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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52주 동안, 주당 한 권의 책을 읽고, 책 하나당 하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52권 자기 혁명'을 제안한다. 1년 뒤에는 52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 기자말
 
 노자가 윤희에게 도덕경을 써주었다는 함곡관. 옛 모습은 간 데 없고 관광지가 된 이곳에는 소를 탄 노자의 석상이 있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는 윤희와 노자의 고사를 시로 쓰기도 했다.
 노자가 윤희에게 도덕경을 써주었다는 함곡관. 옛 모습은 간 데 없고 관광지가 된 이곳에는 소를 탄 노자의 석상이 있다.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는 윤희와 노자의 고사를 시로 쓰기도 했다.
ⓒ www.epoch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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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사상가인 노자는 <도덕경>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함곡관 문지기 윤희가 청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책이다. 도가사상이 담긴 노자의 글은 잘 읽어보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오히려 노자가 주창한 '무위자연'을 뜻도 모른 채 암기해야만 하는 교과서 내용이 더 어렵다. 

간단히 요약하면 없음(무위)이 진정한 도의 길이라는 게 <도덕경>의 핵심이다. 노자는 사례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하나의 바퀴통에 서른 개의 바큇살이 모이는데, 그 가운데 빈 구멍이 있으므로 수레의 쓸모가 생긴다. 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공간이 있으므로 그릇의 쓸모가 생긴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공간이 있으므로 방의 쓸모가 생긴다. 있음의 쓸모는 없음에 있다. (<도덕경> 제11편)

그릇은 비어 있는 것이 덕이라는 뜻이다. 그래야 뭘 넣을 수 있지 않은가. 빈자리가 없는 그릇을 어디에 쓰겠나.

도가도 비상도

철학에 대한 관심으로 나는 왕필부터 시작해 여러 사람이 해석한 <도덕경>을 찾아봤다. 조선 시대 인물인 박세당, 홍석주, 서명응의 책은 물론이고 근래에 출판된 이미경, 박영규, 최진석, 송항룡의 해석도 읽었다. 나는 정확한 해석을 찾으려고 꽤 노력했다.

<도덕경> 제1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도덕경> 제1편)

공자에게 주희가 있다면, 노자에게는 왕필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도덕경 해설의 8할 이상이 왕필의 주해를 따른 것이다. 왕필의 주해를 따랐다는 한글판 도덕경을 읽어보면 "도를 도라고 부르면 그것은 현묘한 도가 아니다"라든가,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는 식의 문장을 접하게 된다. "현묘한"이나 "늘 그러한"이 무슨 뜻인지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해설은 거기에서 끝나 아쉬웠다.
 
 <처음 만나는 도덕경> 표지
 <처음 만나는 도덕경>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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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에 백진웅의 <처음 만나는 도덕경>이란 책을 읽었다. 적어도 3년에 한 번은 노자를 읽다 보니, 이번에는 좀 말랑말랑한 책을 읽고 싶었다. 가장 논란이 많은 <도덕경>의 최대 난제, "도가도 비상도"를 그는 어떻게 해석할까 궁금했다.

백진웅의 해설을 읽다가 나는 지금까지 내가 노자를 잘못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한 해석을 찾겠다는 아집에 묶여 노자의 진정한 의도를 외면했으니 말이다. 왕필의 해설도, 백진웅의 해설도 결국 핵심은 같다.
 
"나는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특징을 잡아 도를 설명하되 나에게 익숙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할 거요. 그러니 도를 탐구할 때 내 말을 참고로 하되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는 마시오. 왜냐하면 도를 먹어본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단어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오. 중요한 건 도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지 도에 대한 설명이 아니니." (백진웅 <처음 만나는 도덕경>, 28쪽)

왕필의 해석을 위와 같이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가 아둔하였을 뿐이다. 백진웅은 최대한 친절하고 평이하게 해설했고, 왕필은 문장을 살려 멋스럽게 해설했을 뿐이다.

자구 해석을 중시하는 해설서들은 예컨대 '상도'를 하나의 단어로 볼 것이냐 두 개의 단어로 볼 것이냐와 같은 문제를 중시한다. 하지만 '상'을 형용사로 보든 부사로 보든, 전체적인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노자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도덕경>의 자구 해석 전쟁을 보았다면 제38편을 다시 읽어보라고 하면서 웃을 것이다.
 
상례는 억지로 예를 행하지만 누가 그것에 응하지 않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그것을 강요한다. (<도덕경> 제38편)

<도덕경>을 읽으면서 자구 하나하나를 따지고 논쟁하는 것은 <도덕경>을 왜 읽는지 망각하는 일이다.

제1편은 각주에 불과하지만 노자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도덕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도덕경>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 즉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그것에 매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한다면 정확한 이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제1편에 대해서는 백진웅의 호쾌한 해설이 가장 노자답다고 생각한다. 제1편은 사실상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제1편을 몰라도 <도덕경>의 다른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것도 귀찮다면 이번 장의 내용을 읽고 깡그리 잊어버려도 된다. (백진웅 <처음 만나는 도덕경>, 30쪽)

큰일을 하지 않고 큰일을 이룬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은 <도덕경>에 실려 있다.
 
아름드리나무도 조그만 싹에서 시작하고,
9층 누대도 조금씩 흙을 쌓는 것에서 시작하고,
천 리 길도 발아래서 시작한다. (<도덕경> 제64편)

개리 켈러의 <원씽>과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 등의 책들과 메시지가 비슷하다. 개리 켈러는 다음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만큼만 계획하라고 한다. 팀 페리스는 세상을 바꾸려는 대담한 목표도 세부적인 작업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상의 큰일은 모두 세세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성인은 큰일은 결코 하지 않으면서도 기어이 큰일을 이룬다. (<도덕경> 제63편)

한 줌씩 흙을 날라 결국 산을 옮겼다는 '우공'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무위

'무위'는 도가 사상의 핵심인데,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있다. 가장 흔한 쟁점은 애초부터 없느냐, 아니면 있던 것을 없애는 것이냐 사이에서 벌어진다. 무위에 대한 해석에서도 백진웅은 시원시원하다.
 
도시에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유위고 시골에서 소 타고 다니면 무위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자유로우냐 아니냐로 둘을 구별한다. (중략) 뭔가에 꽉 매여 있는 상태면 유위고, 유연하고 자유로운 상태면 무위라는 것이 바로 노자의 참뜻이다. (백진웅 <처음 만나는 도덕경>, 41쪽)
 
 물은 스스로를 낮춰 도를 실천한다
 물은 스스로를 낮춰 도를 실천한다
ⓒ fjord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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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에서 노자는 물처럼 살라고 한다.
 
최고로 좋은 삶은 물처럼 사는 것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 곳에도 기꺼이 머무른다.
그러므로 도에 맞게 사는 것이다. (<도덕경> 제8편)

물처럼 낮은 곳으로 임하는 지혜는 리더십의 기본이기도 하다.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까닭은
강과 바다가 기꺼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도덕경> 제66편)

'무위'란 결국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출세 욕심이 가득한데도 시골로 낙향해 소를 타고 다닌다면,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일이다. 이만한 작위가 또 어디 있겠는가. 교통이 혼잡한 도시에서 차를 타고 다니더라도, 끼어드는 다른 운전자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기꺼이 양보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무위라 할 것이다.

무려 25세기 전을 살다 간 인생 대선배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그와 같은 경애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그 길을 갈 준비가 되었는지, 어떻게 그 길을 가야 할지, 내면의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처음 만나는 도덕경 - 나를 변화시키는 자유의 철학,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참삶을 위하여

백진웅 지음, 휴머니스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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