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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 나이에 2018년 4월부터 7월까지 필리핀 바기오에서 어학 연수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 기자말

첫날 테스트와 오리엔테이션으로 사람의 혼을 빼놓았는데 다음날부터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침 8시, 운동장에서 상견례가 있었다. 교사와 연수생이 서로 마주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유니폼을 입은 교사의 수는 100여 명. 1:1 수업이 많으니 학생과 교사의 숫자가 비슷한 것은 당연한 일. 교사와 학생의 이름이 호명되면 함께 강의실로 입장하는 것으로 어학연수가 시작되었다.
 
교사와 연수생의 상견례 모습
▲ 상견례 교사와 연수생의 상견례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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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로그램은 주간 6시간과 야간 1시간까지 모두 7시간. 오전에 말하기(Speaking)과 쓰기(Writing), 오후는 듣기(Listing), 관용구(Idioms), 그룹 스피킹(Group Speaking), 읽기(Reading) 그리고 야간에는 원어민 수업(Native Speaking)이 진행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저녁 8시. 내가 수강하는 과정이 세미 스파르타여서 이 정도이지, 스파르타 과정은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1시간의 수업이 진행된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수업인 것이다.
 
나의 수업 시간표
▲ 시간표 나의 수업 시간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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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수업, 자율학습을 빙자하여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수업이 진행되었던 비정상적인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공부 시간과 비례하여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지 알 수 없지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어학원도 스파르타 프로그램을 신청한 연수생도 경이롭다.

어학원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베트남 심지어 중동이나 아프리카 출신 학생도 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영어를 습득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 영어 실력이 젊은이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변화를 위한 중요한 조건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워킹 홀리데이

첫날 대부분 시간이 자기소개로 일관되었다. 연수생들의 국적은 대부분 일본, 대만,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온 20대 젊은이. 그들의 직업은 학생, 회사원, 간호사, 엔지니어 등 다양하지만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같았다.

국적 여부를 떠나 대부분 연수생들은 연수가 끝나면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는 것이다. 만 30살이 넘으면 워킹홀리데이 자격이 상실된다. 그들이 이주하고 싶은 나라는 호주 아니면 캐나다이며, 필리핀은 워킹홀리데이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곳.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연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품.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어 행복을 찾아 떠나야만 했던 주인공 '계나'의 이야기가 필리핀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우리나라와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은 국가는 23개국으로, 최근 5년간 약 20만 명이 이를 이용해 외국으로 나갔다.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젊은이들의 꿈이 호주나 캐나다에서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호주나 캐나다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땅이 될 수 있을까!"

연수생의 하루 일과

어학원에서의 생활은 단조롭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아침 운동 및 식사, 8시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대학처럼 시간표대로 강의실을 옮겨 다닌다. 강의동에는 교도소 독방 같은 작은 방이 밀집되어 있으며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교사와 연수생이 마주 보고 수업이 진행된다. 교사들의 연령층은 20대 초반 젊은이부터 초로의 원어민까지 다양하였으며 대학 전공과 어학원의 시험을 거쳐 선발된다고 한다.
 
1:1 수업 강의실
▲ 강의실 1:1 수업 강의실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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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대화를 하고 강의를 듣자니 죽을 맛. 우리말로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데 내 생각을 영어로 표현해야 하니. 머릿속에 우리말과 영어 단어가 맴돌지만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1:1 수업이라 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져야 하는데, 교사와 가급적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교재를 보는 척(?) 하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 되었다.

그룹 수업은 교사가 교재를 중심으로 질문을 하면 학생들이 답하는 형태. 사전에 답변을 준비는 하지만 번번이 엉뚱한 말을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을 뿐.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연수 기간과 비례하여 실력이 늘 것이라는 믿음과 젊은이들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수준에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룹 수업 모습
 그룹 수업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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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끝내고 다시 강의실로. 원어민 강사가 동영상을 보여주며 연음, 음절, 악센트를 강조하지만, 내용조차 이해되지 않은 나는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 대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밤 8시에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 라운지(도서관)로.

늦은 시간인데도 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큰 결심을 하고 결정한 어학연수여서 진지함과 열의가 넘쳤다. 지금의 어려움은 극복해야 할 과정. 젊은이들의 노력과 고통이 그들의 인생에서 좋은 밑거름이 되어 풍성한 열매 맺는 계기가 되었으면.
 
라운지에 공부
▲ 라운지(도서관) 라운지에 공부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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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은 문법과 어휘가 영어 공부의 전부였는데 영어 회화가 낯설기만 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책만 뒤적이다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영어권 국가에서 원어민과 공부하면 회화 실력이 향상되리라 생각하였는데. 그래도 50대 후반에 혼자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젊은이들 틈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

태그:#필리핀, #어학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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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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