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06 17:15최종 업데이트 18.10.06 17:15
 

박재혁 의사가 재학했던 '부산공립상업학교 교정' 박재혁 의사가 재학했던 '부산공립상업학교 교정' ⓒ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제공

 
개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졸업생들은 총독부의 식민지 교육 방침을 줄기차게 반대하면서 교명 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년여 동안의 노력에도 성과를 얻지 못하자 이번에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동맹휴교에 들어갔다. 


1923년 졸업반을 제외한 1,2학년생은 동맹 휴교를 단행하였다. 2학년 몇몇이 주동이 되어 영주동 영선고개 뒷산 광장에 모여 내용을 잘 몰라 어리둥절하는 학우들에게 맹휴의 취지와 아래와 같은 경과보고를 하였다.

전통 있는 우리 학교가 불투명한 이유로 갑자기 '부산진상업' 으로 개명이 강요되었다. 이는 일본인들의 '부산상업전수학교'가 '부산공립상업학교'로 개칭됨에 따라 장차 부산진(서면)방면으로 이전한다는 전제로 옛날부터 있는 우리 '부산상업'에 '진'자를 하나 더 불이게 한 것이니, 우리는 어처구니없이 교명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하여 건의, 진정을 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 교명을 도로 찾기 위해 부득이 우리들은 맹휴에 이른 것이다. 3학년이 주동이 되어야 함이 원칙이겠으나, 졸업기를 앞두고 그들의 취직 등 장래 문제에 영향이 클 것으로 부득이 2학년이 앞장선 것이다. 우리는 교명의 환원을 위해서는 모든 희생을 각오하였다. 맹휴에 불찬성하는 자는 귀가해도 좋다. 그러나 등교해서는 안 된다. (주석 1)

이리하여 1,2학년 일동의 명의로 후쿠시 도쿠해이 교장 앞으로 맹휴의 이유와 요구조건을 제시하였다. 교명환원, 불성실한 몇 교사의 배척, 각반 상시 착용 반대 등이었다. 동창회 간부 등에게도 연락을 취했고, 학교장은 진주 소재의 경남도 학무 당국에 보고를 해서 학교 내외는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다음 날부터는 동창회와 학교, 학교와 경상남도 학무당국 등이 절충을 거듭했으나 좀처럼 좋은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학교는 학교로서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니, 일단 맹휴를 중지하고 이 문제는 동창회에 맡겨 달라는 동창회 간부들의 말에 회의를 품고 오히려 선배들의 무관심함을 항변하기도 하였다.

3일째는 맹휴 학생 대표와 동창회 간부가 학교에 가서 후쿠시 도쿠해이 교장을 면접,  회담하니 그 자신의 사표를 내어 보이면서 교명을 환원함을 제일 목표로 하고 부득이 할 때는 양교 모두가 '부산상업'이란 교명도 못 쓰도록 하고, 그것도 안 될 경우에는 교장의 부덕한 탓이라 지책하여 사임하겠다고 만루하며 빨리 복교할 것을 학생들에게 권고하였다. 

4일 째 회합시는 맹휴 중지를 둘러싸고 토론이 거듭되었으나, 졸업반과 동창회 간부들의 간곡한 권유로 등교키로 의견이 기울어지자 등교 이후의 수습 문제에 대한 대책이 논의되어 주동 학생들에 대한 처벌 등에 대해서는 원만한 해결을 하도록 동창회 측에서 책임을 지기로 하여 일단락 지었다.

5일째 2월 10일과 다음 날인 2월 11일은 등교했으나 어수선한 분위기에 싸여 강의를 듣는둥 마는둥 했다. 도 당국은 주모자에 대하여 처벌을 주장한 모양이나 동창회와 학부형들의 맹휴생들과의 약속 및 애교심에 불타는 학생들의 행동이었다는 점을 들어 학교 당국과의 교섭으로 무시하게 되었다.
(주석 2)

1923년 4월 1일 학칙 변경으로 수업연한이 3년으로부터 5년으로 연장되고, 교명은 부산제2공립상업학교로 개칭되었다. 1년 전 교명 개칭으로 '부산진동립상업학교'란 달갑지 않은 이름 때문에 파동을 일으키다가 교사를 서면으로 이전하기 전에 영주동 졸업생(12회)을 낳게 하고, 그대로 별다른 성과를 못본 채 결국 일본인학교가 먼저 개교했다는 이유로 '제1' 이 되고, 1923년 4월 부산진공입상업학교가 '부산제2공립상업학교'로 개칭하고 말았다. 

개성학교의 동맹휴학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1928년 총독부의 민족차별 교육정책에 항거하여 학생들이 다시 동맹휴학을 벌였다. 이때에 188명이 퇴학당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주석
1> 앞의 책, 85쪽.
2> 앞의 책, 8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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