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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보훈처장이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를 안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1970년 이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에 한해서 공적을 재조사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 반드시 전 기간 전수조사 해야 한다."

독립유공자 공적을 재조사하겠다는 보훈처의 발표에도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의 반응은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 1970년 이전 서훈받은 독립유공자에 한해 조사하겠다고 한 피우진 처장의 단서 때문이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윤교병 지사의 손자인 윤 전 지부장은 "가짜 독립유공자는 1980년대 이후가 더 많다"며 "그 당시 3대인 손자가 유공자 등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랫동안 무연고로 있던 유공자의 가짜 후손으로 많이들 등록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가짜 유공자는 100명이 넘을 것"이라며 "국내외 동명이인 애국지사, 과거 보훈처 직원 등 우선순위를 정해 조사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윤 전 지부장은 지난 10일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가짜 독립유공자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공적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는 기자회견문을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대전 시민단체들, "독립운동가 서훈, 전수 재조사 실시" 요구). 

지난 16일 윤석경 전 지부장을 대전 서구 괴정동 자택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피우진 보훈처장 발표 환영하지만... 제대로 전수조사해야"
 
10월 16일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을 자택에서 만나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 하겠다"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10월 16일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을 자택에서 만나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 하겠다"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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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요구한 대로 16일 국정감사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독립유공자 공적을 전수조사 하겠다'고 밝혔다. 
"일단은 지속해서 요구해온 '전수조사'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환영한다. 전수조사를 요구했던 국회의원들의 뜻이 국민의 뜻이었고, 내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안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우진 처장이 '1970년 이전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에 한해서 단계적으로 공적을 재조사하려 한다'고 답변했는데, 그렇게만 해서는 절대 안된다. 반드시 전 기간에 대해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관련기사: [긴급기고] "1970년 이전 독립유공자만 조사"? 보훈처의 뻔히 보이는 '잔꾀').

70년대 이전에도 '가짜 독립운동가'들이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80년대 이후가 더 많다. 80년대 이후에는 3대(손자대)에서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오랜 기간 무연고로 있던 유공자들을 상대로 뒤늦게 가짜 후손으로 등록하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가짜 독립운동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국가원호처(1984년 12월 31일 '국가보훈처'로 명칭 변경) 내부에 조력자나 브로커들이 있었을 거다.

또 피우진 처장의 '전수조사' 발언은 환영할 일이지만 보훈처에서만 전수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 독립운동 연구자나 교수, 광복회 원로회원이나 민간단체 전문가들을 포함해 함께 해야 한다."

- 독립유공자의 공적, 어떻게 조사해야 할까?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1만 5천명 전체를 재조사 하는 게 방대하고 어렵다고 핑계를 대는데, 나름 순서를 짜서 조사하면 된다.

첫 번째는 국내외 동명 애국지사 대상 조사, 두 번째로 당시 원호처 및 보훈처 담당 실무자인 주사보, 주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 세 번째로 인우보증(주변 사람들이 보증함)으로 애국지사가 된, 특히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에 대한 조사, 네 번째로 이미 원호처 내에서 가짜 애국지사로 거론됐지만 실무자가 윗사람에게 보고만 하고 퇴임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이관된 명단을 우선 조사하면 된다. 이외에도 현재도 귓전으로 나돌고 있는 가짜 애국지사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육하원칙을 적용한 가짜 애국지사 신고제를 실시, 몇천만원 포상금을 걸더라도 가짜 애국지사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피우진 처장이 독립유공자들의 명예를 제대로 지켜내는 첫 번째 보훈처장이 되기를 바란다."

- 보훈처가 최근 10년간 39명의 국가유공자 서훈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유공자가 1만 5천여명이고, 현재 국가로부터 보상받는 사람이 7천여 명이다. 몇몇 공무원들로 인해서, 그리고 '가짜 유공자'들로 인해서 우리의 혈세가 1년에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 그런데도 보훈처는 이를 방치하고 지금까지 전수조사를 하지 않았다.

진짜 독립운동을 한 내 할아버지가 현충원 지하에 묻히셨는데, 그 옆에 가짜가 누워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나? 가짜 유공자를 찾아내는 것은 지하에 묻혀 있는 애국선열들의 바람이자 살아 있는 후손들이 이루어내야 할 적폐청산이다. '가짜'는 이번에 취소된 39명뿐만 아니라 100명은 넘을 것으로 여겨진다."
  
