 동기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제법 큰 디자인 회사를 운영했다. 의기투합 해 책을 만들어 보자고 한다. 디자인도 몇 번이고 만들고 고쳤다. 결과물에 대해 100% 만족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좋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 만든 책이니까.

티격태격 부부여행자의 일상
  
책 표지에 나오듯 이번 책은 남편과 함께 썼다. 글과 사진을 제외한 여행 전반에 관한 일을 남편이 맡아줬다. 좋았냐고? 천만에. 경주를 2년 동안 다니면서 우리 부부는 늘 티격태격했다.  

여행 사진은 '아침'에 찍어야 한다. 새벽에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에 따라 좋은 사진이 판가름 난다. 맹한 사진 탈피를 위한 첫 조건은 매직아워를 잡아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눈곱만 떼고 짐을 챙겨 튀어나간다. 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꼭 화장실에서 30분을 보낸다.

이러니 새벽은 늘 전쟁이다. 보통 아침시간, 휴대폰 알람이 쉬지 않고 울어대지만 눈꺼풀이 무거워 떠지지 않는다. 바깥은 아직도 밤빛이 짙은 새벽이다. 30분을 더 잤다. 얼마 후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이곳 경주로 언제 다시 올지는 미지수.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짐을 챙기게 했다.

나는 나가야 되는데 그는 화장실에서 뭘 하는지 우물거린다. 한마디 하면 늘 똑같은 변명. "볼일은 봐야지. 그리고 눈곱은 떼야 운전하지." 속이 터진다. 속이 터지지만 그래도 운전 해주고 스케줄 짜주는 동행인이 없다면 아마도 경주 여행기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주는 사계절이 새로운 여행지

가을꽃들이 지천에 피어난 경주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높은 산에나 있을 법한 노송들이 낮은 구릉지나 평지에서 찬란히 빛나는 모습도 이채롭다. <생각없이 경주>는 사계절의 시간이 빚어낸 경주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을 담은 이야기다. 글을 쓰면서 '아쉬움 많은 여행을 했구나' 하는 휘휘한 마음이 앞선다.
 
경주 대릉원의 봄 생명의 빛이 사라진 대릉원의 목련 ⓒ 최정선
 
경주의 봄. 벚꽃 흩날리는 길을 걸으며 봄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으뜸 장소가 경주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봄빛에 물든 꽃 팝콘 무리가 손짓하는 경주. 자연의 시간에 맞춰 피는 봄꽃의 여왕인 목련과 꽃 팝콘 벚꽃, 개나리를 부부 여행자는 쫓고 또 쫓았다.
 
동부사적지의 여름 천 년의 웃음을 짓는 연꽃단지 ⓒ 최정선
 
경주의 여름. 푸른 세계가 펼쳐지는 여름의 경주는 초록 숲이 무성한 언덕들이 잔뜩이다. 여름 하면 으레 연꽃이 떠오른다. 그래서 부부 여행자는 고즈넉한 한옥과 어울리는 연꽃이 어여쁜 곳을 소개한다.
 
불국사의 가을 관음전에서 바라본 단풍. 대웅전 뒤편 무설전의 회랑에 걸쳐진 붉은 단풍의 풍경은 숨겨진 명소다 ⓒ 최정선
 
경주의 가을. 여자의 마음을 닮은 갈대의 계절이다. 마음까지도 젖게 하는 울긋불긋한 오색단풍이 눈을 만족시킨다면 억새는 포근함을 선사한다. 가을 단풍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단연 경주 불국사다. 곧 다가올 겨울의 걸음을 부여잡듯 붉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빛낸다.
 
기림사의 겨울 겨울빛이 가득한 기림사에서 동안거를 자청해 보자 ⓒ 최정선
 
경주의 겨울. 눈 덮인 구릉지를 저벅저벅 걷는 낭만적인 상상보다 따뜻한 온기를 여행자들은 꿈꾼다. 그래서 겨울 여행으로 온천을 최고로 꼽는다. 경주는 눈과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단언컨대 온전히 고립무원을 느낄 수 있는 겨울 여행지가 경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부 여행자의 시선을 따라 경주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3초일상의 나찾기'( https://blog.naver.com/bangel94 )에도 실립니다.

생각없이 경주

최정선.이성이 지음, 귀뜸(2018)


태그:#생각없이경주, #경주여행, #여행책, #책소개, #책속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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