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6 09:14최종 업데이트 18.10.16 15:22
술자리에서 술잔이 돌아다니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잔이 나를 향해 오기도 한다. 그때 모두의 입술을 거쳐서 오는 잔이라면, 무척 불결하고 혐오스럽기 짝이 없다. 이때 어떻게 응대하는 게 현명할까?

언제부터인가 술잔을 돌리는 일은 우리에게 퍽이나 익숙한 일이 되었다. 마치 서로 소통하는 상징처럼, 조직력을 확인하는 기호처럼 활용되고 있다. 예전에도 술잔을 올리고 돌려받는 일은 있었다.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관심과 격려의 의미가 있고,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술을 올리는 것은 인사와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잔을 부딪칠수록, 술잔을 비우는 횟수가 늘어난다. ⓒ 허시명

 
그런데 술을 권하는 것과 술잔을 돌리는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술을 내릴 때 굳이 자신이 마시던 잔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술자리에서 술잔은 개인별로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구분되지 않고, 내 입술의 침이 묻은 술잔을 상대에게 권하는 일은 비위생적이다. 권하는 이는 흥에 넘쳐서라지만, 그로 인해 감기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 병원균을 전파하는 경로가 되기 때문이다.

술을 권한다면, 상대방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거나, 별도의 새 잔에 따라주면 그만이다. 받는 입장에서는 "제 잔에 받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잔을 비우거나 버리고 받으면 된다. 이를 위해 퇴주잔으로 쓸 수 있는 물잔을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다. 하지만 술버릇은 이성이 배제되는 경우가 허다해서, 제 잔을 막무가내로 권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 술잔이 돌아다니는지 술자리를 가만히 살펴보자.

자신의 술잔이 비었을 때, 스스로 잔을 채우는 일을 금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작(自酌)하면 삼대(三代)가 재수없다'거나, '마주보고 있는 사람이 앞으로 재수가 없어진다'다는 말까지 해댄다. 그런 관념을 가진 이들은 상대방이 혼자 술잔을 채우는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 술병이나 술잔에라도 손끝을 댄다. 함께 마시면서, 술을 혼자 따라 마시도록 놓아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큰 결례라고 여겨서다.

스스로 잔을 채우려 들지 않다보니, 잔이 비면 잔을 들어 다른 사람에게 술잔을 넘기게 된다. 술은 마셔야겠고, 빈 술잔은 채울 수 없으니, 술잔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잔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이상한 결론이지만, 결국 술을 빨리 채우지 못한 주변인의 무심함이 술잔 돌리기를 부추기는 셈이 된다.

당연히 술이 센 사람이 술잔을 잘 돌린다. 그렇다면 술잔이 돌아다니지 않게 하려면, 상대방의 빈 잔이 탁자에 놓이기 전에 곧바로 술잔을 채워야 한다. 잠깐이라도 상대방이 빈 술잔을 들고 망설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빈 잔이 내게 넘어오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술잔을 비는 것을 계속 주시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좋은 방법은 첨잔(添盞)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첨잔을 꺼리는 관습이 있다.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첨잔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들에게는 부족한 술잔을 채워서, 상대방이 넉넉히 마시도록 배려하는 문화가 있다.
 

성균관 석전제를 지내기 위해서 채워진 술단지와 작. ⓒ 허시명

 
우리는 제례에서 죽은 영혼과 소통할 때나 첨잔하고 첨작(添酌)한다고 여긴다. 나라에서 행하는 종묘제례나 석전제, 고을에서 행하는 서원 제사, 그리고 문중 시제에서 술을 따르는 행위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초헌은 첫 번째 잔을, 아헌은 두 번째 잔을, 종헌은 마지막으로 술을 올리는 행위이고 이를 행하는 이들을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라고 부른다. 세 번 술을 올리고 더는 올리지 않는데, 초헌, 아헌을 할 때는 잔을 채우지만, 종헌을 할 때는 술을 술잔에 7할 정도로 좀 부족하게 따른다.

그리고 메에 수저를 꽂고, 젓가락을 어육에 가지런히 올려서 혼령이 음식을 드실 수 있도록 하는데 이를 삽시정저(揷匙正著)라고 한다. 첨잔을 할 때는, 세 번째 술잔에 술을 세 번에 나눠 넘칠락말락 할 정도로 따른다. 첨작과 삽시정저를 합해 유식(侑食)이라고 한다. 이는 조상께 술을 권하는 의례이자, 더 이상 술을 올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첨잔을 제례 절차의 하나로 여기다보니 첨잔을 술자리에서 그다지 행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술을 첨잔하려 들면, 재빨리 잔을 비우고 나서 술을 받기도 한다. 이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첨잔받는 자신이, 혼령 취급을 받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술잔 돌리기를 줄이려면, 자작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회식에서 첫잔을 누군가가 따라주는 것은 상례다. 모두가 잔이 비어있으니, 누군가 술병을 들면 고르게 술잔을 채워주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두 번째 잔부터는 술 마시는 속도의 차이가 존재하니, 자신의 능력껏 스스로 술잔을 채워 마시는 게 바람직하다. 또 하나 첨잔하는 문화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술잔 비는 것을 줄이고, 빈 잔이 돌아다니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불결한 술잔돌리기를 줄이려면 술자리 문화를 바꿔야 한다. 어느 술 회사에서는 술자리에서 오른편에 앉은 사람이 왼편에 앉은 사람의 술잔을 채우는 것을 책임진다고 한다. 오른손으로 술병을 잡고 따르기 때문에 시계 방향인 왼편에 앉은 사람에게 따르는 게 편해서다. 이는 술잔에 술이 떨어지지 않게 하여 많이 마시게 하려는 술 회사의 책략이겠지만, 그 속도만 조절하면 술잔 돌리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술잔이 돌아다니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의 하나로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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