"광복회 회원 사이에서도 '아무개는 가짜' 말 있었다"
 
지난 10월 10일 오후 2시,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대전지역 27개 단체와 함께 진행된 '독립유공자 서훈 전수조사 즉각 실시 요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는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
 지난 10월 10일 오후 2시,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대전지역 27개 단체와 함께 진행된 "독립유공자 서훈 전수조사 즉각 실시 요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는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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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유공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광복회 대전지부장을 하던 시절(2005~2013), 우리 지부만 해도 주변으로부터 '아무개는 가짜다', 이런 말이 많이 나왔다. 특히 가짜 독립운동가 이야기는 그 집안의 입으로부터 '우리 아무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으셨다', '애들까지 장학금을 받고, 연금을 받고 있는데, 그분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다'라고 말이 흘러나온 경우가 많아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당시 대전충남지부 회원이 750명 정도였는데, 그때 '가짜'로 거론된 인원이 10여 명 정도였다. 그러니 전국적으로는 100명은 넘을 것이다.

(가짜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취소된 김태원의 유족인) 김정인 전 광복회 대전지부장의 경우도, (대전) 김태원의 친인척들이 '김태원씨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을 것 같고, 했더라도 등급을 너무 높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에는 설마설마했었다.

내가 광복회 대전지부장을 하면서 (김정인 전 지부장이) '가짜 유족'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보훈처가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김태원씨를 넣어달라"고 세 번이나 보훈처에 추천을 했다. 그런데도 보훈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지 않았다. 그걸 보면 보훈처도 김태원씨가 가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본다. 아마도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진상규명 활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가짜 유공자'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미 해방 전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그분들을 유공자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원호처(현 보훈처) 공무원들이 개입을 했다. 돌아가신 분들이 평북에 있다던가 이북에 있으면 대한민국의 동명이인이나 비슷한 사람에게 정보를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가짜 독립운동가'를 만들 수 있으니까 브로커도 생겼을 것이다. 당시 원호처 공무원들, 그러니까 주사보나 주사 같은 실무자들은 박봉이었다. 그들은 그런 공정을 잘 알았기 때문에 동명이인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을 거다."
  
- 보훈처는 왜 가짜 유공자 발굴에 소극적일까?
"보훈처의 위상이라든가, 전수조사가 방대하다든가, 선배 공무원들의 잘못된 것을 들춰야 하니까 자꾸 미루고, 그렇게 미루다 보면 담당하는 사람은 정년이 되어버리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인수인계가 잘 안 되는, 그런 문제가 있었다. 심지어는 보훈처 공무원들에게 정보를 전달해도 조사를 하지 않았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가짜 유공자' 찾는 일이 자기 직무다. 가짜 독립유공자를 국민 앞에 떳떳하게 재수사하고 완전히 밝혀내 국민들이 다시는 보훈처를 의심하지 않게 해야 한다."
 
10년 만에 조부의 항일운동 기록 찾아내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지부장은 누구?
 
1978년 12월 5일자 "조부(祖父)의 독립운동 재판기록 찾은 집념의 손자 대전 가장동 윤석경"이란 제목의 <동아일보> 기사.
 1978년 12월 5일자 "조부(祖父)의 독립운동 재판기록 찾은 집념의 손자 대전 가장동 윤석경"이란 제목의 <동아일보> 기사.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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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지부장은 2005년 7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을 맡았다.

윤석경 전 지부장의 조부 윤교병(尹喬炳, 1881-1930) 선생은 1919년 말경 상해 임시정부(臨時政府)의 연락요원인 나상필(羅相泌)과 함께 충남 일대를 중심으로 임시정부에 송금하기 위해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던 중 1921년 4월 일경에 피체되어 2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윤교병 선생은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1978년 12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윤 전 지부장이 조부 윤교병 선생의 독립운동 재판기록 찾아낸 사연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는 "영원히 세상에 묻힐 뻔한 자기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사를 찾아나선 지 10년 만에 항일독립운동에 관한 재판기록을 찾아낸 「집념의 후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래는 기사의 일부다.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할아버지의 항일기록을 확인하려고 마음먹은 윤씨는 69년부터 조부인 윤교병씨(1919년 당시 41세)의 업적을 찾기 위해 각종 독립문서관계 문헌을 뒤적이고 각 신문사, 국사편찬위 광복회 등을 수없이 찾아보았으나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이를 찾아내야겠다고 결심한 윤씨는 실망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빚까지 얻어 비용을 써가며 관계기관을 방문, 기록을 찾아오다 지난 달 15일 드디어 부산 정부보존문서기록소에서 나흘동안 독립관계기록을 뒤진 끝에 조부의 재판기록을 찾아 내기에 이르렀다."

 

태그:#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 #윤교병, #국가보훈처,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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