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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너무 잘하지 맙시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홍합을 만났다. 두툼한 한 팩에 2천 원 남짓하는 부담 없는 가격이라 속으로 '대박!'을 외치며 냉큼 사 왔다. 아이들 하원 후 저녁 준비 시간이 되자 홍합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끓는 물에 얇게 썬 편마늘, 대파, 맛술, 손질한 홍합, 그리고 소금 한 꼬집을 한꺼번에 투척하고 블럭놀이하던 애들 옆에 털썩 앉았다.

자글자글. 끓는 물에 홍합 껍질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제법 듣기 좋았다. 홍합의 맛과 향이 국물에 진하게 녹아드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아이들과 놀아줬다. 착한 가격, 쉬운 조리, 맛까지 시원했다. 홍합탕 덕에 저녁 식사 시간에는 훈기가 돌았다.

필자는 집밥에 큰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 재료가 비싸다고, 혹은 조리하는 데 손이 많이 갔다고 음식까지 더 맛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돈'과 '노동력'이 반드시 음식 맛을 결정하지 않는다. 계란말이에 김이면 어떠랴. 먹는 사람이 즐겁게 잘 먹으면 최고의 만찬이다. 반찬 가짓수도 매우 게으르다. 아이들 식판 3찬을 다 채우는 적이 드물다. 그래도 괜찮다. 영양은 충분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게으른 조리를 지향한다. 삶이 돈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을 되찾기 위해 선택한 집밥이기 때문이다. 안락한 삶을 위해 조리대 앞에 섰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늘 신경 써서 대충 차린다.
 
요리가 간편하고 맛도 좋은 홍합탕. 게으른 요리를 지향한다.
 요리가 간편하고 맛도 좋은 홍합탕. 게으른 요리를 지향한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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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살기 위해 집밥 만듭니다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집밥을 선택했다. 언뜻 듣기에 모순이다. 편하게 살고 싶으면 외식을 하고 반찬가게로 가야지 대체 왜 앞치마를 두른다는 말인가. 궤변처럼 보이는 '집밥 예찬'을 설명해주는 건 결국 '돈'이다.

첫째로 돈을 절약하고 싶어 그렇고, 둘째는 돈을 더 버느라 몸을 혹사시키기 싫어서 그렇다. 잘 사는데 왕도가 어디 있겠는가. 많이 일해 많이 벌고 많이 쓰거나, 적당히 일해 적당히 벌고 더 적게 쓰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우리 부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하나] 집밥으로 절약하기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간소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적게 쓰는 삶의 첫걸음으로 가능한 집밥을 해 먹었다. 그러다 2년의 경험이 누적되니 재밌는 현상을 발견했다. 가족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차려낼수록, 식비뿐만 아니라 다른 생활비까지 절약된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외식을 할 수록 생활비 전 영역에서 지출이 늘었다. 

외식이 잦은 만큼 소비에 무감각해졌다. 4인 가족 외식 한 끼에 3~4만 원이 우습다. 그러다 보니 액수에 대한 감이 떨어진다. 마카롱도 더 많이 사먹고, 카페도 매일 갔으며, 약국 가다가 별생각 없이 집어 드는 아이들 장난감도 늘었다.

소비도 관성이었다. 안 쓰면 안 쓰는 대로 쭉 없이 산다. 없어도 별일 없다. 그러나 한 번 지갑을 열면 돈 쓰는 속도는 무섭다. 우리 부부가 소비에 가속도 붙기 전에 지갑을 딱 닫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집밥'이었다. 막상 해보면 크게 힘들지 않았다. 잘 해 먹으려는 마음보다 대충 차려 먹어도 언제나 영양 과잉이라는 믿음으로, 되는대로 해 먹었다.

대충 해 먹는 집밥은 대충 사 먹는 외식만큼 쉬웠음에도, 과소비를 막아줬다. 절약의 출발은 언제나 식비 조절부터였다.
 
식비만 따로 봉투 살림을 한다. 식비를 줄이면 다른 절약이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식비만 따로 봉투 살림을 한다. 식비를 줄이면 다른 절약이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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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집밥으로 삶을 안정궤도로 돌려놓기

상차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하루였다면, 오늘 하루를 점검한다. 난 왜 이렇게 힘들지? 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아 중인 나는 대부분 아이들과 지나치게 열심히 놀아준 날 진이 빠진다. 그러면 서서히 아이들 놀이에서 발을 뺀다. 엄마가 힘들 정도로 애들이랑 놀아주는 건 역효과다. 남편은 잦은 출장과 외부 강의 때문에 자꾸 녹초가 됐다. 결국 남편은 강의를 서서히 거절하며 줄여갔다.

집밥은 노동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있는지를 확인해주는 리트머스지였다. 피곤하면 외식을 하거나 반찬 가게에 가야 했다. 몸이 지쳤는데, 남이 차려주는 밥상이 아니고서야 숨돌릴 재간이 없었다. 요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한 삶은 피하고 싶다.

그냥 돈으로 해결하며 편하게 살라는 마음의 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자주 들린다. 그러나 '편하게'의 기준은 절대 끝이 없다. 외식할수록 외식비뿐만 아니라 온갖 지출이 급상승하는 현상만 봐도 알 수 있다.

편하려고 외식하면, 편하려고 건조기를 사고 싶다. 좀 더 편안한 무선 청소기도 눈에 띈다. 더 욕심이 생겨 일주일에 두 번 집안일 해주는 용역을 고용해야 할 판이다. 모든 편리를 충족하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할 거고, 그러려면 또다시 안락한 침대에서 일어나 사냥터로 떠나야 할 것이다. 사냥터에서 돌아온 날은 피곤에 절어 집안일 따위 손에도 못 댈 것이다. 그러면 다시 외식하고, 가전제품 사고, 또 카드빚을 갚아야 하는 악순환에 들어서 버린다.

절약은 삶을 안정 궤도로 돌려준다. 그게 절약의 힘이다. 간소한 삶에는 큰돈 들지 않지만, 값비싼 가전제품과 고급 가구들, 유명 셰프의 요리로 가득 찬 삶보다 더 우아하다. 거부(巨富)가 아닌 이상, 그 가전제품과 가구, 그리고 레스토랑 뒤에는 6개월 무이자 할부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카드 할부 갚으려면 더 일해야지,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돈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숭고한 노동이지만, 과잉 소비를 메우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 삶은 우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숭고한 노동과 지겨운 출근길 사이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서라도 '집밥' 리트머스지를 대보려 한다. 우리 식구 밥 해 먹일 기운조차 없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무언가를 반드시 조정해야 하는 빨간불이 뜬 거다.

간소한 삶에는 극한 노동이나 내키지 않는 회식 대신 가족과의 산책, 책 읽을 시간, 친구를 만날 여유가 생긴다. 이러니 집밥을 안 할 수 없다. 삶을 틈틈이 점검하면서 더욱 간소하게 살고 싶다. 

[최소한의 소비]
① 하루 만 원으로 살기,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
 
집밥으로 생긴 여유는, 우리 가족을 일터로 내몰지 않고 바닷가, 공원, 산으로 끌어당긴다.
 집밥으로 생긴 여유는, 우리 가족을 일터로 내몰지 않고 바닷가, 공원, 산으로 끌어당긴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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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최소한의소비,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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