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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 모여 밥과 술을 나누는 도시농부들.
 향림도시농업체험원에 모여 밥과 술을 나누는 도시농부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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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추수 끝낸 가을 논의 벼 그루터기들이 아침 햇볕을 쬐고 있었다. 지난 봄여름가을 내내 '향림도시농업체험원'(아래, 향림원)을 울긋불긋 수놓던 꽃들은 거의 다 지고 말았다. 웃자란 갈대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쓸쓸함을 달랠 뿐이었다. 그렇다고 계절이 끝난 것은 아니다. 텃밭에 심겨진 배추와 무 등의 작물들이 도시농부의 손길을 기다린다. 김장철이 다가온다.

도시농부들이 논에 세웠던 허수아비를 해체하고 있었다. 나락을 베었으니 참새들이 날아올 리 없을 것이므로. 소소한 일로 오전을 보내는데 점심상이 차려졌다. 시골 닭으로 백숙해서 우려낸 국물, 총각김치로 차려진 먹음직한 식탁. 건배주는 앵두 주였다. 지난봄에 앵두로 담근 술은 향기가 진했다.

반주 삼은 술에 농이 익었다. 군수 면전에서 닭 꽁지 살을 냉큼 먹은 면장이 모가지 날아갔다는 김윤중(71)씨의 우스갯거리에 웃음보가 터졌다. 이어 오영기(66)씨가 농을 보태자 김용제(76)씨가 파안대소했다. 땀과 밥과 술과 농이 잘 익어가는 인생 농부들의 정겨운 자리였다. 농사 중에 최고 농사는 인생 농사, 인생 농사 잘 마친 도시농업 전문가 세 사람의 가을이 풍성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파 도시농부
 
향림도시농업체험원 논에 영양제를 뿌리고 있는 김용제씨.
 향림도시농업체험원 논에 영양제를 뿌리고 있는 김용제씨.
ⓒ 정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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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보면 돕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도시에선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외면하기 일쑤다. 돕겠다고 나섰다가 사건에 휘말리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도시에선 각자도생이다. 각자 살길만 찾으면서 각종 범죄와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범죄에 노출된 위험한 도시가 진술한다.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가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

정의파 도시농업 전문가 김용제(76)씨가 서울에서 살면서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서울의 유명한 집창촌이었던 청량리 588에서 한 청소년이 깡패 네 명에게 맞고 있었다. 김씨가 나섰다. 김씨는 "청소년을 그렇게 때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하나!"며 만류했고 깡패들은 "아저씨는 참견하지 말고 갈 길이나 가세요."라며 무시했다. 김씨가 깡패의 경고에 겁먹지 않고 강하게 개입하자 깡패들이 청소년을 놔주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덩치 작은 청년이 덩치 큰 청년에게 맞고 있어 말렸다. 작은 청년이 김씨가 말리는 틈을 타서 달아나자 덩치 큰 청년이 김씨에게 화풀이하며 대들었다. 경찰이 출동하면서 청년의 드잡이가 중단됐다. 청년을 파출소(지구대)로 임의 동행한 경찰이 사건 내막을 파악하면서 김씨에게 사과하라고 하자 처벌이 두렵던 청년이 무릎 꿇고 사과했다. 하필이면 청년의 고향이 김씨와 동향인 충남 서천이었다. 김씨가 탄식하듯이 청년에게 말했다.

"자네가 고향에서였다면 어른이 말리는데도 함부로 행동하며 대들었겠나. 이것은 자네의 잘못이 아니라 도시의 잘못이네. 비정한 도시의 잘못이네."

1999년 상경한 김씨는 집 근처 공터에 텃밭을 만들어 호박, 가지, 토마토, 상추 등을 심었다. 수확한 작물들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서 친해졌다. 김씨의 중랑구 집은 옛날 기와집이다. 비가 오면 새기도 한다. 집안 뜰엔 감나무도 있고 퇴비도 있다. 고향 정감이 그리워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 고향은 떠났지만 땅을 떠난 것은 아니다. 김씨는 도시농부로 사는 기쁨을 이렇게 밝혔다.

