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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첫 번째 펭귄' 이야기를 차용하는 광고를 본다.

첫 번째 펭귄 이야기는 이렇다. 빙하 위에 펭귄 무리가 있다. 바다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사냥하고 싶지만 천적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때 한 펭귄이 나서 용감하게 물속으로 뛰어든다. 내가 먼저 확인해보리다! 첨벙.

첫 번째로 뛰어든 펭귄은 바다를 헤엄치며 천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다. 아무도 없어! 괜찮아! 그제야 나머지 펭귄들이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용감한 첫 번째 펭귄 덕분에 나머지 펭귄들이 사냥할 수 있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우리도 첫 번째 펭귄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높이 받들며 살아보자는 취지다. 

우리 사회는 스타트업계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을 '첫 번째 펭귄' 정도로 보는 것 같다. 미래를 개척하는 혁신가들! 지금의 고난을 딛고 패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선도자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향한 시선에는 젊은이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 집약된 듯하다.

오후 11시에 퇴근하고 월 150만 원을 받으면서도 일에 열정을 불태우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일하는, 사무실에는 레고와 피겨들이 진열된, 서로를 김 부장님, 박 차장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제임스, 에밀리라고 부르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희망으로 오늘의 고난을 극복해나가는 젊은이들. 과연 스타트업의 진짜 모습도 그럴까?  

스타트업의 진짜 모습
 
 스타트업 거리축제
 스타트업 거리축제
ⓒ 디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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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스타트업 거리 축제를 기획하는 팀에서 일했다.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 수십 곳의 스타트업들을 만났다. 적게는 한두 번, 많게는 십여 회에 가깝게 미팅을 진행하며 그들의 성취과 고난을 곁눈질했다.

그 행사를 반년 넘게 준비하며 스타트업 사람들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 이 단편소설이 나왔을 때 다들 카카오톡으로 링크를 보내며 찬탄을 마지않았다.
 
 장류진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이 실린 <창작과 비평> 2018년 가을호
 장류진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이 실린 <창작과 비평> 2018년 가을호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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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보셨어요?", "격한 공감", "이거 우리 이야기인데?"가 그들의 주요 반응이었다. 소설이 실린 홈페이지 링크 조회 수가 15만 회를 넘었다고 하니 이 소설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알 만하다. 소설 제목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다.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으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 작품이다(소설 보기).

주인공 안나는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한 스타트업에서 일한다. 이 스타트업은 중고거래 플랫폼인 '우동마켓'을 운영 중인데, 하루에 수십 건의 물건을 올리며 물을 흐려놓는 이용자, 이름도 특이한 '거북이알'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최대 난제다. 대표는 고민 끝에 안나에게 거북이알을 만나보라고 지시하고, 거기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가 스크럼, 트렐로, 버그 등 스타트업에서 쓰는 용어들을 익숙하게 구사하는 점도 놀랍다. 매일 약속된 시간에 선 채로 짧게 서로의 일을 공유하는 '스크럼'이 어쩌다 스타트업 대표의 조회가 되었는지, 수평적 문화를 위해 서로의 영어 이름을 부르기로 한 게 어떻게 의미를 잃게 되었는지 시시콜콜 지적한다. 문학적 수사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를 그대로 써서 소설을 즐기지 않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스타트업 용어가 많은 단체 카톡방
 스타트업 용어가 많은 단체 카톡방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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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약자들의 은근한 연대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한 첫 번째 이유는 '청년'의 정의가 사람들 입맛대로 해석되지 않아서다. 소설 속 젊은이들은 굉장히 불쌍하지도 혹은 무모하지도 않다. 스타트업이라고 꿈과 희망에 부풀어 열정을 태우지도 않고 대기업이라고 어깨 펴고 다니지도 않는다.

청년을 '포기세대'라고 불쌍해하는 것도 지겹고 열정이 없다고 타박하는 것도 신물이 난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서 그런지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소설 속 청년은 그런 역할을 맡지 않는다. 안나는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지만 대기업 직원, 혹은 공공기관의 회사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포부도 소박하다.
 
"저희 대표나 이사는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겠죠? 어떻게 돈 끌어오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3%의 성공한 스타트업이 될지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느라 걱정이 많을 거예요. 전 퇴근하고 나면 회사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거북이알'이 다니는 카드사 회장이나 안나가 다니는 스타트업 대표나 비슷하다. 스타트업 대표는 45분씩 스크럼을 하고 '회사가 잘 되면 급여를 올려주겠다'는 말로 천재 개발자를 꼬드긴다.

인스타 셀럽인 카드사 회장은 홍보팀이 자기보다 먼저 아티스트의 내한 소식을 공지했다며 급여를 '포인트'로 지급하는 비상식적인 일을 저지른다. 스타트업이라고 더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대기업이라고 상식적인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장년이 된 그들이 청년기를 보낸 방식이 있듯 지금의 청년들도 현대의 상황에 맞춰 제 나름대로 노하우를 찾아갈 뿐이다. 거기엔 대단한 미학도 가슴 미어지는 스토리도 없다.

이 소설을 좋아한 두 번째 이유는 시대의 약자들이 은근슬쩍 연대하는 방식이 아름답게 담겨서다.

소설 속 안나는 대표가 만만히 보는 직원이다. 게다가 상전인 천재 개발자 케빈에게 치이며 산다. 우동마켓에서 물건을 파는 거북이알은 회사에서 포인트로 월급을 받고도 굴욕감을 참으면서 버틴다. 케빈은 '개발자로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적은 월급에 많은 업무를 견디며 산다.

스타트업 종사자도, 천재 개발자도, 대기업 직원도 다 저마다의 설움이 있다. 그럼에도 설움을 속으로 삼키며 조금씩 서로를 생각해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이 따뜻하다. 아주 조금, 은근슬쩍, 좁은 지하철에서 서로를 위해 다리를 모아주는 정도의 예의. 안나는 거북이알에게서 산 레고를 케빈에게 선물하고, 대표에게 기획자 대신 개발자를 뽑아달라고 요청한다. 거북이알은 회사에서 받은 포인트로 처음 만난 안나에게 커피를 산다.

요즘 세상이 그렇게 살기 막막하다지만, 그 안에서 청년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위한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 거북이알은 리니지를 하고 거북이를 기르며, 케빈은 레고를 가지고 놀고, 안나는 아껴둔 연차를 붙여 홍콩으로 2박 3일 여행을 꿈꾼다. 소설의 마지막처럼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면서.
  
 첫 번째 펭귄
 첫 번째 펭귄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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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나는 '첫 번째 펭귄'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첫 번째 펭귄은 용감하게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사실 다른 펭귄들에게 떠밀려 물속에 '빠진 것'이라는 이야기.

용감하게 뛰어들었든 누군가에게 떠밀렸든, 물속으로 빠진 이상 첫 번째 펭귄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수영으로 소소한 재미나 느껴보자, 이번 연휴를 붙여 근처 빙하로 여행이나 떠나볼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 라고.

창작과 비평 181호 - 2018.가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창비(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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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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