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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에 참여한 천안 각 시민단체들 대표들이 추도하고 있다.
▲ 위령제 위령제에 참여한 천안 각 시민단체들 대표들이 추도하고 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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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가 무사히 끝났다. 지난 10월 2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위령제준비위원회(이하 위령제준위)는 직산현관아 뒤 공터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위령제(이하 위령제)'를 순조롭게 마쳤다. 당일 아침 비가 세차게 쏟아져 관계자들은 걱정스러워했으나 현장 사전답사를 진행하기로 한 오전 9시 30분경부터는 거짓말같이 비가 그치고 햇빛이 비쳤다.

위령제를 시작하기 전 매장 추정지 사전답사에는 약 20여 명이 참여했다. 매장 추정지를 최초로 알려준 윤백수 전 농협조합장과 황병용 유족, 이규희 국회의원, 육종용 천안시의원, 관계 공무원, 위령제 관계자 등이 함께 산을 올랐다.
 
 위령제를 지내기 전 사전답사에 참여한 일행이 유족이 증언한 매장 추정지를 둘러보고 있다.
▲ 사전답사   위령제를 지내기 전 사전답사에 참여한 일행이 유족이 증언한 매장 추정지를 둘러보고 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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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추정지에 도착해서 윤백수 전 조합장은 "약 20년 전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 일반무덤이라면 이런 형태로 있을 수 있겠나. 이용길 위원장이 물었을 때 혹시 여기일지 모르니 발굴해보면 어떻겠냐고 한 거다. 오늘 다시 현장을 살펴보고 혼백 위로까지 해주니 고마운 일"이라며 감회에 젖은 듯 말했다.

이용길 위원장은 "위치나 형태가 매장지일 가능성이 높다. 충남도와 천안시에도 이 사실을 공문으로 보냈다. 이곳뿐 아니라 덕고개와 삼은 저수지, 마정리 등에도 희생기록과 증언이 있다. 다음 달 박선주 유해발굴공동조사단장이 내려와 살펴보기로 했고 법률적으로 문제없으면 시굴해볼 예정"이라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희생자들을 위한 제사는커녕 술 한 잔 따른 일이 없어 위령제를 지내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유력한 매장 추정지인 무덤떼. 시굴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다.
▲ 무덤떼  가장 유력한 매장 추정지인 무덤떼. 시굴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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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는 천안 해원(解寃)의 자리"

위령제를 시작하기로 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사전답사 전만 해도 장대비가 쏟아졌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해진 하늘에 참석자들은 상서롭게 여기며 기뻐했다.

가장 먼저 원혼을 위로하는 살풀이춤을 올렸다. 이후 전통제례에 따라 위령제를 진행했다. 추도사에서 이용길 위원장은 "이 자리는 천안 해원(解寃 가슴 속에 맺힌 원통함을 풂)이다. 천안에서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원통한 한을 풀어주는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해윤 충남작가회의 부회장이 추도시를 낭송했다.
 
 원통한 원혼을 위로한다는 의미로 살풀이춤을 진행했다.
▲ 위령제 살풀이춤  원통한 원혼을 위로한다는 의미로 살풀이춤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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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제주를 올린 윤백수 전 조합장은 인사말에서 "이 자리는 원혼을 달래주는 자리로 의미가 깊다. 불행히 직산에서 동족 살인이 있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부끄럽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너무 늦지 않았나 싶었는데 위령제를 마련하고 협조해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지역 모든 사람의 가슴이 후련하도록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위령제 일정을 이틀 전 알게 된 황병용 유족도 바쁜 일을 제쳐두고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그동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조사 결과로 소송에 임해서 대법원까지 진행해 2013년 9월 승소했습니다. 당시 천안시는 진화위 조사 사실을 모르고 있더군요. 그동안 쉬쉬하며 말 못 하고 계셨던 분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천안시와 천안시의회 추진 의사 나타내

위령제에는 약 40명이 참석했다. 직산읍 군동리 마을의 존경 받는 두 어르신 윤백수 전 조합장과 황서규 문화해설사의 참여가 뜻깊었다. 윤백수씨는 지역 어른으로서 파평 윤씨 태위공파 후손으로 매장 추정지를 최초로 알려준 증인이다. 황서규씨는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30년간 재직했고 천안향토사연구회 연구위원으로 오래도록 봉직한 지역의 어른이다.