"고향에서 농사지을 때 쌀 다수확왕을 연달아 3년 차지할 정도로 농사를 잘 지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엔 마을에서 알아주는 농사꾼이었습니다. 농사만 지어선 살 수가 없어 상경했지만 고향 산천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농사짓던 시절이 더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비롯해 도시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며 활동하고 있는데 아주 행복합니다. 이렇게 모여서 밥을 나누어 먹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임시직에서 가락농산물공판장까지... 인생 역전에 성공한 도시농부
 
인생 역전에 성공한 도시농부 김윤중씨.
 인생 역전에 성공한 도시농부 김윤중씨.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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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중(71)씨는 인생 역전에 성공한 최고의 청과 경매사다. 열여덟에 농협에 임시직으로 입사해 농업중앙회 가락농산물공판장의 최고 책임자까지 지냈다. 퇴직 이후엔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청과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지냈다. 국정 농고교과서 편찬․심의위원과 농협대학 강사 등으로 맹활약한 김씨에게 은퇴는 없다. 인생 전반전에서 승리한 김씨는 후반전을 바쁘게 뛰고 있다.

"농촌, 농업, 농민과 함께 50여 성상을 보낸 이후 도시농부로 인생 이모작에 도전하기 위해 도시농업 관리사와 지도사 그리고, 서울시 도시농업전문가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지금은 서초구 소재 양재초등학교와 우솔초등학교 등 20가족을 대상으로 체험 텃밭을 주관하면서 향림원 멘토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텃밭 경작자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돕는 인생 후반전이 행복합니다."

김씨에게 "나이를 계절로 비유하자면 겨울쯤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다, 겨울이 아니라 가을 정도이고 한참 때"라고 농을 섞어 답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돈 버는 일을 했지만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재능기부로 사회공헌을 하면서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다"면서 "도시농부들과 함께 모여 술과 밥을 나누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며 사니 살 맛 난다"고 말했다.

노년에 찾아오는 것은 질병과 소외감이다. 김씨에게도 병이 찾아왔다. 갑상선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지만 거뜬하게 이겨냈다. 의지의 한국인이다. 밑바닥에서 출발해 근면과 성실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김씨는 소외감을 느낄 틈이 없다. 어떤 이들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하지만 열심을 넘어선 노력으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김씨는 퇴직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었을지라도 은퇴하면 삼식이 취급받기 쉽습니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도시농업 전문가 활동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은 저의 활동을 지지합니다. 이런 제 모습을 친구들이 부러워합니다. 삶을 만족하며 살아서인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합니다. 방황하며 세월을 까먹지 마시고 도시농부로 인생 이모작을 하시길 바랍니다."

언론에서 맹활약 중인 '땅보 할아버지'... "우리 삶도 유기농처럼"
 
땅보 할아버지로 맹활약한 도시농부 오영기씨.
 땅보 할아버지로 맹활약한 도시농부 오영기씨.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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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란 나누어 먹는 것이란다. 씨앗을 세 개 뿌리면 하나는 새가 먹고, 하나는 땅이 먹고, 하나는 사람이 먹고…."
 

땅보 할아버지 오영기(66)씨가 어린이 농부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오씨는 지난 2016년 5월 MBC-TV에서 방송된 어린이 프로그램 '깡통토비와 꼬마 농부들'에서 땅보 할아버지 역할을 맡아 6개월간 출연했다. 시골에 살던 깡통 허수아비 토비 가족이 도시로 이사하면서 토비가 길을 잃었고, 도시의 친절한 꼬마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족을 찾아 텃밭을 가꾸는데 이때 땅보 할아버지 도움을 받아 도시에 정착한다는 내용을 그린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농협에서 31년 근무하다 2010년 퇴직한 오씨는 2013년 서울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2주간의 도시농업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유기농업기능사와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는 서울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스쿨팜 교육, 세종시농업기술센터 강의, 향림원 멘토 활동과 서초구청 옥상텃밭 모니터링 활동으로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시농업전문가회 부회장과 회장을 역임하면서 언론 활동을 했다. 그간 MBC-TV 어린인 프로그램을 비롯해 KBS-2TV 다큐 3일, KTV 국민방송 국민리포트, 중앙일보, 월간 아버지 등의 언론을 통해 도시농부의 삶이 소개됐다. 현재는 한 월간지에서 도시농업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글 쓰는 일이 처음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관찰하고, 사유하고,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한 월간지에서 1년간 도시농업 칼럼을 쓰면서 글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생겼습니다. 칼럼을 통해 공동체의 삶과 나눔 그리고 환경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작물만 유기농으로 키울게 아니라 우리의 삶도 유기농처럼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오씨는 김제평야를 보며 자랐다. 땅의 자식들은 고향을 떠나도 어머니처럼 먹이고 키운 들녘을 잊지 못한다. 오씨는 고구마와 목화 서리를 했던 추억, 솜사탕처럼 달콤한 목화 맛은 어떤 사탕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도시에 살면 살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릴 적 추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간다고 말한다. 도시농부의 삶은 도시에도 고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태그:#향림도시농업체험원, #도시농부, #서울시농업전문가회, #도시농업전문가,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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