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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국장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정운현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를 추적보도한 바 있다. 피우진 보훈처장의 '1970년 이전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 방침을 비판하는 정운현의 긴급기고를 싣는다.... 편집자말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16일 열린 보훈처 국감에서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16일 열린 보훈처 국감에서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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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어제 여러 경로를 통해 분에 넘치는 격려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날 국가보훈처 국감에서 피우진 보훈처장이 독립유공 포상자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답한 것과 관련해서입니다(관련기사: 피우진 보훈처장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 하겠다"). 저는 1990년대 초부터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를 집중보도한 바 있습니다.

보훈처장의 전수조사 계획 발표는 만시지탄이지만 다행한 일입니다. 평소 저 역시 독립유공 포상자 전면 재심사를 주장해오긴 했습니다만, 저보다는 김진성 독립지사의 장남 김세걸 선생, 김영진 광복회 대전지부 감사, 심규상 오마이뉴스 기자(대전주재) 등 세 분이 치하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관련기사: 20년 만에 밝혀진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의 진실).

참, 어제 연락을 해온 독립유공자 단체의 간부 한 분과 통화하다가 해괴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 봤더니 그 분의 얘기가 사실이더군요.

처장이 바뀌면 뭐하나... 문제는 보훈처의 '말뚝 공무원들'

어제 보훈처 국정감사에서 피우진 처장은 가짜 독립유공자 등 독립유공자 포상을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해결책으로 피 처장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허위 독립유공자를 가려내기 위해 1970년 이전 포상자를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조사하려고 한다."

피 처장의 이같은 답변에 대해 제가 돌려주고 싶은 말은, '보훈처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입니다. 다시 말해, 보훈처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지금도 말장난으로 잔꾀를 부리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언 발에 오줌 누기'요,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의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새로 부임한 보훈처장과 차장은 보훈 업무에 밝은 분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분들이 아무리 파악을 한다고 해도 업무에 문외한들이니 해묵은 내부의 속사정을 잘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는, 오랫동안 보훈처에서 잔뼈가 굵은 직업 공무원들입니다. 보훈처 내의 다른 분야는 제쳐두고 일단 독립유공 공훈심사 및 포상을 담당하는 부서만 얘기하겠습니다.

보훈처 내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예전에는 보훈선양국 산하 공훈심사과였습니다(지금은 국이 보훈선양국, 보훈예후국 둘로 나뉘어 보훈예우국 산하의 공훈발굴과가 담당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과 같은 '가짜 독립유공자' 사태가 생기기까지는 담당부서의 실무자, 과장, 국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무직인 처장, 차장이야 1~2년 정도 앉았다가 가는 경우가 많지만 실무 담당자는 한 마디로 '말뚝'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처신과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현재의 결과를 가지고 추정해보면, 이들은 기관장에게 실상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사고가 발생해도 근원적인 해결보다는 쉬쉬하며 덮기에 급급했다고 보여집니다. '가짜 독립운동가 김진성' 건이 20년 만에 해결된 것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여기에 부연설명을 좀 보태면 이렇습니다(관련기사: 국가보훈처, 가짜 독립운동가 4명 서훈 취소).

 1976년 이전 독립유공자는 불과 607명... 1990년에 대거 포상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가짜 유공자 등 문제의 인물이 섞여 있는 것은 심사과정에 문제(실수, 비리 등)가 있었다는 얘깁니다.

독립유공자 포상은 1962년 박정희 군사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실시했는데요, 초창기에는 문교부(1949~62), 총무처(1963~1976) 등에서 맡다가 1977년 현 보훈처의 전신인 원호처에서 이 업무를 맡은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에 부통령 이시영과 함께 본인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1등급)을 '셀프서훈'함.)

물론 초창기 심사 때는 제도의 불비 등으로 간혹 실수(오류)가 발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1960년대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심사 오류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1990년 상훈법이 개정돼 종래의 3등급(대한민국장-대통령장-국민장)에서 5등급(대한민국장-대통령장-독립장-애국장-애족장)으로 등급(훈격)이 확대 재조정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해에 현재 전체 포상자의 20%가 넘는 3615명이 대거 포상을 받았습니다.
 
역대 독립유공자 포상자 현황(보훈처, 2018.8.15)
 역대 독립유공자 포상자 현황(보훈처, 2018.8.15)
ⓒ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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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피우진 보훈처장이 '1970년 이전 포상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집니다.

피 처장은 이날 답변에서 '전수조사'를 분명히 언급했는데요, '전수조사'란 1962년 이후 현재까지 독립유공 포상자 1만5052명(2018.8.15. 현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말합니다. 해묵은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또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마땅히 전체 포상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초창기 문교부(1949~62)가 심사한 것은 217건, 총무처(1963~76)가 심사한 것은 390건으로 이를 다 합쳐도 607건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체 포상자 1만5052명의 4%에 불과한 수치입니다. 한 마디로 한 줌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이걸 조사하면서 '전수조사' 운운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장난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가짜 독립유공자' 의혹은 500명 정도 선... 대다수는 문제 없어

그렇다면 1970년 이후 포상자들은 과연 문제가 없을까요?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초창기 포상자 가운데 문제가 된 인물은 주로 친일경력자들입니다. 문제는 1970년 이후 포상자 가운데서도 의혹을 제기할 만한 포상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또 아직도 친일 경력자 몇 명은 여전히 서훈이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동명이인 포상자(같은 이름의 엉뚱한 사람이 포상 받은 경우), 변절자(적에게 귀순, 투항자), 서류미비 혹은 자격 미달자, 또 타인의 공적을 가로챈 혐의가 짙은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적절한 때가 되면 제가 파악한 이들의 명단과 신상을 전부 공개하겠습니다.
  
지난 8월 13일 광복회 대전지부 회원들이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를 주장하며 국가보훈처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지난 8월 13일 광복회 대전지부 회원들이 독립유공자 전수조사를 주장하며 국가보훈처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광복회 대전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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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피 처장이 1970년 이전 포상자를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조사하려고 한다고 밝혔는데 이것 역시 소극적인 태도입니다.

물론 1만5천명이 넘는 전체 포상자를 하루아침에 조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설사 피 처장의 말대로 '단계적으로' 조사한다고 해도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유관순 같은 분들처럼 절대 대수의 포상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의혹을 살 만한 인물은 최대 500명이 넘지는 않을 걸로 추정됩니다. 일단 이들을 모집단으로 추려내 조사를 벌인다면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보훈처가 갖고 있는 '포상심사기준'을 엄정하게 적용한다면 더더욱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아울러 현재 보훈처가 비공개로 하고 있는 심사기준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쩌면 이번 사태의 발단은 심사기준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끝으로 지적할 점은 이런 일을 보훈처 내부인사들에게 맡긴다면 그 결과를 믿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보훈처가 해온 행태로 보면 대상자 축소 및 왜곡, 제 식구 봐주기 등이 심히 우려됩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재심사를 위해서는 외부인사가 주도하는 별도의 심사위원회 구성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심사위원으로는 독립운동사 전공자는 물론 향토사학자, 개인연구자 등 민간 전문가들도 광범위하게 포함시켜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라도 보훈처가 대오각성하여 환골탈태하길 촉구합니다.

태그:#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조사, #피우진 보훈처장, #김세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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