천안시 공무원도 참석했다. 박재호 자치민원과 자치행정팀장은 "조례를 만들면 조례를 근거로 발굴용역을 진행할 수 있으며 조례 제정 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관심을 표현한 김선태 천안시의원은 위령제 이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천안시가 추진하고 의회가 같이할 방법으로 조례안 발의를 생각하고 있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의원들과 상의하고 시의 협조가 필요하다. 희생자가 시민이다. 민간인학살은 국가폭력이다. 시민의 억울함을 풀고 재발이 안 되게끔 지방정부가 충분히 알고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일정상 사전답사만 참여한 육종용 천안시의원도 "김선태 의원과 공동발의할 예정이다. 유해발굴부터 단계적으로 도울 부분을 돕겠다"고 밝혔다. 연락받지 않은 이규희 국회의원도 관심을 나타내며 사전답사에 함께하고 돌아갔다.
 
[미니 인터뷰] 이용길 위령제준위 위원장
- 위령제를 준비하게 된 계기는?
"아산 설화산 발굴 때 천안시민단체로 참여하는 과정 중 천안에도 민간인학살 기록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빨리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6.25사변일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려고 영화 <해원> 공동체 상영을 진행했다.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 상영관이 관객으로 꽉 찼다. 그래서 천안 해원(解寃)도 해야 한다고 의견이 모여 10월 말 위령제를 지내자고 계획했고 그 전에 현장을 찾아나선 것이다. 아산 유해발굴 과정을 보면서 천안시민단체로서 책임성이 크게 작용했다."

- 증인과 유족을 찾는 과정이 꽤 빠른 진척을 보였는데.
"현장 확인과 유족을 찾는 과정이 비교적 신속했다. 황서규 어르신의 소개로 윤백수 어르신을 만나서 빨리 진전됐다. 경로당을 돌며 탐문을 계속하던 중 황씨 형제 죽음을 알려준 어르신이 있었고 곧바로 유족을 수소문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앞으로도 지역 어르신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는 일을 하겠다."

- 매장 추정지로 보이는 근거들이 많은데 만일 이곳이 매장지가 아니라면?
"이 지역에서 비극이 일어났고 매장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직산현관아 뒤 성산에서 발견된 매장 추정지는 세 곳이다. 무덤떼 현장과 유족이 증언한 장소, 그리고 폐금광이다. 함부로 파 볼 순 없어서 근거로 추정하는 것이다. 유력한 매장 추정지를 발견했고 또 진화위 기록에도 없는 덕고개 등 새로운 매장 추정지를 알게 됐다. 아산도 매장 추정지가 확실하지 않아 5차 발굴까지 진행하는 등 여러 곳을 팠다. 누구도 천안의 이 역사적 상흔들을 문제제기하거나 접근한 적이 없다. 희생자들과 매장 추정지 전수조사가 매우 중요하다."

- 위령제의 의미가 크다면 그 이유는?
"민간인학살이 일어난 곳에서 70년 가까이 땅속에 묻혀 원통한 원혼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위령제를 지낸 날이 2년 전 10월 29일 박근혜 퇴진 민중궐기 첫 집회일 하루 전이다. 우연히 날짜가 그런 데다 윤백수 어르신은 "영혼도 감동한 듯 먼저 비가 뿌려 슬픔을 나타내고 제 지낼 땐 화창하다"며 기쁘게 말씀하셨다. 지역에서 존경받는 두 어르신의 참여가 고마웠고 위령제 날 제주를 올릴 유족도 참석했다. 날씨까지 받쳐주어 논란의 소지가 없었고 무사히 위령제를 마쳐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안아산신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천안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위령제, #해원, #직산현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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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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